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라이프

 

자전거로 움직이며 손님들을 찾아가는
‘낭만미장원’ ‘비씨커피’ ‘아띠 인력거’

 

미용사 빈도해씨가 7번 국도 옆 한 마을에서 머리를 만지는 동안 마을에 소독차가 들어와 뿌연 연기를 날렸다.

그는 살롱 밖으로 나온 이 순간이 재미있고도 신기해 사진으로 기록했다.

아래 사진은 그가 낭만미장원 깃발을 꽂고 달린 자전거.

 

 

발길 닿는 대로 열리는 가게들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손님을 찾아다니는 가게들이다. 느리지만 이야기를 찾는 가게, 주인도 손님도 태평해지는 가게들을 찾아가 봤다.


 

그가 낭만미장원 깃발을 꽂고 달린 자전거

 

 

낭만미장원

 

헤어스타일리스트 빈도해씨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앞에서 ‘낭만미장원 빈도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 미용 고수들의 중원인 이곳에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 문득문득 일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그를 끌어들인 가위질의 빛나는 순간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2008년 낭만미장원이라는 깃발을 만들어 독일제 엠티비 자전거에 꽂고 7번 국도를 달렸다. 달리다가는 자전거가 멎는 동해 마을에서 주민들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두바퀴 미용실 ‘낭만미장원’의 시작이다.

 

 

“제가 하는 일이 항상 상업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가끔은 돈이나 취향과는 아무 관계 없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싶어져요. 오직 자르기 위해 자르는 그 순간, 그게 제겐 낭만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 뒤 자전거 여행을 떠날 때마다 거리에서 차린 낭만미장원은 7번 국도에서 개업해 경기도 가평, 전남 장흥, 담양 등 곳곳에서 출몰했다. 제주도로 배 타고 건너간 적도 여러번이고 언젠가는 동대문 예술장터인 봄장이나 이태원에서 가위질을 하기도 했다. 낭만미장원은 대가 없는 미용실이지만 숙식과 바꾸거나 가끔은 가수 송창식 음반이나, 사진, 책, 글 한편과 바꾸는 교환경제로 운영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영화 <지슬>에 나왔던 배우 양정원씨의 노래와 바꿔 월정리 주민들 머리를 모두 잘라주기도 했단다.

 

 

2003년 쌈지 페스티벌, 2004년 인사동 비포앤애프터전, 2008년 옥인콜렉티브전 등에서 잘린 머리카락을 놓고 제사를 지내고 사진을 찍었던 빈도해씨는 “성공의 역사가 아니라 놀이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부단히 거듭해왔지만 막상 요금과 서비스를 놓고 다투는 치열한 일상의 격전지에서는 그 생각이 묻히기 쉬웠단다. “7월쯤엔 저와 비슷한 미장원끼리 모여서 미용학원을 열 예정인데요, 그곳에서는 뜬금없이 요리, 미술, 나눔 같은 걸 가르치지요. 전인적 미용사를 지향한다고 하면서요. 하하.”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낭만미장원이라는 깃발을 보게 되면 주저없이 그에게 머리를 맡겨야 한다. 거리에서 머리를 풀어 헤친 경험을 한 손님들은 그를 ‘치유의 가위손’이라고 부른다.


 

 

자전거에 낭만미장원 깃발 꽂고
전국 다니며 지역 주민들 머리 손질
자전거 세우고 내리는 드립커피
장터 파티 어디든 움직여
관광버스보다 낭만적인
현대적 인력거

 


커다란 커피수레 속에 갓 볶은 커피콩과 뜨거운 물을 싣고 어디든 찾아다니는 이동식 카페 비씨커피와 주인 이재훈씨.

 

 

비씨커피

 

자전거 카페 ‘비씨(BICI)커피’는 요즘 서울 종로구 원남동 사거리에 정차 중이다. 자전거에 커피가 가득한 수레를 끌고 거리를 돌아다녔던 이재훈씨가 만든 자전거 카페 정류소다. 여러해 동안 음악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했던 그는 2012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커피를 팔 생각을 했다. “마케터로 일하면서 외국 사례를 많이 봤는데 같은 뉴욕, 파리의 자전거 커피 가게라고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건 좀 다른 거예요. 디자인이 멋지고 철학이 드러나고, 노점상의 불행한 이미지가 없더라고요. 제가 원래 자전거를 좋아하고 커피도 몹시 좋아하거든요. 커피에서는 코드가 드러나요. 어떤 자전거를 타고 어떤 커피를 마시느냐에 따라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생각했죠.”

 

 

이재훈씨가 찾은 커피의 코드는 느림과 정성이다. 날렵한 자전거 뒤에 실린 50㎏이 넘는 비씨커피의 수레에는 두 종류의 커피와 그라인더, 드리퍼, 필터, 커피포트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다. 젊은 디자인 그룹 ‘노네임 노샵’에서 특별 제작해준 이 수레는 오래된 듯한 나뭇결로 다듬어졌지만 펼치면 순식간에 작은 커피바로 변신한다. 그는 스위스에서 온 안토니 발지오라는 친구와 함께 이 이동식 카페를 끌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장터 마르쉐, 서울 농부시장,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마포 문화장터 늘장, 자전거족들의 축제 바이크 파티 등 어디든 갔다. “거리에서도 한잔 한잔 핸드드립으로 뽑아내는 거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저는 인간 커피자판기는 되고 싶지 않아요. 손님들도 커피가 아니라 이야기를, 콘텐츠를 원한다고 믿고요.”

 

 

지금도 일요일이면 비씨커피 스테이션은 햇살 가득한 거리로 나선다. 공연장, 기숙사 앞에서 시고 복잡한 맛의 커피와 달콤한 브라우니를 낸다. 비씨커피의 출정 계획은 이재훈씨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BiciCoffee)에서 볼 수 있다.

 

서울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사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에 아띠 인력거꾼이 손님을 싣고 달리고 있다.

 

 

아띠 인력거

 

지난 4월19일 서울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인력거를 만났다.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고 예약 손님을 기다리던 그들 중 한명, 김형준씨의 인력거를 타고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까지 안국동 좁은 골목길을 달렸다. 처음에는 최근 더욱 불어난 몸무게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운전자가 부는 ‘휘휘호호’ 휘파람 소리에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지나가던 어린이들이 우리를 보고 “릭샤다, 아냐 시클로야” 소리칠 때는 손을 흔들 여유까지 생겼다. 차들이 들어갈 수 없는 북촌 골목길을 누비는 자전거 택시, 아띠 인력거다.

 

 

전자회사에서 일하던 김형준씨는 2009년 회사를 그만두고 3년 동안 자전거로 세계를 누볐다. 미국 동서 횡단도 했고, 인도, 네팔, 스리랑카도 다녀왔다.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전에는 누가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계산기를 우선 두드렸는데 여행을 다니다 보니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돕고 이끌어주더라고요.” 전엔 신경질적인 창백한 표정이었다는 그는 지금은 그을은 얼굴로 쉬지 않고 웃고 떠들며 페달을 밟는다. 아띠 인력거는 이인재 대표를 비롯한 4명이 함께 운영하는 회사다. 20~40대까지 연령도 다양한 인력거꾼 14명이 서울 북촌에서 인력거를 끈다. 북촌 안내를 겸하는 이들에게 1시간을 예약하고 로맨스·역사·익선동 코스 중 하나를 택하면 관광안내도 받을 수 있다. 인력거를 예약한 손님들은 아이들을 태우러 나온 가족이 가장 많지만 인력거에서 프러포즈를 하거나 결혼행진을 하겠다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어떤 손님은 혼자 인력거를 타고 회사나 연애 고민들을 털어놓기도 한단다.

 

 

북촌의 인력거꾼들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솟는 여름보다도 손님이 없는 겨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김형준씨는 인도 인력거꾼 이야기를 다룬 고 이성규 감독의 영화 <오래된 인력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인력거꾼은 누군가를 싣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린다.” 5월부터 아띠 인력거는 덕수궁에서 정동길까지 새로운 노선에서도 달릴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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