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형의 형수, 김태순여사가 떠난 초상집은 잔치집이었다.
떠나보내는 아픔이야 어찌 없겠냐마는,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는 극락길을 어찌 슬퍼만하겠나.
요즘세상, 이리 저리 얽매이고 시류에 빠져 벗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시대에 산다.
이 각박한 세상에 그리운 사람들 어울리도록 멍석까지 깔아주고 가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민폐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형은 장경호씨께만 살짝 귀띔했으나, 그게 될 말씀인가?
장씨가 부랴부랴 사발통문을 보내 곳곳에서 동지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다.

형수님이 희귀병에 걸려 13년을 고생하는 동안, 형은 간병하느라 일손을 놓고 살았다.

형의 60대는 고스란히 형수님 병수발 하느라 보냈다.
그러나 부부가 같이 살아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쉽지 않다.
미운 정, 고운 정 깊이 세긴, 어쩌면 행복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형님! 이제 모든 상념 잊으시고, 오로지 작업으로만 형수님께 보답하세요.

형수님이 세상을 떠나신 둘째 날, 각계 각지에서 협객들이 모였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문화계 거물급 인사들을 만나기도 그리 쉽지 않다.
이는 돈이나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형의 의리와 인간성에 대한 일체감이다.
기억력이 오락가락하지만, 그 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분들은 아래와 같다.

백기완, 주재환, 손장섭, 최 민, 김태서, 김정헌, 유홍준, 임옥상, 박재동, 이애주,

박진화, 이종률, 임진택, 박홍순, 민정기, 문영태, 정복수, 장경호, 박불똥, 최석태,

김준권, 류연복, 이행자, 정희성, 조준영, 김명성, 김정환, 심광현, 김한영, 황호창,

조경숙, 김용철, 이상호, 조신호, 김정대, 배성일, 이인철, 이종송, 성기준, 정동영,

김세균, 이수호, 노형석씨 등 많은 분들이 조문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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