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의 대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바라본 붓질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5월 13일~25일 개인전 갖는 남농손자 허준 작가 어린시절 회상
먹의 농담을 위해 붓을 혀에 가져다 대시는 모습 지금도 생생"


산수풍경을 극단의 조형성으로 몰아부쳐 사의적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허준 작가

“어릴 적 학교를 다녀 온 후 해가 어스름하게 질 때쯤이면 항상 할아버지의 화실에 저녁 인사를 드리러 가곤 했다. 화실 안은 항상 할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는 제자들과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모를 손님들로 항상 북적거렸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종종 무릎에 앉혔고 ,그림 그리는 전 과정을 구경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시절엔 할아버지의 붓놀림에 산과 나무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마냥 신기했고 먹의 농담을 내실 적에 붓을 혀에 가져다 대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인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한 평생 그림만을 그려 오셨던 할아버지로선 그 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고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이 된다. 하지만 가장 즐겨하던 놀이는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되어 버렸고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너무 어릴 적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그림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없었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요즘도 힘들거나 지칠 때면 할아버지 기념관을 찾아 작품과 작업 도구들을 보며 혼잣말처럼 할아버지께 푸념도 하고 내 생각도 얘기를 드리곤 한다. 작업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을 때가 많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인고의 삶에서 이미 그 길은 알려 주셨지만, 내가 아직 부족해서 미처 깨닫고 있지 못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종화의 대가 남농 허건의 손자 허준이 전시를 앞두고 털어놓은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그는 너무나 ‘큰 산’인 할아버지에 누가될까봐 그동안 손자라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 자칫 작가로서 할아버지 이름에 가려 자신의 세계를 제대로 펼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한 몫했다. 사실 그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고 싶지 남농의 손자라는 이름 뒤에 가려지는 것이 싫다




”내 이름 앞에 남농 손자가 붙는다는 것은 작가 허준으로서 아직미진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작가 허준으로 당당히 서는 것이 바램이다.“
그는 요즘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알바(미술학원 강사)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전업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호구지책이다.
”기존의 작업들은 주로 산수풍경을 주제로 진행을 해 왔었다. 그것은 아마도 집안내력도 있지만, 주 관심사가 자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제가 그 방향으로 흘러 간 듯하다.“
그의 작업이 산수풍경이라고 해도 옛 것의 답습은 아니다. 나름 시대적 미감에 맞는 이미지 구축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산행경험을 바탕으로 내 의식 속에 존재하는 기억의 풍경들을 재조합 해 이미지를 표현했다. 그 속에는 산행 중에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과 그 당시의 심리상태 그때그때 느꼈던 감흥들도 녹아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종의 산행일기식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느시점부턴가 내면의 심리상태에 방점을 두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양평으로의 이주 시기부터다. 나름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양평에서의 작업은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업방향도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기법적인 실패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이미지에서의 불만족 등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겪었고 그 과정에서의 결론은 한정된 하나의 이미지에 생각을 고정하지 않고 하나의 주제로 여러 이미지에 대입을 하는 것 이었다.“

결국 그에게는 이미지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됐다.

”최근작들은 앞서 얘기했듯 철저히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 되었다. 집안 형들에게서 느끼는 나의 콤플렉스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답답하고 복잡하고 불편한 내 현실상황,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내 욕망, 욕구 그런 상황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리 등 내 내면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여러 이미지에 담는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예를 들면 날개, 새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파 등에 자신을 이입시키는 것이다. 날개라는 것은 자유, 희망, 비상, 탈피 등이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인 것처럼 현재의 답답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다. 하지만 정작 날개들은 꺾여 져 있어 무의식적으로 작가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이 시대 30~40대의 모습도 연상된다.

새장 안의 동식물들도 매한가지다.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오려는 모습이 불편해 보인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어울리는 이상한 상황이 다. 버거운 현실에 체념하고,순응하고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대파연작은 양평생활에서 나온 것이다. 작은 텃밭에 고추, 토마토, 대파같은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추워지는 날씨에도 버텨내는 대파의 생명력에 감동이랄 것 까진 아니지만 어떤 미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나 또한 저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불완전한 내 심리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게 된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시골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내 입장에선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한 동안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주로 다루는 작업들을 계속 진행 할 예정이다. 그게 무슨 이미지이건 간에...



5월13일부터 25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 제목은 ‘THIS AND THAT’이다. 그냥 직역하면 이것저것이다. 작가로서의 다양한 모색이 응결된 표현이다


[스크랩/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잔잔한 농담, 섬세한 담채의 운치, 속도감 넘치는 운필
탄생 100주년 맞아 29일~내달 7일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서 특별전


 

秋情

 

 

                                            오는 29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남농 허건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남해다도일우’.

 

 

남도 예맥의 거장 소치 허련(1808~1893)은 남종화를 한국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56년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내려가 화실 ‘운림각’을 짓고 화업에 전념했다. 소치가 말년을 보낸 운림각은 아들 미산 허형(1862~1938), 손자 남농 허건(1908~1987), 의재 허백련(1891~1977), 임전 허문(1941~현재) 등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화맥(畵脈)을 형성한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불린다.

1982년 남농은 사재를 털어 운림각을 ‘운림산방’으로 개축해 국가에 기증했다. 2011년 8월 국가지정 명승 제80호로 지정됐다. 최근에는 정치권 일각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남도의 큰 화맥을 이룬 운림산방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는 남농이 사생을 바탕으로 한 실경을 화폭에 담아 ‘남농 산수’라는 독자적인 산수화 경지를 구축한 무대다.

남농 산수뿐만 아니라 국내 화단에서 차지하는 운림산방 화맥의 역사적 성격과 미래까지 가늠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남농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펼쳐지는 ‘그래도 남농이다’ 전이다. 남농이 운림산방에서 작업한 전성기 주요 작품 70여점이 소개된다. 1930~1950년 무명 시절 그린 산수화부터 1960~1970년대 대담한 운필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남종화풍을 개척한 작품까지 남농의 색다른 운필이 관람객의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운림산방

 

운림산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진도 앞바다 섬들을 생생하게 잡아낸 ‘남해다도일우(南海多島一隅)’, 3m가 훌쩍 넘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등 대작은 맑고 섬세한 담채의 운치, 자신감 넘치면서도 개성 있는 화면 구성을 통해 남농 특유의 산수기법을 보여준다. 1972년에 그린 ‘추효군도(秋曉群島)’는 추색이 내려앉은 섬의 산과 나무, 밭을 그린 작품. 아름다운 남도의 풍경이 남농의 붓에 되살아났다.

‘삼송도(三松圖)’로 대표되는 남농의 소나무 그림도 여러 점 걸린다. 1970년대에 시작한 소나무 그림은 서울에서도 널리 유통돼 화가로서의 외길보다는 각계 인사와 널리 교우하고 수석 수집 취미 등을 기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푸른 소나무의 웅장한 기상을 표현한 대표작 ‘청엽생생 철석심(靑葉生生 鐵石心)’ ‘익수장년(益壽長年)’ 등이 눈길을 끈다.

‘해상설제(海上雪霽)’ ‘강산화려도(江山華麗圖)’ ‘고림유심(古林幽深)’은 소치나 미산의 영향이 강한 정형 산수를 그리던 남농이 점차 실경 정신에 입각해 속도감 있는 갈필(渴筆)과 점묘법으로 특유의 신(新)남종화풍을 발전시킨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정준 세종화랑 대표는 “남농의 예술혼을 한눈에 집약할 수 있는 대표작을 모으기 위해 10여년을 준비했다”며 “남농의 예술 세계를 한국 미술이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22-2211

[한국경제]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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