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진실을 그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존재와 사고라는 주제로 2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온 예술가가 있다. 이태량 작가는 일찍부터 일상 속 언어가 갖는 표현의 한계에 주목했다. 그는 미술이 언어가 담을 수 없는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고 믿고 있다. 오는 9월10일 이 작가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 '독백과 침묵의 발각'이라는 주제로 열여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다가올 개인전에 발맞춰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리했다.

 

1995년 데뷔한 이태량 작가는 어느덧 중견작가가 됐다. 지난 20년 동안 개인전과 그룹전을 포함해 전시 횟수만 200차례가 넘는다. 같은 기간 그는 존재와 사고라는 일관된 주제로 작업했다. 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영상과 설치, 공공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했다.

 

20년 외길

 

최근 이 작가는 갤러리그림손에서 오는 9월10일로 예정한 기획전에 초대됐다. 이 작가 입장에선 열여섯 번째 개인전이기도 하다. 전시제목은 '독백과 침묵의 발각'이다. 이 작가는 지금껏 품어왔던 문제의식(작가적 개념)을 이번 전시를 통해 또 한 번 드러낼 계획이다.

 

과거 초대전을 앞두고 이 작가는 "그림은 '좋은 작업을 해야 한다'라는 명제에 대한 시도가 아니라 '좋은 작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대해 "단지 실재를 재현하거나 증명하는 수단이 아닌 언어의 한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실재에 대한 명료성을 확보하려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언어는 현대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유기체다. 인류역사의 거의 모든 산물은 언어로 전수됐고, 또 습득됐다. 얼핏 언어로 짜인 견고한 세계는 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작가는 어디까지나 '글자'로 된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혹은 감정)를 말이나 글로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언어체계로 표현되지 않는 사고의 영역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람 간의 소통에 한계가 있는 이유다.

 

이 작가의 주제의식은 독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닮았다. '말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말할 수 없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비트겐슈타인처럼 이 작가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논증에 고심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가깝게 그려내고자 하는 이 작가의 열망은 그의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오는 10일 '독백과 침묵의 발각' 개인전
회화 기반으로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실험

 

개념미술을 중심으로 한 이 작가의 작업은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지점이 있다. 그가 그린 많은 회화가 형식면에서 추상화로 구별된다. 그렇지만 이 작가를 그저 추상화가로 단정 짓긴 어렵다. 몇 해 전 전시에서 앤디워홀이나 마릴린먼로와 같은 도상을 빌린 적이 있는 그다.

 

'독백과 침묵의 발각'에서 이 작가는 새로운 설치물 연작을 선보이기로 했다. 기술공학을 차용한 기계, 인물이 등장하는 영상물 등이 작품으로 구성됐다.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기계는 땅바닥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퍼 올린다. 그러면 영상 속 소녀는 '그것'들을 음식으로 먹는다. 문제는 소녀의 감각이 이미 마비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무언가' 말한다. 이 같은 프로세스로 작품은 끝없이 움직인다. 우리 시대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시도

 

미감을 잃은 식사, 의미 없는 말 등은 욕망에 종속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은유한다. 작품 안에서 현대인의 욕망은 무의미하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가가 모든 욕망을 부정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만 이 작가는 관객에게 '낯선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그림손은 "(관객이) 이 작가의 전시를 통해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벽에 낙서하듯 자유로운 터치가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선 흰색과 검은색의 비중이 커진 점이 눈에 띈다. 여러 작품 가운데 '논리적 그림'이란 작업이 흥미롭다. 81가지의 서로 다른 형상은 정사각형 안에 마치 문자처럼 배열돼 있다. 외형적으로는 고대 상형문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이 작가가 만든 '조형언어'다. 사색의 계절인 가을, 이 작가가 건네는 진실한 '말'에 '눈'을 기울여 보자.

 

<angeli@ilyosisa.co.kr>

 

[이태량 작가는?]

▲개인전 15회(2001-2013): Galerie TrES초대전(낭뜨, 프랑스) 외
▲부스전 6회(2001-2014): 뉴욕아트페어(맨해튼, 뉴욕) 외
▲ArtFair 16회(2011-2014): KIAF2013(COEX, 서울) 외
▲2인전(2010): 갤러리 소밥 초대-이여도 (양수리, 경기도)
▲3인전 2회(2008-2012): 국민일보 초대전(국민일보, 서울) 외
▲그룹전 190여회(1993-2014): 한국현대미술초대전(디마카, 베네쥬엘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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