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덩어리들이 회귀하는 연어떼처럼 화폭 위를 가로질러 꿈틀거린다. 빨강 파랑 노랑이 춤을 춘다. ‘색의 신명’으로 작업한다는 이영진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가끔 몸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이 색깔을 통해 분출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때마다 신이 그에게 ‘은총의 색’을 내려준 것이라 믿고 신들린 듯 붓질을 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한양대 간호학과를 나와 1990년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작가는 처음에는 수채화풍의 장미를 그렸다. 그러다 우리 고유 오방색의 매력에 빠져 인간의 소통과 치유 문제를 색면에 녹여냈다. 최근에는 음악의 리듬까지 색채에 담아내면서 율동감을 더하고 있다. 그의 색면 추상화는 2006년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 달력으로 만들어졌다.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그림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치유와 힐링을 선사하는 그림이다.

“몸이 색을 뱉어내는 것 같아요. 저는 색으로 신내림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많아요.”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진다는 소리들을 했어요. 이른바 치유의 그림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지요.” “제가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이 일순간 원색으로 환원돼요. 그것이 몸속의 신명으로 똬리를 틀었다가 분출되지요.”

그가 붓을 잡았다 하면 캔버스 위에 신명 나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그에게도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법조인 집안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대 진학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학 졸업 후에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었다.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풀이마냥 그림에 매달렸다. 결혼 후엔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그림에 가속도가 붙었다.

요즘엔 독일에서 작곡가와 연주자로 활동하는 딸들이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단다. 그는 경기 광주 퇴촌의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붓질에 매달린다. 최근 들어 음악의 리듬까지 색채에 담아내면서 화면에 율동감을 더하고 있다. “생명의 다이내믹한 파동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딸들과의 음악적 소통이 큰 도움이 됐지요.”

그림에 대한 그의 소망은 간단하다. 유명세보다는 사람들에게 ‘작은 힐링’이 됐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술평론가 박용숙씨는 “작가는 연어떼의 회귀에서 생명의 숭고함과 장엄한 미학을 보았다”며 “원시 근본의 본향처에 대한 사유로 빨강, 파랑, 노랑의 본능의 색으로 굿판을 벌이고 있다”고 평했다.

“끝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게 간호사를 포기하고 화가로 변신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마 붓을 놓는 순간까지 그림의 콘셉트를 ‘영혼의 치유’로 끌고 갈 생각이고요.”

20여년 동안 오방색에 집착하며 씨름했다는 이씨의 작품 세계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1990년 초에는 장미를 통해 내면의 강화에 역점을 뒀고 2000년에는 역동적 제스처의 회귀, 2010년 이후에는 ‘색의 신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주목받았다. 오방색 필체로 화면을 장악하면서 영혼의 치유를 신들림처럼 ‘색들림’으로 축조했다. 그의 연어떼와 선율 그림은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큰갤러리(02-732-3848)에서 볼 수 있다.

쿠키뉴스 /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