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부터 인사동 우림화랑



중수 삼학사비, 84.5×245㎝. 중국 요령성 조선족학교 교정에 있다.탁본은 인쇄의 시조다. 금석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문양에 종이를 대고 찍는 이 행위는 남북조 혹은 후한 시대에 시작된 걸로 알려져 있다. 늦어도 5세기 말엽이다.

 국내에서 탁본에 미친 이로 꼽히는 사람은 한상봉(65) 한국금석문연구소장이다. 경북 포항 태생의 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졸업 후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면서 서예가로, 탁본 수집가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45년간 그가 국내·외에서 모은 한반도의 탁본은 1만여 점이 넘는다. 20여 년 전부터는 중국에 가서 북한 소재 탁본과 한국 관련 탁본을 사들였다. 지난해 초 본지가 보도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의 탁본도 그가 입수한 것이다. 이를 비롯한 북한 및 중국의 탁본 100선이 공개된다. 서울 인사동 우림화랑 전관서 26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다시 볼 수 없는 비장비첩(秘藏碑帖)’전이다.

  하이라이트는 낙랑의 금석문인 ‘점제현신사비(粘蟬縣神祠碑)’, 청말의 탁본으로 추정되는 광개토대왕비 4권,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와 추사(秋史) 김정희가 쓴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 등이다.



 왜 탁본인가. 한 소장의 서예 스승인 우죽(友竹) 양진니의 답은 이렇다. “서(書)에 있어서의 근원은 고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을 사실대로 베껴내는 탁본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자료다.” 02-733-3788.

중앙일보 /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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