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무렵, 한정식 선생님이 요양 중인 '서초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이일우씨가 페북에 올린 선생님 근황에 편지만 가능하다는 것은 알았으나,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요즘은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양해를 구해서라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샤워하신다기에 기다렸더니 힐체어를 타고 나타나셨다.
몇 개월 만에 찾아뵙게 되었는데, 무척 수척해 보였다.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문병은 난생처음이다.
마치 교도소 면회 간 것처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귀가 어두워 말 끼를 알아먹지 못하는 데 있다. “뭐라고? 잘 안들려..”
할 수 없어 종이에 글을 써 보였다. ‘드시고 싶은 것 없습니까? 사 올게요’
그때서야 필요 없다며 손을 내 저으신다.
이런 식이니, 선생의 건강 상태나 생각을 물어볼 여지가 없었다.
서로 안 서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 선생님께서 정영신을 너무 좋아하셨다.
그러나 이 화적 같은 놈하고 살고 있으니, 미칠 노릇 아니겠는가?
애인이란 말을 버젓이 하셨으나, 차마 손 한번 잡지 못했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동자동에 들어가기 위해 정영신과 이혼한 것을 두고,
“내 쫒지, 왜 만나냐?”는 말을 했다기에 한동안 삐쳐 찾아가지도 않았다.
본래 소인배라 너그럽지 못하지만, 삐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 선생님을 몇 번이나 더 뵐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정동지와 다정하게 손잡은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선생님께서 정력이 되살아나
혈기 충전하여 퇴원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한 은밀한 작전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다른 환자와 달리 선생님께서는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감옥이나 다름없을텐데, 사모님이 계신 집에 가고 싶어 하신다.
아들과 며느리가 당연히 알아서 하겠지만, 집에서 휠체어로 생활하게 하면 안 될까?
부디 강건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편지로 소식 전할 분을 위해 요양원 주소를 남깁니다.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9길 42번지 '서초요양병원' / 전화 02-521-0251
(06709) 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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