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인사동이 인사동 같지가 않다.

인사동이 삭막하게 변한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지만,

정든 사람마저 볼 수 없으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인사동 풍류객들은 세상을 등졌거나 대부분 떠나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거리도, 여느 거리와 다를 바 없다.

서울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기도 싫어졌다.

 

지난17일 오후무렵,  유목민전활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홍천 사는 양서욱씨가 인사동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를 본지도 오래되었지만, 술 생각이 간절한 터라 하던 일을 덮어버렸다.

 

유목민에 갔더니, 전활철, 양서욱, 고은우씨가 있었다.

가게 안쪽 전등이 꺼진데다 주변이 어수선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 날이 정기휴일이란다.

 

홍천에서 집 짓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서욱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뒤늦게 도언탁, 장은하씨가 등장하며 술자리도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 그런지, 벽치기길 입구의 담배포가 문을 닫아버렸다.

술 마시며 담배를 참아야 하는 인내에 한계를 느꼈다.

또 한 곳인 '예당은 술집이라 사러가기가 민망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이 예당에 담배 사러 갔더니, 도처에 아는 사람들이 콩알처럼 박혀 있었다.

 

최유진, 이만주, 이두엽, 김태서씨 등 반가운 분들이 많았으나, 사진만 찍고 나와 버렸다.

 

돌아오다 새로 생긴 술집에도 잠시 들려 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경호, 박원규, 노현덕씨가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쌍다구에 그들이 더 놀란 것 같았다.

 

반가운 인사동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앉아 있으니, 모처럼 인사동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전 인사동이 정겹듯이, 사람도 오래된 사이가 정겹다. 농익은 술이나 곰삭은 된장처럼...

 

새로 개업한 집에서부터 예당유목민을 오가며 첨벙거리던 중에

흐린 세상으로 건너오라는 이두엽씨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술에 절었지만, 그 쪽 사정이 궁금해 안 갈수가 없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흐린 세상 건너기로 갔더니,

이두엽, 최유진, 이만주씨와 잘 모르는 여시인도 한 분 계셨다.

 

한 때 방송피디로 일하다 신문사사장까지 두루 거친 이두엽씨는

세상을 떠난 여운화백과 더불어 인사동 밤안개로 불렸다.

밤안개처럼, 밤 새도록 인사동을 휩쓸며 새긴 사연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데, ‘뿌리 깊은 미래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따끈한 소식을 주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사동이라며, 인사동의 뿌리를 찾아 나서겠다는 말에 가슴이 부풀었다.

 

인사동의 매력은 정이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하면 인사동의 인정이니, 결국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사람아 사람아~ 인사동 사람아~"

 

사진, / 조문호

 

 

모처럼 인사동에 전시 보러 나갈 일이 생겼다.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건만, 살아 있는 동안은 하던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눈감고 모른 척한다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꼭 가보아야 할 전시도 여럿 있었다.

마치 속세와 인연을 끊을 듯 매몰차게 밀어붙였으나, 몸이 좀 나아지니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옛말이 딱 맞다.

 

그동안 핸드폰은 네비게이션 전용으로 사용했으니, 전화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안 받은 것이다.

유일한 소통 공간이라고는 페이스북 뿐인데, 그마저 가끔 들리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마저 어두웠다.

 

모든 게 사진에서 비롯되는데, 사진을 찍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카메라에 찍힌 순서대로 지난 시간도 기억하는데,

찍힌 사진이 없으니, 할 말은 물론 치매 환자처럼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열리는 함께 맞는 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 주흥수감독의 부탁을 받아들였는데, 정영신씨도 유준 화백으로 부터 연락받아 사진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액자를 옮기려면 차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나가는 김에 전시도 몇 군데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삼청동 있는 아트비프로젝트부터 들렸다.

우연히 네오록에서 본 허유진 사진전 제목이 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허유진의 세차장 구정물에서 별 찾기는 7-8년쯤 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이미지들은 이미 별이 된 강용대 화백의 별 그림 같기도 하고,

별 그림의 대부로 부상한 강찬모화백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찬모 화백이야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를 받아 찬란한 별빛을 쏟아냈지만,

허유진양은 세차장에서 흘러내리는 구정물에서 찾아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보낸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가상했다.

 

세차장 구정물은 빛이나 날씨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대부분의 전시작은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연출했다.

찬란한 우주도 버려지는 오물에 다름아니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남기며...

 

아래 글은 이선영씨가 쓴 전시 서문의 한 부분이다.

우주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냐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이 전시는 925일까지 이어진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89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마루아트센터부터 들려야 했다.

전시장에는 이미 많은 작품이 반입되어, 설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90년대 불교상징'전에 내걸었던, ’환성사수미단을 준비해 갔고,

정영신씨는 작년에 전시한 어머니의 땅‘에서 고른 작품을 전달했는데.

인사동 도로에 세워둔 차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9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장애학생돕기자선전 함께 맞는 비인사동 마루아트센터 3층 그랜드관에서 열린다.

이 자선전은 장애 학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으며 그들의 삶과 함께하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가격도 기존 가격에서 대폭 낮추어 판매한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저렴하게 소장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다 같이 자선전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을 보러 갔다.

전시장에는 작가 외에도 화가 장경호씨와 사진가 조명환씨도 있었다.

 

전시작품은 분단의 현실을 형상화한 살풍경이었다.

휴지 조각이 굴러다니는 황폐한 땅에 철조망이 솟아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그림에서는 거대한 화석이 공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모든 풍경은 작가가 태어나고 살아온 경기도 김포 북단에 대한 한 맺힌 풍경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처럼 현대미술의 형식론이나 흐름의 한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지켜보며 각인시켜 온 역사화나 다름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공간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나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작가 노트가 그의 작업 배경을 잘 말해 준다.

 

칡뫼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늘의 분단 현실을 까발린다.

긴장과 불안감을 동반한 김구의 바라보다전은 927일까지다.

 : https://blog.daum.net/mun6144/6493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강재구 사진전도 보러 가야 하지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오는 928일까지라 다른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가 쓴 강재구론 부분을 소개한다.

 

강재구의 군인 연작은 사진사적으로 바로 이 흐름 위에서 위치한, 충실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20년 동안 군인, 그것도 의무 복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징병제 군인 이등병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가 간부 후보생이나 장교 혹은 여군과 같이 스스로 직업인의 길을 택한 군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민의 의무로 복무해야 하는 군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의 작업이 군인이 무엇이고 어떠한가, 즉 그 정체성과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징병제하에서 군인으로 강제로 끌려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청년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개체성 그리고 반휴머니즘에 사육된 무기력함이다.

 

사진가 강재구의 20년 군인 포트레이트 작업은 군대로 끌려가는 입영 전야의 민간인에서 12mm로 머리카락을 깎은 이등병 군바리가 된 이들을 촬영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의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메시지를 무겁게 오랫동안 끌고 온 작업이다. 여기에서 이등병이란 의무 복무를 마친 후에도 흉터처럼 남아 있는 예비역이라는 민간인이 되지 못한 여전한 군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20년의 그 시리즈 작업 가운데 약간은 성격이 다른 것도 있다. 군대 사진관 사진의 사병 증명사진으로 작품을 만든 2009년의 사병증명도 있다. 군의 실용적 필요에 따라 사진의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그러면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군대 내 증명사진들을 통해 군대라는 몰()인간성의 의미를 은유로 다룬 작품이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노박사를 비롯하여 최유진, 정영신씨가 먼저 자리 잡았는데, 뒤늦게는 최석태, 이인섭씨도 등장했다.

 

이 날은 차를 끌고 나와 자리만 지키기로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자리다.

 노현덕씨가 주차비와 대리 운전비를 내라며 신사임당을 한 장 내놓는데,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도 마실 일이 있는데, 이러다 다시 드러눕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2021,9,22

지난 18일 오후는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 전시 디피하는 날이었다.

 

사진 액자는 진즉 ‘나무아트’ 전시장에 올려놓은 터라 인사동 거리부터 돌아보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따라 거리공연에 나선 뮤지션이 세 명이나 되었다.

다양한 음악으로 거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유독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러시아 소녀를 경찰관이 제지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주변에 있는 가게 주인이 신고를 했단다.

 

"에라이~ 돈밖에 모르는 썩을 놈의 인간들..."

바이얼린 연주가 무슨 영업 방해가 되며,

비록 방해가 된다 해도 어떻게 자식 같은 외국 소녀에게 상처를 주는가?

 

연주하던 소녀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보고서야 ‘나무아트’에 올라가니,

이미 김진하관장이 액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전문가가 하는 일에 나설 수 없어 포장 해체하는 정도만 도왔다.

 

마침 거리미술가로 알려진 이태호 교수가 오셨다.

고 김수영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판화 두 점을 출품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주최하는 행사인지 궁금해 했다.

 

정영신씨가 기획자 소개도 할 겸, 그 일을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불렀는데,

김수영시인의 대형 시비도 만들어 둔 게 있다며, 전시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그런데, 김진하관장께서 토론토 Tai Kim씨가 보내왔다는 예쁜 엽서를 전해 주었다.

페친으로서 정선에 불난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행운의 크로바까지 붙여 보내 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김진하관장의 전시 디피 솜씨는 일사불란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배치했는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한 후 이태호 선생과 함께 ‘툇마루’로 식사하러 갔지만,

차 때문에 술 한잔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을 설치할 ‘유목민’ 골목에도 잠시 들렸다.

골목 테이블에는 이인섭, 유근오, 노현덕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유목민’ 안 쪽에는 김수길씨도 있었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나 술 한 잔 나누지 못하니 무슨 재미랴.

전시 기간 내내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할 텐데,

참아야 할 술 고문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랜만에 시인 강 민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21일 오후1시경 ’하누소‘에서 만나 이행자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했다.
강민 선생께서는 한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했으나, 이젠 한결 나아졌다고 하셨다.
그날은 가난한 이행자 시인께서 밥값 술값을 계산했는데, 신발마저 예뻤다.

오후6시에는 조준영시인과의 만찬약속이 있었다.
정영신과 함께 한 ‘유목민’ 옆자리에는 노현덕, 정기영씨의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뜻밖에도 조해인시인 내외가 나타나 함께 어울렸다.

조해인씨는 명상에 관한 글을 탈고해 ‘해냄출판사’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상병시인의 근거지를 빨리 인사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천상병문학상'의 선정기준도 작품의 우월성에만 한정하지 말고,
천선생의 시 색깔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인의 친구 분들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등 돌린 의정부행사보다는
생전 선생의 삶과 창작의 근거지였던 인사동에서 주관할 것을 모두들 바라고 있다.
천상병시인을 내세워서라도 인사동문화와 풍류를 되살렸으면 좋겠다.

사진,글 / 조문호

 

 

 

 

 

 

 

 

 

 

 

노현덕 (문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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