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과 경계선너머의 삶을 추구하는 그는 인생의 맛을 노래하는 한량이다. 음악은 그에게 있어 몸이다.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고수는 생계유지의 두려움을 뛰어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삶에는 향기가 담겨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가 중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 염색공장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고, 그가 중학교 2학년 때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한 그는 아버지의 자상함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아코디언소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에게 들려주기 위해 아코디언을 배웠다는 그다. 아버지산소에 가서 아코디언연주를 할 때면 아버지가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한다. 운명이란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정해진 운명은 없고, 단지 정해진 것처럼 보일 뿐이란다. 그에게 있어 뮤아트는 선방이다.

 

뮤아트를 들어서는 문앞에는 ‘불특정다수를 원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딱지처럼 붙어있어 묘한 여운을 준다. 1992년부터 준비해, 그 이듬 해 부터 회원제로 운영하는 뮤아트를 이태원에 열었다. 이태원은 그에게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가죽제품으로 시작한 사업은 승승장구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사업한지 10년이 되던 해 큰화재로 부도가 나 방황하다 어렸을 적부터 접하던 음악과 다시 조우했다. 음악을 하면서 마음이 치유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자,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셈이다. 부도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 그는 음악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은 것이다.

 

회원제로 시작된 뮤아트 때문에 숱한 오해도 받았다고 한다. 술집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회원제로 시작했지만, 손님들이 술을 가져오는 일이 잦아지자 술을 팔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집세가 밀리고 전기가 끊기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더운 여름철에 전기도 없이 촛불만 켜놓고 노래연습에 빠져있는데, 영화하는 지인이 일본영화감독들과 뮤아트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음악을 들려주는 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그는 부채를 하나씩 주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어두운 실내에서 밤늦게 까지 노래를 듣던 그들은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며 돌아갔는데, 그들에게 그의 진심이 통했던지 지금도 한국만 오면 뮤아트를 찾는다고 한다.

이태원에서 14년 운영했던 뮤아트공간이 소송사건에 휘말려 문을 닫아야 할 즈음에는 수중에 140만원밖에 없었다. 그동안 뮤아트를 아껴왔던 후배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신사동에 다시 뮤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째즈와 국악, 클래식, 모든 음악이 어울리는 문화공간인 뮤아트에선 봄맞이 페스티발과 가을축제를 열때면 많은 뮤지션들이 찾아와 개인기를 펼친다. 다양한 악기들이 어울려지는 화음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인생이 제로섬이라고 말하는 그는 뮤아트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예술가 지인들의 전시회 때마다, 후배들을 데려가 자선공연을 해주고 있다. 그도 한때 화가가 꿈이었다. 인사동에 전시가 있는 날이면 쉽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악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쉼 없이 수련을 한다. 그의 음색에서 낙엽 같은 향기가 풍기는 것은 유난히도 가을을 좋아하기 때문 일 것이다. 한국적인 퓨전 째즈를 좋아하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솔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앨범작업은 인생에 단 한번인 환갑 때 낸다는 것이다. 늘 그의 옆에 있는 후배 이완수씨는 그를 한마디로 정의해 청양고추라고 한다. 허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숭배하는 이유는 그의 당당함과 마음 깊은 따뜻함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뮤아트는 그가 있기에 에너지가 넘친다. 음악을 통해 넘치는 에너지를 서로 나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사람살이가 뮤아트에서는 음악으로 되살아난다.

 

뮤아트를 거쳐 유명세를 탄 뮤지션들도 많다. 순수하면서도 진정성을 갖기에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요즘 들어 주말에는 각 대학 새내기들의 음악공간으로 활용도를 넓혀 순수한 뮤지션들을 위한 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뮤아트만이 갖는 엔터테인먼트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도시와 인접한 시골에 터전을 만들어, 힘들고 지친 후배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음악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한세상 음악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그는 지금도 에너지를 얻기 위해 뮤아트선방에 앉아 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그는 뮤아트를 통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어 한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을 나타내려면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한다는 그는, 음악에 이어 사람 사는 이야기로 힐링할 수 있는 뮤아트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글 / 정영신

 

20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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