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u r a t i o n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
2019_0814 ▶︎ 2019_0915



김범중_Basso_장지에 연필_120×16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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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밈 엠큐브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김범중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지속(Duration)』이다. 지속성과 절대성보다 일시성과 상대성에 편중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위와 같은 주제가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 전시들이 변화와 다양성에 조금 더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어떤 상태의 유지나, 그것에 전제되는 시간성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지속성이 변화와 생명력이 없는 건조한 상태는 아니다. 김범중이 말하는 지속성은 마치 음향학에서 소리가 "발생(attack)-쇠퇴(decay)-완화(release)"로 구조화되는 것처럼, 그의 지속성 또한 생성과 소멸의 변주를 포괄하는 상태의 지속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시각화하였을까? 우선 김범중의 회화 형식은 우리의 체내 깊숙이 흡수된 관습과 획일화된 공식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한다. 그렇다고 선정적인 전위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 작품을 마주할 때의 인상과 작품 제목에 내재 된 의미 사이의 거리감은 순간순간 익숙함과의 단절을 야기한다. 색도 사용하지 않으며, 현란한 기법이나 독특한 형태가 강조되지도 않았는데, 그의 작품을 파악하려는 섣부른 시도들은 예상치 못한 낯선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일견 낯익은 조형 언어가 이러한 경험을 더 깊게 하는 어떤 의도적인 장치는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것은 그러나 부지불식 사이에 화석화된 조형언어의 편협과 안일함을 지적하고, 관습적인 공식들을 어긋나게 하여 은폐된 위계들을 전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는 그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탐구열과 몰입의 에너지에 주목한다. 일종의 매니아(mania)적이거나 지속의 산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김범중의 회화가 단지 모노톤이고, 종이와 연필이라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단순히 서정적이거나, 명상적, 또는 수행적 추상이라고 판단하였다면 작품 읽기가 자칫 과장에 빠지기 쉬워진다.


김범중_Duration展_갤러리밈_2019


이러한 관점에서 김범중의 작품은 추상도 재현도 아닌 기록에 접근한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 '발생(occurrence)'의 기록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숭고'를 위해 리오타르가 끌어온 '발생' 개념은 '그 자체'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발생은 재현될 수 없음, 즉 재현 불가를 가리킨다. 반면 발생은 재현 불가능인 점에서 왜곡 불가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대상에 대한 경외마저 느끼게 하는데, 김범중의 작품을 단적인 발생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이렇듯 재현 불가능을 인정하는 신중함이 보인다. 작가가 소리에 유별난 관심을 가졌기도 하거니와, 작품의 주된 소재이기도 한 소리의 예를 들어보자. 북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어 사용자들은 대개 '둥둥'으로 표기한다. 영어권에서라면 북소리는 'parum pum' 등으로 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소리를 음의 높낮이 정도를 나타내는 헤르츠(Hz)나 소리의 크기에 관련된 데시벨(Db) 등과 같은 형식을 따랐다면 어떨까? 대상의 '그 자체'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분명 후자에 부과된 메타 의미는 '둥둥'이나 'parum pum'과 같은 재현 형식보다 그 무게가 덜하다. 이와 같이 발생은 재현의 왜곡을 피하고 대상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대상이 재현도 추상도 아닌 '그 자체'로 남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지 모른다. 그것은 또한 피상적 시각에서는 알 수도 없는 대상에 깊이 매료된 매니아적 관점과 고도화된 사고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 실제로 음원이 매질을 통해 수용체로 전달되는 소리 발생의 매커니즘이나, 주파수와 같은 측정 체계에 대한 김범중의 관심은 헤르츠나 데시벨의 예와 유사하게, 김범중만의 재현 방식을 통해서 모노톤의 회화로 가시화된다. 때문에 익숙한 조형 언어인 듯 보이나, 김범중의 회화는 소리뿐 아니라 소리가 동반하는 시간과 물질 등에 관한 탐구자적인 기록물에 가깝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그의 모노톤 회화는 형이상학적이리라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경험적 의미를 전달한다. 단지 모노크롬 회화와 닮았고, 수행적 반복을 보인다는 이유에서 그의 작품에 선(禪) 사상이나, 도가, 또는 현상학적 의미를 덧입히기에 김범중의 회화는 촉각적이고, 경험적이며, 탈(脫)사변적인 동시에 실제적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또한 재료 선택에서나, 선 긋기의 경험뿐 아니라, 그의 사고 체계에도 녹아 있다. 민족주의가 아닌 체질을 고려함으로써 장지를 선택하고, 붓이나 펜의 임의적 유동성보다는 물리적 강도를 있는 그대로 출력하는 흑연의 정직성을 선호한다는 김범중의 재료적 취향은 그의 화면을 금욕적으로 보이게까지 한다.



김범중_Mezzo_장지에 연필_120×320cm_2019


그러나 사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금욕적 화면 역시 목적이 아닌 결과로서 도출된 것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김범중의 회화에 나타나는 금욕이나 절제란 작업의 최종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발생에 관한 탐구 과정 가운데 형성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작가의 실제 관심 역시 현실에서 괴리된 관념이나 금욕, 또는 수행은 아니다. 소리나 주파수와 같은 비가시적 실재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발생'에도 주목한다는 작가는 분명 물리적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동시에 그는 어떤 비가시적 존재나 미시적인 대상과 기꺼이 씨름하는 다분히 매니아적이고 고도화된 줄다리기를 작업한다. 이 작업은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사고를 동반하며, 결코 그것을 정복하듯 재현하지 않는다. 저음의 물리적 특성이나, 음색의 차이들, 주파수, 파장 등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실재하는 대상 또는 발생에 대한 무수한 경험과 탐구가 장지와 흑연의 물리적 실험을 통해 화면 위에서 또 다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된다. 마이크로적일 정도로 섬세하다 못해 치밀한 김범중의 시각은 충분히 미시적이며, 다른 한편 표면의 변화를 야기하는 장지의 섬유질에서, 셀 수 없이 중첩되고 축적된 흑연 가루에서, 그리고 고도로 절제된 형식으로 반복되는 선 긋기의 행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며 지속된다. ■ 이상윤

갤러리밈의 '엠큐브프로젝트' (M'Cube Project) 는 동시대 미술의 가치를 통찰과 깊이로 다져가는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전시 프로그램입니다.



Vol.20190816c |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



Sonoration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drawing
2013_1204 ▶ 2013_1210

 


김범중_Sonoration_장지에 연필_80×105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작은 진폭의 생각들이 모여 거대한 파장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증폭된 희망일수도 있고 증폭된 절망일수도 있다. 언제나 번뇌의 파장은 또 다른 전이를 일으키고 새로운 형질의 번뇌로 재생산된다. 갖가지 생각으로 고뇌하지만 그것은 비슷한 틀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다지 크지 않은 진폭의 파장들일 뿐 일 때가 많다. 그러나 파장이 점점 강해지고 흡수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면 기존의 믿음들은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믿음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세월 속에 쌓이면서 어느 덧 커다란 신념으로 찾아온다.

 


김범중_Ignition_장지에 연필_112×160cm_2013

 


김범중_Dissipation_장지에 연필_120×160cm_2013

 


김범중_회절의숲-Diffraction Forest_장지에 연필_45×55cm_2012

 


김범중_Stereophonics_장지에 연필_45×55cm_2012

물질계의 분자는 열과 같은 자극을 가하면 약간의 운동을 시작하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또 다시 가하면 점점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가하면 마침내 대류와 같은 구조의 새로운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른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계 역시 온갖 번뇌의 파장들로 들끓지만 뇌파가 극점을 치고 나면 각각의 새로운 틀을 만들고 자리를 잡는다. 자극을 받지 않을 때는 평온하고 안정적이지만 그것은 활력이나 별다른 변화가 없는 정태적인 상태다. 그러나 대류와 같은 구조는 사고의 활발한 움직임 속에서 점화되는 새로운 발아이며 역동적인 질서다. 그리고 이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는 과정이 아닌 혼돈으로부터 질서로, 또 다시 혼돈에 이르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순환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번뇌 속에서 태어나고 반복되는 새로운 깨달음들이고 삶의 전환점들이다. (작가노트 중) ■ 김범중

Vol.20131204f |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painting.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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