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씨

몸이 아프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순 없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한 달에 두 장씩 주는 무료목욕권을 아주 요긴하게 쓴다.

대개 비 오는 날 몸이 뻐근하고 아플 때 사용하지만, 이번엔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간 것이다.

냉탕 온탕을 드나들며 나부대니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다.

 

서울로육교를 거쳐 광장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십여 년 동안 서울역을 누볐던 노숙인 김지은씨가 아닌가?

서울역 노숙하면 그부터 떠 올릴 만큼, 서울역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가 두세 달 전부터 보이지 않아 늘 궁금했는데,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넥타이 휘날리며 돌아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 손을 잡았더니,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갈 데가 어딧어요. 빵이지...”라며 말을 흐린다.

 

차마 자존심 상할 것 같아 무슨 죄로 갔냐고 물어볼 순 없었지만,

추측컨데, 남의 옷이나 탐내다 문제 생긴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술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싸우지도 않아 폭행에 휘말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자동에 조현성 정신질환자가 유독 많듯 그 역시 그런 병인 것 같은데,

먹고 자는 것 보다 오로지 멋 부리는 데 치중한다.

 

볼 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선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에는 멋 부릴 옷이 없었던지, 런닝 셔츠에 넓적한 넥타이만 메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게 몸이 좋아지고 힘이 실려 있었다.

삼시 세끼 밥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고 잠재우며,

짐승처럼 사육 당하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출감 기념 초상사진 찍자고 했더니, 반색을 한다.

멋 부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서울역광장을 거쳐 동자동으로 건너오다 또 한 사람 반가운 이를 만났다.

송범섭 역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건너 마을로 이사 갔다고 한다.

오래전에 찍은 기념사진이 있어 방에 데려가 사진을 찾아 주었더니,

이왕 주는 김에 초상사진도 한 장 찍어달란다.

 

송범섭씨

이젠 어디 가나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오랜만에 나타난 사람은 죽은 처삼촌 만난 듯 반갑다.

대개 이승을 떠난 사람이 많아지고, 이사 온 빈민만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질 존재가 아니던가?

죽기 전에 복 받을 짓을 해야 저승 가서 푸대접 받지 않을 텐데, 가진 것이 없으니 복 지을 건덕지가 없다.

열심히 사진이라도 보시하면 잘 봐주지 않을까 위안한다.

그러나 몸은 비틀거리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The Act)

박부곤/ PARKBOOKON / 朴富坤 / photography

2023_0912 2023_0924 / 월요일 휴관

박부곤_위례신도시-8_C 프린트_152×190cm_2020

박부곤 홈페이지_www.bookonpark.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공간 미끌

gallery gong-gan Miccle

서울 종로구 종로 74 B1

Tel. +82.(0)10.3117.0697

www.micggle.com

 

벽이 생긴다면,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페렉은 그의 산문집 공간의 종류들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 공간이라 지칭되는 것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공간이다. 명명함으로써 증식되는 일상의 공간에 대해,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에 대해 페렉의 끊임없이 질문하고 분류하며 기록하는 행위, 즉 그의 글쓰기는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하게 한다. 마치 앙리 미쇼가 "나는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공간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이는 기호로 시작되는 질문이고 의심이다.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모든 공간은 같을 수 없으며 그 이동도 지루하지 않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페렉에게 산다는 것은 하나의 사유에서 다른 사유로 최대한 명료하게 이동하는 것이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3_C 프린트_96×120cm_2020

박부곤의 작업을 지켜본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이 기간을 전, 후로 나누어 보면 먼저, 신도시 개발 현장의 땅을 기록한 "대지(The Land)" 연작과 그 현장을 돌아다니는 자신을 기록한 "트래킹(Tracking)" 연작이 있다. 이후는 현장에 세워지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찍은 사진과 기계장치를 결합해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이 작업의 중심에 있다. 이처럼 그는 인간에 의해 완벽하게 탈바꿈되는 땅의 풍경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열 번의 개인전에서 참으로 성실하게 보여 주었다. 그의 작업은 분명 자본과 결탁한 인간의 욕망이 축조하는 바벨의 탐색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읽기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자는 그의 사진 앞에서 땅의 권리를 혹은 인간 종 아닌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파괴된 땅의 미학적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아이러니한 경험도 가졌다. 특히 장 노출로 빛의 이동 경위를 보여주었던 사진은 구도적 풍경으로까지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성의 확장성을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을지 묻게 된다. 물론 일부 작업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지(The Land)""트래킹(Tracking)" 연작 대부분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했던 작가의 일상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속 촬영지는 그의 집에서 직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신도시 건설 현장이고, 사진을 찍었던 시간은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이었다. ㅡ여기서도 그의 성실성은 드러난다.ㅡ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노골적인 풍경을 의미가 사라진 텅 빈 공간으로 만들었다.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꽤 큰 규모의 설치작품 또한 엔지니어란 그의 직업을 안다면 이해가 된다. 그는 기계장치에 연결된 램프의 점멸로 빛과 어둠을 표현했고, 이는 공간의 왜곡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했다. 연극에서 보이지 않던 공간을 보이게 하는 조명의 효과처럼 말이다. 이렇듯 빛의 강도는 빈 공간을 생성하였고 감상자는 하나로 뭉치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0_C 프린트_64×80cm_2016
박부곤_위례신도시-24_C 프린트_64×80cm_2021

이번 전시, (The Act)에서 새롭게 보여주는 사진 또한 그의 일상과 밀착된 작업이다. ㅡ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 다수이다.ㅡ 그는 몇 해 전 자신이 기록하였던 현장 중 한 군데인 위례 신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의 첫 삽은 대단지 아파트 공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 입주민은 크고 작은 공사 현장에 매일 노출된다. 심지어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창밖 풍경이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파트와 상가 빌딩이 들어서면서 주변 공사 현장에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적나라하게 현전하는 욕망의 장면만 크고 단단한 이미지로 남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빛의 강도로 사진적 공간을 발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림막을 연극의 막(act)과 같은 개념으로 그는 해석한다. 연극에서 막(act)은 공간의 변화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차단/생성하는 작용을 한다. 공사장 가림막의 용도도 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가림막 뒤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가림막에 그려진 자연과 유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공사장에서 쏟아지는 소음과 먼지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면서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유도한다. 그 효과는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단순히 경계를 지을 목적으로 치는 공사장 펜스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틈은 언제나 있다. 가림막 이미지 앞에 멈춰 선 시선 위례 신도시-8, 이미지를 뒤덮은 기이한 덩굴 위례 신도시-23, 이미지와 너무도 완벽한/어설픈 공조 위례 신도시-20/위례 신도시-24은 애초의 의도를 차단하고 다른 이야기를 생성하기 충분하다.

 

박부곤_서울시-10_C 프린트_150×120cm_2022
박부곤_위례신도시-2_C 프린트_64×80cm_2020
박부곤_위례신도-10~15_C 프린트_20×25cm_2021~2

박부곤은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가림막들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가림막에 그려진 그 욕망의 공간에 그는 이미 살고 있다. 그에게 가림막이 새로운 사진적 공간으로 명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발명된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 그에게 그 행위는 사진 작업이다. 그는 가림막 이미지 위에 생성된 공간에서 서성거린다 위례 신도시-8. 가림막을 뚫고 그 이면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위례 신도시-2. 가림막이 무용지물이 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서울시-10. 시간 단위로 공간을 분류하고 기록한다 위례 신도시-10~15. 그렇다, (act)은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act) 하기 위한 것이다. 막의 뒷면에서 새로운 무대를 위해 연출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보다 막을 마주한 관객들이 더 부산스럽다. 조금 전 무대를 잊는다. 다음 무대를 상상하거나 연극이 끝나면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생각한다. 혹은 극 중 인물들은 왜 그래야 했는지 묻는다. ㅡ이 글을 쓰는 순간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디 액트(The Act)가 떠 올랐다.ㅡ 박부곤의 사진 앞에 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사진적 공간을 마주한 우리는 행위(act) 한다. 그가 질문하고 의심했던, 하지만 결코 정의할 수 없었던 그 공간들을 들락거린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한한 공간/우주(space)를 발명하고 이동한다. 나를 돌아다니며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오래전 그에게 그렇게 잠을 줄이면서까지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요, 재미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혜진

 

A Sound of Hammer

이수현/ Sooh Lee / 李秀賢 / photography

2023_0914 2023_0927 / ,공휴일 휴관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2_70×46cm_2023

이수현 인스타그램_@soohleestudio

 

초대일시 / 2023_09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

(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l

@kpgalleryseoul

 

KP Gallery에서 이수현 작가의 A Sound of Hammer전시가 2023914일부터 927일까지 개최됩니다. ● 『A Sound of Hammer전시는 개인의 무의식에 상재하는 '불안'과 이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그녀는 본인이 경험했던 '불안'을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의 감각으로 수용하고 이를 다른 관점의 ''의 의미로 연결하려 시도합니다. 이는 오늘날 '불안'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일반적인 사회적 태도와 다른 접근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점점 더 불안의 내면으로 침식됨을 인지하지만 동시에 '불안'이 스스로에게 자신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환경과 범위 안에서 삶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날 '불안'을 사회구성원들이 지닌 '나약함'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강해져', '참아', '이겨내'와 같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들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KP 갤러리는 A Sound of Hammer전시를 통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이해에 대해 질문하고 이수현 작가가 지닌 삶의 태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KP 갤러리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9_90×67cm_2023

'이따금 나의 머릿속을 두드리는 '망치'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손에 쥐는 순간 이미지를 생산한다. 이는 나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잠재하는 '불안'을 의미하며 역설적으로 나의 시각적 선택에 있어 박동을 만드는 장치가 되어준다.' 나는 미디어 사회 속에서의 개인이 내면 상태의 불안정을 인지할 때, 스스로의 생각과,감정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한 불안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충돌의 심상을 보다 밝은 채도와 다양한 발색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로 전시를 구성하고자 하였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4_120×93cm_2023

이번에 선정된 작품들 중 아날로그 재현 방식으로 묘사한 21세기 보디빌더, 놀이동산에서 인공빛으로 촬영한 추상 이미지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정물 사진들이 큰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나는 각각의 주제를 갖는 이러한 작업 내용들을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A sound of hammer'라는 청각적 은유를 바탕으로 개별이미지가 가진 조형적 특성에 더욱 시선을 맞추어 채택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나는 기존의 '불안'의 정서를 대하는 사회의 단편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역동성과 생의 감각으로 연결 짓는 시도를 하고자 하여, ' 나약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되려 그 자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의 행위들을 재탄생할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6_90×67cm_2023

작업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빛의 번짐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추상 이미지들은 오랫동안 내가 불면을 겪었던 시기에 촬영한 것이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밝아 오는 순간에 나의 감정과 모순적 의미를 내포하는 외부 환경을 찾아 그 안에서 다양한 순간을 채집하듯 이미지로 기록하였다. 나는 종교적 공간인 루앙대성당을 반복해서 따라가빛의 인상을 담은 모네의 행위와 그에 따라 파생된 '시뮬 라르크/ 시뮬라시옹' 의 개념을 차용하여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개인의 왜곡상태를 인공빛을 사용하여 연속 선상에서 재생산하고자 하였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4_111×14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7_120×90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_20_120×111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2_90×6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1_50×3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3_90×6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1_37×50cm_2023

보디빌더의 작업은 영국에서 만난 보디빌딩 선수들을 각각 VHS와 필름으로 촬영해 현재 시제의 인물이 마치 과거의 지점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호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써 표현하고자 하였다. 과거 자본주의 시대의 노스텔지아를 인위적으로 연출하여 지금 현재 인간의 힘이 가지는 상징성의 가치를 되묻는다. 이수현

 
 

전시 치루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보니, 이제 몸이 다 된 것 같다.

보름동안 치룬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돕느라 혼 줄이 났다.

전시 끝난 지가 제법 지났건만, 아직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틈만 나면 더러 눕고 싶지만, 일을 놔두고 어찌 잘 수만 있겠는가?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 외에는 컴퓨터만 끼고 산다.

 

 서울시에서 준 '이름다운 동행 사업' 무료 식권이 없었다면,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 날 먹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자동 사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게다.

없는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움직여야 살 것 아니겠는가?

고독사를 줄이는데 서울시의 식권사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쪽방 촌에 한정할 게 아니라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이다.

 

동자동에 정해진 식당만 열 곳이 넘지만, 늘 가는 곳만 간다.

처음엔 중국집 등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골라 먹었으나, 지금은 두 집만 다니며 집 밥처럼 찾아 먹는다.

다들 김밥집으로 몰려 그 집만 파격적인 매상을 올려주지만,

한 달 전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에 배탈 나, 온종일 쏟아 부은 적도 있다.

이후부터 그 식당은 발길을 끊었는데, 여름철엔 위생이 최우선이다.

 

지난 7일엔 식당 찾아가다 일전에 초상사진 찍은 이기영씨를 골목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쪽방에 올라가 뽑아 둔 사진을 가져다 주었는데,

옆에 있던 채남규씨가 자기 방에서 한 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다.

채씨는 쪽방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선배 격이지만,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같이 술자리를 했거나 특별한 연이 없으면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이웃이 많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아마 자기도 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나를 방에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경기여인숙’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코 구멍만한 방세가 한 달에 32만원이란다.

방세가 비싼 줄 알지만, 방세 싼 곳 찾기도, 옮기기도 귀찮아 눌러 산다고 했다.

방안에서 초상사진을 찍고 나니, 막걸리를 내놓았다.

먹는 약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해 64세인 채남규씨는 전라도 부안이 고향으로, 반평생을 미장 일하며 살았단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산구청의 자활근로사업에 나가는데, 그것도 반타작이라 한 달에 팔십만원 받는단다.

방세주고 술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한 덕에 백만 원이나 통장에 남았다며 자랑 질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수시로 오줌이 마려워, 방안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았다.

파리 눈물만큼 나오는 오줌을 모아 한꺼번에 버린다는데, 그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활 나가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대 입구에서 담배꽁초 줍는 일 한단다.

제일 무료한 일이 담배꽁초 줍는 일이라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 쳤다.

주울 꽁초만 있다면 시간 보내기는 안성마춤이나, 주울 꽁초가 없어 지루해 미치겠다며 투덜거렸다.

자활이란 게 가난한 사람 돕기 위한 복지사업이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다른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듣는 중에 채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어 댔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일어 서질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한 일이 생긴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좋아 남이 어려운 사정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없는 사람이 인심 좋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김상진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동자동에서 몇 안 되는 먹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김상진씨는 사진을 두차례나 찍었으나, 내키지 않아 다시 찍을 참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고여 실패했고, 두 번째는 나의 실수였다.

짝을 때 좀 많이 찍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두세 컷 찍고 끝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평소의 촬영 습관이라 어쩔 수 없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나 찍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좋은 초상을 찍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았다.

 

 새꿈공원에서 유정희씨를 만났는데, 술이 취해 길바닥에 퍼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사진 달라고 졸랐는데, 술이 취해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정재은씨는 유씨에게 빌려 준 돈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는데,

돈 생기면 술 마시기 바빠 갚을 여유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공원 안쪽에는 자선단체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나왔는데, 이준기씨도 상담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 곳은 갈 일 없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은 '法' 법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친다.

무력으로 밀어 부친 군인들이 판을 친 군부시대에는 저항할 힘이라도 생겼지만,

남의 뒷구멍이나 뒤져 독제하는, 군부보다 더 무서운 검부시대에 살고 있다.

 

공원 한 쪽 구석에는 어떤 낯선 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애잔한 선율이 공원으로 번져 나갔는데,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 / 조문호

 

박종호의 나목’ 그 황량함에 대하여...사진전이 

 96일부터 23일까지 충무로2가에 위치한 아주특별한사진교실에 초대 전시되고 있다.

 

 먼저 나목이란 제목 자체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나목으로 등단하기도 했지만, 신경림 시인의 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각예술로는 박수근화백의 나목에 이어 사진가 임응식선생의 대표작이 줄줄이 떠오른다.

벌거벗은 나무로 벌거벗은 인간을 말한 그 상징성이...

 

1983년 발행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 게재된 임응식선생의 '나목', 글은 고 이명동선생께서 쓰셨다 .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대 부산에서 촬영한 임응식선생의 나목은 포화에 불타버린 앙상한 가지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려는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했지만, 박종호의 나목은 사진으로 쓴 시에 가깝다.

 

박종호는 작가노트에 기다림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며,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그 봄을 말이다.

그 때가 오면 앙상했던 나목에는 푸르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나목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진 겨울 한가운데 서서 그 시간을 인내하라고 한다.

그 속에 봄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그 속에 생명을 간직한 채 말이다.

그렇게 나목은 찬란하게 빛날 그 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박종호의 작업노트를 읽다보니, 근원적인 인간의 모습이 나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모두가 나목처럼 벌거벗은 존재로 오지 않던가?

 

 박종호의 사진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앙상한 나목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이미지의 형상성이나 심미감에 앞서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깔려있는 것이다.

 

아래 적힌 신경림시인의 나목시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소외된 자들의 상징이고,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은 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인간의 간구일 수도 있겠다.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시는 9월 23일까지 열린다.

 

/ 조문호

 

박종호 나목그 황량함에 대하여...’

전시기간 202396-23(12:00-19:00, ,월 휴관)

서울 삼일대로(충무로2)414 신원빌딩 401

아주특별한사진교실’ 02-771-5302

 

 

 

Auspicious Snow

엄효용/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3_0907 2023_0924 / ,화요일 휴관

 

엄효용_2016030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초대일시 / 2023_09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화요일 휴관

 

고공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

Tel. +0507.1358.3076

 

상서로운 눈과 그 눈에 덮인 세상 엄효용은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오는 눈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눈이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작품을 벽에 세워 걸었으니 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온 빛의 입자들처럼 명멸하며 다가오는 눈송이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송이들은 캄캄한 삶에도 간혹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내어 보는 반짝이는 용기 같기도 하다. 때로 화면을 가득 메운 함박눈의 형상은 모든 애틋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함성이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오다가도 문득 고요하게 잦아드는 눈 이미지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으로 조용하게 소란스럽다.

 

엄효용_20171124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171218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302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_삼방로 느티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소양로버즘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18
엄효용_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의 개인전 Auspicious Snow는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와 겨울 숲의 정적으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는 눈을 주제로 한 신작들과 기존 작업 중에서 겨울나무 이미지들만 모아서 엮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눈밭 위에 서 있거나 눈으로 덮인 겨울나무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면, 밤 사이 내린 눈이 그렇게 나무들과 만난 듯하다. 작가의 겨울나무들은 기존 작업 중에서도 그 숨결이 유독 부드럽고 정적이다. 스스로 부차적인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본질만을 남긴 나무의 메마른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혹한 속에 홀로 서서 의연히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는 뜻밖에도 관람자들의 마음에 추위가 아니라 따듯함을 건내준다. 겨울나무 이미지의 이러한 맥락은 신작 눈 연작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눈송이들의 여린 목소리와 겨울나무의 낮고 평화로운 숨소리는 작품 앞에 선 이들의 와해된 마음을 넉넉히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훈기를 지닌 엄효용의 겨울 사진들은 외로움과 결핍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현승

 

엄효용_장성천길 소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3
엄효용_종합 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엄효용_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겨울이 오면눈이 내리길 기다린다.겨울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눈, 바람, 빛이 만나면한 편의 교향곡에 맞추어눈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중력을 가지는 모든 것은신비함을 품고 있으며그것을 숭배하는 마음으로오늘 하루를 채워간다. 엄효용

 

 

눈을 감아도 보이는 툭 툭 Detached

최성임/ CHOISUNGIM / 崔成任 / installation

2023_0827 2023_1001 / 추석 당일 휴관

최성임_아주 오래된 나무_철제 프레임,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공, pe망, 실_가변크기_2023

 

최성임 홈페이지_www.sungimchoi.com

인스타그램_@sungimchoi_works

초대일시 / 2023_090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추석 당일(929) 휴관

 

아티스트 토크 / 2023_0916_토요일_04:00pm

움직임 워크숍 / 2023_0930_토요일_03:00pm

 

기획 / 강은미_박현

디자인 / 김아해

사진 / 전병철

설치 도움 / 스톤김_최혜진_최성문

후원 / 서울문화재단

 

 

온수공간

ONSU GONG-GAN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74 2,3

Tel. 070.7543.3767

www.onsu-gonggan.com

 

이곳 아닌 저곳 ● … 그것의 역사가 존재하게 되는 것은 작업자가 그것을 자료로 수집한 순간부터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서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다. 그래도 그 흔적을 잊을 수는 없다. 어느 날 그렇게 눈앞에 나타난 씨앗의 색깔, 헝겊의 글자(아를레트 파르주, 아카이브 취향(파주: 문학과지성사), 김정아 옮김, 2020, p.21.) * 최성임에게 작가로서의 10년이 찾아왔다. 반복되는 돌봄 노동을 자기 재현으로서 풀어내어 일관된 작업을 펼쳐 온 작가는 이번 전시 눈을 감아도 보이는 툭 툭에서 '떨어짐'에 주목한다. 익어서 툭 떨어져 일그러진 감. 아무렇게나 벗어 놓아 몸의 일부만 알아볼 수 있는 허물과 같은 옷가지. 노안이 찾아와 뿌옇게 보이는 시야. 자신의 주양육자와도 다름없었던 할머니의 죽음. 그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또 다른 시간의 배열로 줄 세워 전시장에 가져온다. 여전히 삐그덕대는 계단, 다세대 주택을 개조한 전시장이기에 끊임없이 채울 수 있는 방 안들,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수 없는 유약한 천장, 합판으로 된 벽체, 증축하여 쌓아 올린 3층의 다락방까지. 이 모든 것이 제약이자 도전적으로 작용한 이 요소들은 작가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이번 전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주춧돌이 됐다.

 

최성임_물러난 얼굴_아크릴, 실, 비즈_Ø 150cm×5, Ø 130cm×2_2023
최성임_살갗_플라스틱판, 연필 드로잉_가변크기_2023

최성임 개인전은 온수공간을 하나의 유기체적 몸체로 바라본 작가의 그 시선에서 출발한다. 뼈와 살이 있는 공간, 기관과 기관이 만나는 그 통로, 피가 흐르는 혈관이 지나는 길목. 몸으로 상정된 전시 공간은 얽히고설켜 자란 덩굴과 같이 안팎으로 넘나들며 생동한다. 그 모든 몸이 끝나는 공간인 3층에 최성임은 책의 집(2023)을 배치했다. 이는 단단한 물성인 책과 그 책을 읽는 몸이 가장 가까이에 만날 수 있도록 고려된 평상으로, 지난 10년의 기억이 퍼즐처럼 담긴 8권의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다. 이곳은 앉을 수 있도록 하여, 몸으로 상정한 온수공간을 '안에서 밖으로' 볼 수 있도록 시점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제 관람객은 3층에서 2, 1층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에 몸 안쪽에서 생성되는 뒤엉킨 (그래서 피같이 진한) 서사와 겹쳐볼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주안점이 되는 키워드는 작가가 지속해서 천착했던 긴장과는 반대인 '허물(어짊)'이다. 아카이브 공간 너머 창밖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2023)가 쏟아진다. 끝없는 나무(2015~) 시리즈의 신작으로 최대 28미터가 넘는 PE 망 안에 수만 개의 플라스틱 붉은 공이 매달려 있는 대형 설치다. 이 광경은 마치 온수공간에서 피를 쏟아내는 듯, 공간 안쪽까지 붉은색이 스미며 공간을 물들인다. 붉은색은 뼈의 일부인 누워 있는 몸(2023)에 관통하며 또 다른 몸으로 변모한다. 계단을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며 맨드라미가 있는 풍경(2023)을 스친다. 전통 민간요법으로 지혈제의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맨드라미는 쏟아지는 피를 응고하여 하나의 지층을 쌓아준다. 사운드 작업_살갗에 닿기(2023)는 다시금 작업자와 작업자가 초대한 사물들과 맞부딪히는 사운드로, 우리에게 지혈된 몸을 피부 그 가까이에서 접하게 한다. 공간 1층 전면에 빼곡히 붙어있는 살갗(2023)은 미색의 반투명 색지에 드로잉 작업으로, 이는 아주 오래된 나무의 붉은빛을 투과한다. 이렇듯, '허물(어짊)'은 과거의 작업이 단단한 물성으로 쓰인 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시작되어 다시금 뼈, 늘어진 살점, 지혈된 피, 살갗이라는 부산물이 파편화된 장면으로 펼쳐진다.

 

최성임_살갗에 닿기_사운드 작업_00:07:00_2023
최성임_황금 이불 + 빛나는 벽_와이어 타이, 합판, led_240×310×245cm_2023
최성임_맨드라미가 있는 풍경_led, pe망, 실_가변크기_2023

수수께끼 같은 인생에서 죽음을 앞둔다는 것은 생의 진리다. 최성임은 그래도 살아있는 한, 이곳과 분리된 저곳의 생과 연결될 수 있는 그 흔적들을 찾고자 한다. 그는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을 감각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아리아드네의 실이 묶인 그 미로에 몸을 던진다. 생의 끝에 서게 된 몸이 피부에 닿았던 그 감각을 기억하기 위하여.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자전적 세계가 당신 몸 어느 한구석에 새겨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박현

 

최성임_두 개의 귀_철제 앵글, 플라스틱, 솜_215×240×120cm_2023
최성임_누워 있는 몸_패브릭, led, 콜라겐 케이싱, 철제 스프링,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가죽_가변크기_2023
최성임_가족을 위한 식탁_와이어 타이, 비즈, 스테인리스 스틸, 합판_990×940×70cm_2023

나의 몸, 나의 집,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몸은 참으로 특이한 '존재'. 몸은 세상을 마주하는 창이면서 또 자아를 현시하는 무대이자 또 그 자체로 주인공이며 수많은 불화가 찾아들며 화해가 일어나는 장소다. 나의 의식이 거처하는 곳은 나의 몸이며, 삶이란 나의 몸이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반복이다. 인간이 존재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고,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과정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기억으로 새겨지는 곳 또한 몸이다. 그렇게 나의 몸은 이 세상에서 주고 받았던 모든 관계의 보관함이다. 최성임 작가는 집에서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놓인 사물들과 친교를 맺으며 작업을 시작한다. 시선이 박혔던 사물을 움켜쥐고 자신의 사유를 통과시킨 형상을 집약적인 노동으로 잉태해 세상에 내어놓았다. 그의 지난 작업이 집의 안과 밖, 그 사이의 몸의 위상학에 대해 언급해왔다면, 이 전시를 통해 제시되는 신작은 실체적인 대상인 몸, '자기자신'을 물화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들이 전시공간으로 건너와 거주를 시작하면, 누군가의 집이었던 공간은 거대한 육체로 변모한다. 작가는 지금까지 사용한 설치의 전형,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며 팽팽하게 당겨지고 매끈하게 정리되는 일련의 방식을 뒤집는다. 신체의 변화를 통해 삶의 곡절들을 온전히 목도한'오늘의 몸'3개 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배치시키며 늘어뜨리고, 내려 놓고, 펼쳐놓는다. 대문을 들어서면 붉은 색의 가지가 정원과 집의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외벽을 덮은 거대한 다발, 선홍색 망에 알알이 들어찬 거대한 덩어리는 태초의 인간도 지켜보았을 법한 형태가 뒤틀린 아주 오래된 나무의 몸통을 닮았다. 모든 생명활동이 일어나는 몸의 경계를 구성하는 피막은 불투명하다. 건물의 유리창을 뒤덮은 피부색을 띤 정사각형의 트레이싱지에 새겨진 반원형의 반복된 드로잉은, 그 자체로 생명의 리듬이자 손끝에 각인된 지문, 혹은 신체를 따라 흐르는 완만한 곡선을 상기시킨다. 몸이라는 유기체에는 생명의 리듬이 있고 모든 접촉에는 울림이 있다.

 

최성임_안기, 2023_가죽, 실, 솜_100×220cm×5_2023
최성임_책의 집_합판, 가죽, 실, 8권의 책_130×240×45cm_2023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운드 설치는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작가의 작업실에서 채집 된 백색소음이다. 황금 이불을 위한 와이어 끈을 엮거나, 구슬을 꿰거나, 실을 자르는 등의 반복 된 행위가 신체에 부딪히며 만들어낸 일련의 소리는 고요한 전시장에 작은 균열을 낸다. 전시장 1층에는 노안으로 흐려진 시야에 대한 감각을 제시하는데 가려진 작업들 사이로 사운드와 빛이 여리게 새어나오며 작품이 제시된 무대의 뒤편을 상상하게 한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들어서면 다양하게 변주 된 몸이 드러난다. 태어난 몸이 아닌, 살아낸 몸이자 죽음을 향해가는 몸이 1인 다역의 배우처럼 곳곳에 등장한다.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패널은 두 개의 귀라는 작업으로 외부의 진동을 흡수하는 고막을 닮아 세상을 감지하는 피막으로서의 신체를 더욱 극대화한다. 누워 있는 몸은 우리가 매일의 시작과 끝에 마주하는 그 자체의 덩어리이며, 생명의 시작과 끝이었던 수평으로 뉘어진 몸이다. 기관인지 하나의 장치인지 세계를 향해 열린 표면인지 알 수 없는 몸의 부분들이 공간을 점유한다.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들어선 곳에는 예성-예술가로 살아낸 몸, (flesh), 그 자체를 닮은 듯한 두 개의 작업, 가족을 위한 식탁, 안기가 제시 된다. 커튼처럼 늘어진 살덩어리의 다발을 걷어내고 3층으로 올라가면, 이 전시공간의 가장 높은 장소, 신체의 가장 높이 있는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서 책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전시가 끝나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작업들이 정박된 기억의 장소로서의 아티스트북 8권이 제시되며, 책은 몸의 피부와 같은 표면 위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자기를 경험하는 방법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타자와 만난 수많은 경험에 대한 지각은 나의 신체에 새겨진 흔적에 흐르는 감각을 바라보는 일이다. 세월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기억의 장소도 몸이고, 팽팽했던 근육과 힘으로 버티게 한 것도 내 몸이다. 나의 몸이라는 무대를 바라보며 모든 곳에 내적 의식을 위치시키며 의미를 오랜동안 지켜보는 행위는 삶을 기꺼이 살아낸, 그리고 살아나갈 시간에 대한 깊은 유대이며 우정의 형식을 띤 사랑의 제스처가 될 것이다. 강은미

 

최성임은 집과 몸, 몸의 장소, 집의 자리라는 인간이라는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머무를 자리를 탐사해왔다. 일상공간에서 만난 사소한 물질에서 촉발된 사유의 운동은 사적 기억과 연합하며 수행적인 노동을 통해 작품이 되고, 전시장이라는 영토에 그의 집을 지으며 연대의 지점을 찾아왔다. 온수공간에서 열리는 개인전 눈을 감아도 보이는 툭 툭(Detached)은 작가의 작업에 새겨져있던 육체에 대한 모티브를 발전시켜 무대의 중심에 올린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기억 혹은 잔상, 청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인상을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세대를 연결하는 몸이라는 장소에 새겨지는 공동의 기억과 존재적 한계, 생애주기에 따른 신체적 변화와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무력함을 인정하고 모든 현재적 사태를 넘어서는 태도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생활 공간인 집을 신체의 연장으로 삼고, 집이 그 자체로 거대한 몸으로 육화하는 전환을 시도한다. 또한 사운드 작업을 통해 몸의 표면과 물질세계의 마주침에 대한 고민도 내어놓는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흐르며 찾아오는 나이듦이 주는 의미, 생활 장소로서의 집,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몸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테이블에 초대하며, 시간이 몸을 통과하고 다시 또 다른 집을 지어나가며 생성의 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여정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강은미_박현

 

 

Believing is Seeing

최윤정/ CHOIYUNJNG / 崔允禎 / painting

2023_0901 2023_0919 / ,월요일 휴관

최윤정_believing is seeing_캔바스에 유채_30×30cm_2023

최윤정 홈페이지_www.choiyunjung.kr

 

초대일시 / 2023_09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외 전화예약

 

아터테인_아터테인 S

ARTERTAIN_ARTERTAIN S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5

(연희동 717-15번지) 1,2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들 우리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던지는 수 없이 많은 시각적 정보에 노출된다. 이를 통해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의 의지와 별도로 이유를 찾게 되고 합리화시키게 된다. 하지만, 그 정보 속엔 우리의 소비적인 삶이 지치지 말기를, 그 끝없는 소비를 통해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결국, 우리를 둘러싼 정보라는 것은 스스로 찾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이익, 혹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뿐이다.

 

최윤정_pop kids #44_캔바스에 유채_65.2×100cm_2013

최윤정 작가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분석한다. 또한,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감각적인 장면들을 클로즈업해 작가가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뒤에 있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시각화한다. 인간의 욕망은 그 어떤 것 보다 솔직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군가의 이익을 취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이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세상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관망할 수 있는 지점까지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든다.

 

최윤정_pop kids #122_캔바스에 유채_30×30cm_2023

그의 pop-kids시리즈 주인공들의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본 전시의 작품들은 머리카락이라고 인지하기 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경험의 중첩처럼 보인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삶은 어제의 경험과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삶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중첩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어질 수 없으니까. 이것은 시간이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 즉 기억이 이어주고 있다. 그렇게 한 가닥, 한 가닥 서로 얽히고설키고 있는 최윤정의 머리카락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삶을 내일로 연결하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최윤정_hero#03_종이에 실크스크린판화_37×47cm(image), 55×75cm(frame)_2021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혹은 사건들이 과연 사실일까, 혹은 사실이었을까. 눈을 감으면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세상은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사고를, 믿음을 결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형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또한, 이성적인 사고가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윤정_folds #07_캔바스에 유채_80×80cm_2013
최윤정_folds #12_캔바스에 유채_30×30cm_2023
최윤정_folds #10_캔바스에 유채_40.9×24.3cm_2023

최윤정의 머리카락은 바라보고 얻는 사고와 사건에 대한 믿음 이전에 먼저 믿고 바라봤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메시지들을 찾기를 제안하고 있다. 정보 이면에 있을 수많은 이익과 권력을 너머, 메시지와 정보 자체를 우리가 얼마나 잘 활용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우리의 사고가 얼마만큼 확장될 수 있는지, 해서, 그의 작업은 그런 사고의 확장을 바탕으로 하는 오늘과 내일의 중첩이다.  임대식

 

최윤정_folds #13_캔바스에 유채_24×19cm_2023
최윤정_folds #06_캔바스에 유채_33×24cm_2013

최윤정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욕망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보여줍니다. pop kids 시리즈는 미디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에 대한 메시지 중심의 시리즈입니다. 주름의 형태를 양식화한 다소 추상적인 folds 시리즈는 존재를 향하는 의지 그 자체를 욕망으로 해석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시각화 한 시리즈입니다.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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