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녀 맞이’전이 지난 29일 ‘창성동 실험실’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황해도 굿을 하는 이지녀 만신은 김금화선생 신딸로 예능에 다재다능하다.
옛날에는 무당도 기생처럼 소리와 춤은 물론 무속화나 지화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재능이 있어야 했다.

요즘은 무속화나 지화 등 대부분을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이지녀 만신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한다.
본래부터 무당은 끼를 타고 나야 할 수 있으나,
그 끼에 부단한 노력이 합쳐져 이지녀 만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서도소리를 배우기 위해 서도소리 이수자인 오복녀 선생을 따라 다녔고,
무신도를 그리기 위해 단청장 만봉스님과 판화가 김봉준 화백으로 부터 지도를 받았다.
굿문화연구소나 흙손 공방, 우리 옷 만드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등
모든 기능을 온 몸으로 습득했다.






다양한 재주야 진즉 알았으나, 무신도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무신도가 신당을 장식하는 수준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아닌가?






요즘 전시장에 잘 다니지 않지만, ‘이지녀 맞이’ 전시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지녀씨는 인사동 사람들 모임이었던 ‘창예헌’ 맴버이기도 했다.






29일 일찍부터 서둔 것은 꼭 보아야 할 영화 ‘김군’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관람 시간에 차질이 생겨 좀 늦었는데, 초행길이라 한 참을 헤매었다.
시골영감이 서울 김서방 집 찾아 가는 격이었다.
자하문로를 돌고 돌다 찾게 된 것은 조그만 한옥 전시장 앞에 세워놓은 무당집 같은 오방색 깃발 때문이다.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었다.
이지녀 만신과 박수 등 굿판을 벌일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박현수, 홍석화, 임계재, 김신명숙, 권오중, 김용선, 이한구씨 외에 
모르는 분이 더 많았는데, 안쪽에 정영신 동지의 모습도 보였다.
전시장에 올 줄 알았더라면 바쁜 걸음 칠 필요 없이, 시간 날 때 천천히 와도 될 텐데...






비집고 다니며 작품부터 보았는데, 무신도를 비롯하여 흙으로 빚은 신전, 지화, 장신구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마치 신당에 들어선 느낌인데, 이지녀 만신의 신 끼가 돋보이는 자리였다.





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무신도’ 또는 ‘맞이’라는 그림에는
일월성신, 옥황상제, 삼신, 칠성, 제석, 산신, 서낭, 장군, 동자, 대사 등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무신도는 본래 민화처럼 과장되거나 익살적인 표현이 있어 흥미롭다.






이지녀 만신의 무신도는 무시무시한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 난 모던한 창작이라 친근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많은 만신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자신이 무당의 길을 걸으며 느꼈던 소중한 경험이 더해져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런데, 전시준비에 힘들었던지 이지녀씨 표정이 편치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팠단다.

그녀의 표현으로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는 속담처럼 간신히 추슬러 나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이지녀씨의 인기도였다.
펜클럽이 생길 정도인데, ‘이지녀 맞이’도 펜클럽에서 주선했다는 것이다.






축사를 해주신 채현국선생께서는 돌아가신 자당께서도 신 끼가 있어

그걸 억누르고 사시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는 옛날 이야기도 하셨다.

당시야 양반가문에서 있을 수 없는 천한 직업으로 여겼으니까...





난, 무속을 종교이기 전에 종합예술로 본다.

춤, 소리, 그림, 조각 등 모든 예술이 어우러진 자리인데,

진득한 삶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니 이보다 더한 예술이 어디 있겠나?






이지녀 만신은 30여 년 동안 황해도 굿을 해왔으나, 서도 소리꾼으로 더 유명하다.
황해도 굿은 두 차례 밖에 보지 못했지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서도소리는 여러 차례 들었다.
몇 년 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서도소리 창극에 출연했는데,
오랫동안 다져진 이지녀 만신의 소리가 압권이었다.





잔잔한 농음의 애잔한 소리는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는데,
그 때 이지녀씨 대감놀이가 창극의 하이라이트 였다.
이 날도 인사와 축사가 있은 후 맞이굿과 대감놀이를 했는데,
신명난 굿판에 복이 슬슬 들어오는 것 같더라.






그런데, 좀 섭섭하더라.
복을 축원하며 시루떡을 잘라 주는데, 다른 사람은 입에 넣어주면서 나는 손에 집어주더라.
이거 사람 차별하는 거 아닌가? 그냥 웃으려고 해 본 소리다.


무신도의 진수도 맛보고 복까지 받았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닌가.






이 전시는 자하문로 12길 11-5 ‘창성동 실험실’갤러리(010-5413-6552)에서
6월4일까지 이어지니, 놓치지 마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사화선 (1930)씨의 20년전 모습과 지금 모습


강릉에서 열린 올 ‘단오제’는 작년부터 촬영 일정을 미리 짜놓았다.
20년 전 ‘강릉단오제’에서 찍은 만신들을 만나, 다시 사진 찍기 위해서다.
그 당시 프린트해 놓은 사진들도 전해줄 작정이었다.

주소를 잃어버려, 갈 기회가 있으면 전해주려 책장에 꽂아 두었으나,
세월이 흘러 생각에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작년 봄에 책장을 정리하다, 그 사진 봉투를 다시 찿은 것이다.
에이 바이 텐 사이즈의 흑백사진 열장인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 촬영데이타를 찾아보니, 작년이 19년째 였는데, 올해가 만20년째 였다.
“그래! 내년에 얼마나 변했는지 한 번 만나보자”며 미리 수첩에 적어 둔 것이다.

정선 집에 체류하던 지난 6월10일, 강릉 단오 굿판을 찾아 나섰다.
복잡한 축제장이라 물어물어 굿판을 찾아가는데, 길에서 인사동 아우 이지하를 만났다.

우리나라 만신들을 훤히 알고 있는 그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도와주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찍은 분 중 여섯 분은 나왔지만, 송명희씨는 별세하셨다는 말도 전했다.

굿판에 들려 제일먼저 장구잽이 김명대씨를 만났다.
그가 굿판의 실세이기도 하지만, 첫째 부인이었던 이순덕씨와 셋째 부인 신희라씨가
함께 굿을 하고, 아들 김민석씨도 그 곳에서 장구를 치기 때문이다.

삼년만에 만난 김명대씨에게 사진을 전해주고, 도움을 청했다.
굿이 끝난 만신들이 이지하의 안내로 하나 둘 휴게실로 들어왔는데, 너무 반가웠다.
이십년 전의 젊은 모습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등달아 기분이 좋더라.
나이 따라 늙어가는 모습들을 보며, 삶의 허무를 느끼기도 했다.

다시 만신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0년 전과 똑 같은 포즈의 정면사진을 찍었으나, 싫어하는 분도 계셨다.
늙어가는 모습이 더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라며 설득했다.
연세가 제일 많은 사화선씨부터 신성녀, 신길자, 박금천, 빈순애, 이순덕씨를 비롯하여
처음 만난 김은영, 신희라, 한민경, 김정희씨도 찍었다.
그리고 풍물잡이 김명대씨와 김정국, 김장길, 김민석씨 등 단오굿에 함께하는 무당을 모두 찍었다.

또 이십년 기다려야 사진 받을 수 있냐기에, 손사래 쳤다.
이젠 수첩에 잘 적어 놓았으니, 일주일 전 후로 받아볼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런데,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내일이 약속한 일주일인데, 프린트할 마누라가 바빠 시간을 못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부터 먼저 올리려고 서둘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필카와 디카의 상태를 비교하며, 맞추다보니 늦어버렸다.
인사동 전시장에서는 마동욱씨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신성녀(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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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천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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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자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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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순애(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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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덕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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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길 (1946)

김명대(1962)

김정희(1961)

김민석(1993)

김은영(1978)

신희라 (1970)

한민경(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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