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족이 되어줄 차를 만났다.

 

네 번째 맞이한 차는 99년산 코란도 밴이나, 떠나보낸 차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편치 않다. 떠나간 갤로퍼는 처음 만날 때부터 나와 세상살이를 함께 마무리하자고 부탁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살기에 지쳤는지 골골대기 시작했다. 산길과 물길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끌고 다니며 혹사시킨 미안함에 전국 장터작업을 마무리하는 올 년 말까지라도 같이 하자며 사정했다. 그 이후에는 정선 만지산자락에 박아 오랫동안 너를 기념하겠다고....

그러나 그는 천상병선생 산소가는 길목에서 기어이 떠나고 말았다.

 

떠나보낸 90년산 갤로퍼는 세 번째 구입했던 차로 10년 동안 사고 한 번 내지 않으며 나를 따라 준 고마운 친구였다. 먼저 주인이 13년 동안 50,000km 뛴 차를 받아 10년 동안 함께 일했다. 2년 전 계기판 고장으로 200,000km에 정지해 있고 외관이나 내장이나 멀쩡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물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아내의 말을 빌면 “경운기 같이 털털거려 주변 차들이 피할 정도의 괴물”이라지만 내게는 너무나 정들었던 소중한 차였다.

 

82년 무렵, 제일 처음 구입했던 중고차는 100만원에 구입한 ‘포니2’ 였다.

겨울바다가 보고 싶다는 여인의 말에 끌려 변산반도 가는 고속도로에서 허공을 날기도 했고, 음주운전으로 면허증도 여러 차례 뺏겼다. 차체가 비틀어져 차문을 끈으로 묶어 다니던 84년 여름쯤, 환경관리공단의 공모전 사진심사장으로 향하다 출근 길 교통체증에 걸려 차가 엄청 열 받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늦어 길 가 변두리에 세워두고 대중 교통편으로 목적지에 갔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차가 불타 있었다. 주변사람의 이야기로는 차에서 황급히 내려 지하철로 뛰어 가는 도중 갑자기 차에서 불이 났다고 했다. 소방차가 출동하여 한동안 난리를 피웠다는 이야기로 그 차와의 인연은 끝났다.

 

87년도, 두 번째로 구입한 차는 1,900만원 상당의 갤로퍼 숏 바디였다.

차를 뽑은 지 몇 일 지나지 않아 당시 부여에서 있었던 '사진인의 밤' 행사에 참가하려 고속도로를 달리다 욕정과 관련된 급 브레이크 사건으로 따라오던 트럭에 받혀 반파되는 전설적인 사건도 만든 차다. 그 뒤 평창 산골짜기 얼음길에 미끄러져 절벽에 떨어졌던 사고를 비롯하여 영주에서 봉화 신동여씨 작업실로 가는 도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전복된 사건도 만만치 않다. 가서 먹으려 막걸리와 전 붙일 밀가루를 차에 싣고 갔는데, 땅이 언줄 모르고 달리다 내리막길에 미끄러져 논바닥에 추락한 것이다. 다급한 상황이었지만운전석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내 꼴이나 얼굴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고꾸라진 적음의 모습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장춘과 신동여씨는 무사했으나 적음은 팔이 부러지고, 도오스님은 머리에 이상이 있다며 엉뚱한 소리들을 해댔다. 이런 저런 사고로 말도 탈도 많았던 그 차는 250,000km의 주행거리를 기록한 채, 2003년 여름 지방의국도변에서 장열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떠나보낸 세 대의 차중에서 세 번째 갤로퍼에 유달리 연민의 정이 남다른 것은 시종일관 아내와 같이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천방지축인 나에게 10년 동안 무사고 진기록도 세우며 전국의 시골 장터를 500여 곳이나 같이 했던 분신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서운함도 잠시였다. 당장 손발이 묶여 일터로 나설 수 없어 10일 동안 집에 들어 앉아 사진자료들을 스캔해 브로그에 올리는 일만 했다. 그 반복되는 지루함에 몸살을 앓던 중 단골 정비소에서 마땅한 차가 나왔다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99년산 2인승 코란도 밴인데 160,000km 뛴 차를 350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인승 밴은 화물용이라 일년 자동차세가 50,000원 정도라는데 귀가 솔깃했지만 당장 돈이 모자라 난처했다. 폐차고물 값으로 50만원 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도 주소지가 서울이나 경기권이었다면 150만원정도의 경유차 폐차에 대한 환경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강원도가 주소지라 그나마 받을 수 없었다. 이 무슨 당치않은 차별적 행정인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마산의 이종호씨가 천상병추모사진집 출판을 축하한다며 거금 100만원을 보내 와 어렵사리 코란도를 맞아들일 수 있었다.

여지껏 갤로퍼 두 종류를 오랫동안 운전해 본 결과 엔진 하나는 튼튼했다. 모두 미션이 망가져 보냈지만, 튼튼한 바디 덕분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두 번이나 굴러 전복할 당시 아마 일반 승용차였다면 차체에 끼어 이승을 달리 했을지도 모른다.

 

새로 구입한 차가 행운을 실어줄지 불행을 가져줄지는 모르지만 첫 시운전에 시동이 자주 꺼졌다. 알고 보니 처음 만난 사이라 생체리듬이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은 승차감도 좋았고 잡음도 적었다. 그리고 어렵게 투자한 만큼 차체를 광고판으로 활용할 생각을 했다. 시골장을 떠 돌아 다니는 차라 광고 효과가 있을 것 같아 밴 뒤편 양쪽에 ‘한국의 장터’ 책 광고판을 만들어 스티커로 붙였는데, 그런대로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후 늦게, 이 사실을 안 장 춘씨가 축하한다며 삼페인을 사왔다. 차에다 터트린 샴페인이 김새기는 했지만, 1막4장의 마지막 시작을 자축하는 축배도 들었다. 일단 오늘까지 서울에서 못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10일 새벽 평창장으로 떠난다. 그리고 만지산 굿당에 야채도 심고, 정선 오일장 출판 기획안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호씨 고마워요.

탈 때마다 당신의 고마움을 되 세기며, 새로운 만남에 대한 축복을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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