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회화 Painting of 21st Century

곽남신_김희연_배주은_이현우_최수인_최은경展 

 

2022_0901 ▶ 2022_0918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양정무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www.facebook.com/INDIPRESS

 

시선의 온도 - 21세기 회화론 ● 눈이 바쁜 세상이다. 볼 것이 넘쳐나고, 우리는 그것을 언제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쥔 신인류에게 데이터화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두뇌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폭주하는 데이터 속에서 지금 우리의 화가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이번 전시의 작가들의 대답을 들어보자.

 

곽남신_욕심쟁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5cm_2021

곽남신(Kwak Namsin, b. 1953)은 폭주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림자와 실루엣을 통해 이미지의 원시적 기원을 고찰한다. 짧은 노끈과 철선이 형상으로 변이하는 순간은 이미지의 마법 같은 기원을 재현한다. "미래의 회화는 새로운 미디어의 감수성을 닮아갈 것이다. 그러나 소수는 그것에 저항할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곽남신의 회화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각세계 속에서 이미지의 원초적 생명력을 되뇌게 해준다.

 

김희연_노란 빛_리넨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20

김희연(Kim Heeyon, b. 1985)이 포착하는 세계는 스펙터클한 도시도, 빼어난 풍경의 대자연도 아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공간을 신선한 시선으로 낯설게 그려낸다. 일상 공간이 지닌 소박한 내러티브를 미묘한 분위기와 색감을 더해 생생히 되살리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방식을 통해 일상을 재발견하고 그 느낌, 그 존재를 화면 속에 봉인한다. 그에게 "장소들은 하나의 작은 역사이며, 그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흔적이며 자취다."

 

배주은_0의 조각_종이에 연필_120×120cm_2021

배주은(Bae Jueun, b. 1985)은 가벼운 연필로 가볍지 않은 삶의 근원을 잡아내려 한다. 종이 위에 드로잉처럼 연필의 필선을 쌓고 긁어내기를 반복하면서 큰 덩어리를 빚어나가는데 그는 이것을 '종이조각'이라고 부른다. 그는 "끝없고 반복적인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기록한다. 연필로 깎아내고 붙이듯 만든 흑연의 둥근 형상은 그에게 보름달처럼 따뜻한 마음의 풍경이 된다.

 

이현우_surfac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22

이현우(Li Hyunwoo, b. 1990)는 찰나 같은 일상의 온도와 질감을 기억하고 그것을 붓질 속에 담아내려 한다. 그것이 캔버스 위로 전이되는 순간, 그 짜릿함을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형체들과 매순간 변하는 빛이 만나 불씨를 만든다. 그 찰나의 스파크를 캔버스로 옮긴다. ... 그림 위로 불씨가 번진다." 그에게 회화란 일상을 하루하루 새로운 리듬으로 재현해내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신비의 세계이다.

 

최수인_Friend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22

최수인(Choi Suin, b. 1987)의 그림은 바다와 바위, 나무 등 일반적으로 풍경화를 구성하는 자연물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마치 감정과 개성을 가진 개체로서 화면 위에 존재한다. 각각의 그림 속에서 바위와 나무는 서로 의지하고 반목한다. 작가의 개인적 삶 속에서 발생하는 타인과의 관계는 자연물에 투사됨으로써 보는 사람 모두가 공감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과잉 감정의 가짜 상황을 한 번 더 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은경_진도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최은경(Choi Eunkyung, b. 1970)의 시선에서는 아스라이 번지는 대기가 느껴진다. 화면 속에 장막처럼 드리워진 대기는 마치 어떤 사건이 발생 할 것만 같은, 혹은 숨겨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지명은 그 풍경의 역사성을 강조하지만 이는 머지않아 모호한 대기 속으로 침잠한다. 그는 이것이 "'어제'에서 비롯된 오늘 같은 앞날의 풍경을 '그리움'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라고 기록한다. ● 이 전시의 작가들은 한결 같이 미술을 개인의 풍부한 감성의 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과 일상의 삶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넘쳐나는 현대의 시각문명의 홍수를 유유히 헤엄쳐 넘어가려는 듯 보인다. 작은 서사의 위대함을 진지하게 그려나가려는 이들의 태도는 이미지의 본원적 힘을 되살리기 위한 전위적 움직임으로, 이 움직임이 21세기 시각문화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양정무

 

Vol.20220902h | 21세기의 회화 Painting of 21st Century展

껍데기

곽남신展 / KWAKNAMSIN / 郭南信 / mixed media
2014_0312 ▶ 2014_0430 / 월요일 휴관


 

곽남신_포토제닉 Photogenic 제작 장면_트레이싱지에 잉크젯 프린트, 먹 드로잉_300×300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118j | 곽남신展으로 갑니다.

곽남신 홈페이지_www.kwaknamsin.com

 

초대일시 / 2014_031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곽남신의 '껍데기', 그 표면(surface)의 무게 ● 덧없음에 대한 체험적 인식은 사람을 여유롭게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멋이 그런 거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법은 없다.' 굳이 『논어』의 공자에게 없는 네 가지(四無) 중 하나, '기필(期必)'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50대를 넘어가는 중년이라면, 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말이다. 젊은 시절의 집착과 욕망은, 그것이 외모든, 돈이나 권력이든 아무리 애써봤자 거기서 거기인데, 그렇게 아득바득 지내는 우리의 일상사는 자조(自嘲)를 자아낸다. 이런 생각을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을까"를 자문할 때 떠오르는 작업이 곽남신의 '표면 회화(surface painting)'이다. ●『껍데기』라 명명한 이번 OCI미술관의 곽남신 개인전은 드로잉, 회화, 네온작업, 그리고 입체설치를 망라한다. 전시에 나오는 35점 중에는 그의 대표작인 '그림자 그림'을 포함한 평면작업 10점과 드로잉 20여점, 그리고 네온작품과 더불어 비닐합성의 입체작업 4점이 최초로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근육 맨 '마초'의 드로잉에 이어 등장하는 커다란 또 다른 마초의 대형 인물 설치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이어 그의 전형적인 검정 모노크롬의 여자 누드 회화「Sexy Girl」(2007)이 그 섹시함을 과시하며 포르노 포즈를 취한다. 이렇게 성적 매력을 거하게 뽐내는 이미지에 이어, 2층의 회화 및 LED작업은 인물의 일상적 동작과 특징적 포즈가 단순한 실루엣과 물리적 표면 변형을 통해 넘치는 해학으로 표현된다.

 

 

 곽남신_홍동지 와상 洪同知 臥像 Gisant of Hongdongji_

연성 우레탄, 모터, 센서_100×350cm, 가변설치_2014

 

곽남신_바디빌더 Bodybuilder_종이에 스프레이, 색연필_84×80cm_2013
 

 

전시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형 설치작업「홍동지와상」(2014)은 작가의 새로운 시도이다. 본래 숙련된 회화의 기본기에 프랑스에서의 판화 수학으로 국내 판화계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그이다. 때문에, 3차원 입체로의 전환은 중견을 훌쩍 넘어선 작가의 젊은 실험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입체설치로의 확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그림자 작가'라는 기존의 명칭이 제한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곽남신이 초기부터 가져온 작업의 주제와 관심사가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화의 '표면'과 입체의 '껍데기'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곽남신의 유동적 표현언어를 단순히 작가의 자유로운 개성이라 말한다면, 이 작가의 중요한 미적 의도를 놓치는 거다. 묵직한 덩어리를 표면으로 채취하여 핵심적으로 시각화하는 고도의 세련된 감각은 그것이 평면이든 입체든 차이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대상을 보는 작가의 시각은 한결같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내려다볼 때 느끼는 거리를 두고 보는 눈이다. ● 그런 작가의 넉넉한 시선과 동일시하여 보는 마초 입체작은 그 '용쓰는' 자태가 안쓰럽기만 하다. 달밤에 체조하듯, 자신의 남성성을 한껏 '일으키려' 애쓰다 힘에 부쳐 쳐졌다가 다시 또 시도하는 모습에서 부질없고 한시적인 젊음의 과시를 관찰한다. 그리고 이 남근적 역량에 대한 집착은 돈과 지위를 포함한 모든 권력에 대한 욕망과 과시로 확대 해석된다. 곽남신 작업의 핵심 미학은 이러한 '보편성'의 추출에 있다. 말하자면, 그가 설정한 인물 각각의 동작과 상황은 그 개별적 내러티브가 관건일 수 없다. 개별성을 통해 수렴되는 보편적 아이디어가 굵직하다. 심각한 덩어리를 얇은 예리함으로 펴 보이는 평면과 껍데기이기에, 단순한 가벼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작업이다. 작가가 "주제에 대한 심각한 대응방식이나 두툼한 마티에르 대신 가벼움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고 할 때, 우리는 작업의 '가벼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직감한다. 묵직한 덩어리의 무게를 가능한 한 떨궈내고 심각한 척하지 않는 점이 곽남신의 매력이다. 일상의 요지경을 유머와 위트로 포착해 낸 그의 이미지는 현학적 묘사가 필요치 않다.

     

 

 곽남신_끄-응~! Mhmmph!_연필 드로잉_76×56cm_2013

 

곽남신_바디빌더 Bodybuilder_종이에 색연필_76×56cm_2013

 

 

그런데 이러한 인간만사, 희로애락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은 판단적(judgemental)이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나의 작업에 쓰인 모든 소재는 덧없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라고 했나 보다. 그의 작업에서는 그 인물의 종류(성별)나 색깔이 별반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한 분류나 선긋기는 평면 이미지의 실루엣이 지닌 보편 미학에 갈등 없이 녹아든다. 그래서 내 것, 네 것의 구분이 도통 철없어 보인다. 그래도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냉소적이지 않다. 한 때의 호기로 안간힘을 쓰는 일상의 세태에 대한 연민은 어느새 유머로 전환 돼 있다. 그의 작업은 보는 이를 웃게 한다. 누군가 그랬잖나. 비극보다 희극이 더 힘들다고. 중간에 반전이 있는 유머의 구조는 여유미(旅遊美)를 불러온다. ● 그의 함축적인 모노톤 작업에서는 형식과 내용이 따로 돌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그림자가 실재의 대상과 분리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의 '모티프'인 그림자는 존재와 대비되는 게 아니다. 실재와 허구는 애초부터 따로 있지 않았기에. 그의 작업을 통해 보는 실재의 기반이 바로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로, 곽남신의 '껍데기' 회화가 비어 있지 않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덧없는 욕망이 바로 삶이었으니 씁쓸히 웃을 수밖에. 그렇다면 허구는 주어진 실재인가. ● 그래서 '그림자 작가'로 알려진 그의 그림자를 다르게 봐야할 것이다. 서구에서 그림자는 사진의 정체성을 받쳐주는 인덱스(index) 개념의 가장 명백한 사례이다. 실존의 증거이자, 존재하기(being)를 눈으로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런데 서구 이분법의 핵심인 존재/부재 사이의 구분은 사물을 보는 작가의 시선에 녹아 희미해져 있다. 때문에 허상이 아닌 그림자, 미완(未完)이 아닌 실루엣, 그리고 꽉 찬 껍데기를 보는 것이다. 이 그림자와 실루엣, 그리고 껍데기는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실존을 함축하고 가시적인 것을 넘어 비가시적 진실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는 자화상을 여기저기 그려 넣었는데, 가르마로 나눠진 '더벅머리' 실루엣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나타낸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그 '껍데기'에만도 충분히 담긴다는 듯.

 

 

 곽남신_추락연습 Practice of Falling down_네온, 합판에 각목_가변설치_2013

 

곽남신_세레모니 Ceremony_종이에 스프레이, 색연필_63×85cm_2013
 

 

회화력을 기반으로 한 판화가이기에 매체의 자유로운 활용은 곽남신의 장점이다. 회화과 졸업 후 1980년대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의 판화 탐구는 그의 표면 회화의 미적 맥락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사진이 있다. 동작이 중요하고 역동적 제스쳐를 절묘하게 포착, 대상의 본질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회화를 '흑백사진같은 그림'이라 말할 수 있다. 인물의 정적 묘사가 아니라, 제스쳐와 동작의 포즈가 사실 곽남신 작업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습관적 포즈를 취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징적 움직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카메라의 시선을 닮아 있다. 그러한 표현의 형식에서는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의 스타일리쉬한 흑백회화가 연상된다. 그러나 곽남신의 표면 회화에서는 대상에 대한 거리감이 확보되어 거기에 연민과 조소, 그리고 비판이 삽입되어 내용적으로 판이하게 다르다. ● 곽남신의 얇은 이미지와 간결한 실루엣은 일상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요약한다. 석고작업을 할 때 덩어리를 주물로 뜨듯, 그의 껍데기는 일상적 삶의 구조틀이다. 빈 것이기는 하나 '없음'이 아니요, 표면이기는 하지만 피상적이지 않은 이유이다. 개념적, 언어적 표상이 범람하는 오늘의 미술계에 가볍게 '한 방 먹이는' 작업이다. 권력과 욕망을 위해 질주하던 우리 자신에게 잃어버린 게 무엇인가를 뒤돌아보게 하니 말이다. ■ 전영백

     

 

Vol.20140312f | 곽남신展 / KWAKNAMSIN / 郭南信 /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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