비가 내린 지난 11일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려 꼼짝하기도 싫었다.

무슨 도 닦는 것도 아니고, 밥 먹으러 간 시간 외에는 온종일 앉았다 눕기만 반복했으니 몸이 편할 리가 없다.

 

이튿날 아침 목욕탕에 가서 몸 좀 풀려고 내려오니, 이 층 입구에 김반장이 와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고씨 영감 방에 사람이 왔는데, 소방대원이 고씨 영감을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소변 팩을 다리에 달고, 의식이 없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그런 것 같았다.

독거노인의 운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살아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자동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실려 나가는 것은 종종 본다.

그런 불상사가 잦은 것은 폐쇄적인 공간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대개 나가기 싫고, 온종일 앉았다 눕기만 반복하니 무슨 기력이 있겠는가?

그나마 쪽방 상담소에서 나누어 준 식권 날짜 지날까 하루에 한 번씩 밥 먹으러 나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다.

 

지난해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로 조사된 천여 명 중에 절반이 결혼을 못한 비혼이라고 한다.

아무런 간섭받지 않고 책임질 일은 없겠으나, 외로운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은 없다.

건강관리는 물론 이야기 나눌 사람까지 있는 교도소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녹번동에서 주말을 보내다 나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가기 싫은 것처럼...

실소를 흘리며 오지만, 마치 저승 대기소 가는 심정이다.

늙어서는 두 내외가 오손도손 사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사진, / 조문호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요즘 반가운 자리를 가급적 피해, 더욱 춥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씨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던 마누라까지 내치고 나온 놈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더 혹독한 겨울을 절감해야 합니다. 보상의 길이 있다면, 이웃들에게 조그만 힘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처음 나올 땐 사진이 우선이었지만, 그 또한 나 자신을 위한 이율배반적인 짓이라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들어 온 쪽방은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마지막 무덤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처음엔 일 년 쯤 작업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작정이었으나, 그 생각마저 접었거던요.

엊그제 겨울 옷가지와 당장 필요한 자료들을 챙기러 정선 집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무덤 앞에서 술 한 잔 올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한 평생 걱정만 끼친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도 잘 봐 달라며 부탁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작은 쪽방이지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정 붙여 사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그래서, 정선에 모아 둔 오래된 전시 포스터를 몽땅 가져와, 쪽방 도배부터 할 생각입니다.

죽고 나면 쓰레기에 불과할 것을 뭐가 중요하다고, 뭉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거의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중이지요.

 

그리고 일에 대한 우선순위도 정했습니다.

캘린더에 빽빽하게 적힌 일정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내 일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똥개처럼 쫓아다니며 공술 얻어 마시는 일도 이제 줄일 것입니다.

술 생각나면 주변의 노숙하는 친구들과 마시면 되니까요.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동자동에서 벌어지는 길흉사나 약속들입니다.

그러나 급하게 서둘지 않고, 차근 차근 공부하듯 배워 나갈 것입니다.


두 번째는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올 년 초에 시작한 문화알림방포스팅말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만 받게되면 더 이상 돈이 필요없겠지만,

어려움에 처한 노숙자들에게 막걸리도 사 주어야 하고, 정영신씨도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 병원비에다 학비까지 마련해야 할 처지거던요.

병 주고 약 준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나도 조그만 양심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발 쓸데없는 추측들은 하지 마십시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문호가 새 여자가 생겨 나갔다느니,

정영신이가 너무 쪼아 나갔다느니, 별의 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이상 없습니다.

처음, 갑작스런 제안에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전 정영신을 잘 알아, 내 마음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젠 충분히 공감대를 가져 몸은 남이지만, 마음은 늘 함께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관습이나 규칙 따위는 지킬 사람이나 지키라는 것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멋진 데이트도 신청할 작정입니다.

 

그 외의 시간들은 내 꼴리는 대로 살 것입니다.

이 개 같은 세상, 틈만 나면 신명난 잔치판을 벌이고 싶습니다.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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