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유비·제갈량·사마의당신 리더십, 누구와 닮았나
"유비, 인재 능력 꽃피우는 用人術… 현대사회에 가장 걸맞은 리더"
유비, 인재는 물, 리더는 찻잔 찻잔에 물을 따르려면 찻잔이 아래에 있어야…
조조, 너무 순조롭게 성공해와 주변의 리스크 보지 못해 결국 적벽대전서 大敗
제갈량, 모든 일 처리가 착실 위로는 보스 신임 받고 아래로는 병사 존경 받아
사마의, 시기·비판 참고 버티는 탁월한 인내심 73세까지 천수 누려

 


 

(위에서부터) 사마의, 제갈량, 조조, 유비

 

조비(조조의 아들이자 위나라의 초대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47세 사마의는 조진(조조의 조카)과 나란히 어린 황제 조예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중책을 맡았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대신들 간 권력 투쟁이 극심했고,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진은 함께 서쪽 전선을 지키던 사마의를 줄곧 견제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고, 심지어 자신이 세운 공을 모조리 조진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예순이 되었을 때 사마의는 황제 조예의 특별 대우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호쾌한 기개와 포부를 드러내는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고성귀로 대죄무양(告成歸老 待罪舞陽)'은 의미심장하다. 위업을 이루고 고향에 돌아가 처벌을 기다린다, 즉 권력에 뜻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득의양양하고 술에 취해 야심의 일부를 드러내더라도 마지막 순간 슬그머니 감춰버리는 처세술은 사마의가 평생에 걸쳐 지켜온 것이었다.

사마의, 기회 잡을 때까지 묵묵히 참아

삼국지연의에서 사마의는 라이벌 격인 제갈량보다 언제나 한 수 뒤처지는 상대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시기와 비판을 참고 버티는 탁월한 인내심을 갖고 있었다.

사마의가 조조를 비롯해 40년간 조씨 집안 4대(代)를 섬기며 훗날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처세술 덕분이었다.

지금처럼 정년퇴직이 보장되지 않은 조직 생활에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일종의 진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기회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참으며 73세까지 천수를 누리다 간 사마의가 어쩌면 삼국지연의를 통틀어 가장 강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세의 교활한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조조는 어떨까. 그는 냉혹했지만, 부하 직원을 다룰 때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리더였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무찌른 이후 조조는 구리 화로에 불을 피워 원소와 내통한 자신의 부하들 명단을 모조리 불태웠다. "원소 세력은 참으로 강해서 나조차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하물며 다른 이는 어땠겠는가." 제갈량이 단 한 번 실수를 저지른 마속을 눈물을 흘리며 베었던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조조, 부하에 냉혹했지만 융통성도 발휘

중국 삼국시대 영웅호걸을 다룬 삼국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최고 경영자들이 가장 열독하는 도서로서 종종 거론되는 이유는 이렇듯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세술과 리더십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국영 채널 CCTV 인기 인문학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논어, 사기 등 중국 고전에 대한 강좌로 매일 밤 방영된다)'에서 삼국지 강의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갈량, 디테일 보면서도 큰 그림 놓치지 않아

베이징에 있는 유뎬(郵電) 대학 관리학과(경영학과에 해당) 자오위핑(趙玉平) 교수도 백가강단의 삼국지 강의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 중 하나다. 백가강단은 2001년부터 13년째 방송하는 인문학 강좌.

자오위핑 교수는 지난 10년간 백가강단을 비롯해 차이나텔레콤, 중국노키아그룹과 칭화대, 푸단대 등에서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펼쳐 2009년 중국 기자들로부터 '대륙 10대 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텔레비전 강의를 바탕으로 쓴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과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는 국내에도 출간됐다.

지난 20일 베이징 서부 하이뎬(海澱) 지역에 있는 찻집에서 자오위핑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무려 1800년 전에 쓰인 삼국지에서 현대 경영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유비, 홀로 결정 안하고 부하 의견 중시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화도 내고 때론 제멋대로 굴기도 합니다. 손오공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조직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은 화를 내거나 상사에게 대들어도 어느 정도는 '저 사람은 그래도 일은 잘해'라고 수용이 됩니다. 하지만 능력도 없는 이가 그렇게 군다면 화를 자초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문화적 패턴, 인간관계 같은 부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를 사는 우리도 과거에 조직에서 적용됐던 규칙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올해 초 중국에서 조조의 리더십과 처세술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내년 상반기엔 국내에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조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성품이 '온화하다'는 자질은 결코 리더의 필수 성공 조건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가 성공했을까요? 첫째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각, 둘째 결정적인 시기에 흔들리지 않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과감성, 셋째 포부와 기개가 필요합니다. 조조에게선 이 세 가지 자질을 전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조의 밑에는 하후돈이라는 용감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하후돈은 용맹하기 그지없어서 큰 전쟁에서 수차례 승리를 이끌었는데, 조조는 하후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장점은 용감한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장점으로 인해 실패할 수 있다.' 불같은 성격의 하후돈은 여포 정벌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됩니다. 이처럼 조조는 항상 먼 앞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오위핑 교수는 설명할 때 예시와 비유를 많이 썼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진 이유 가운데 하나로 “상대가 너무 강했다”고 할 때, 이창호 9단과 대국할 때마다 번번이 간발의 차이로 지는 중국 바둑 기사 창하오(常昊)를 예로 들었고, “손권의 수군이 강하다”고 할 때는 “마치 한국의 이순신 장군처럼”이라고 덧붙였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옆에 있는 종이에 직접 뭔가를 그리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사물을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그처럼 세심하고 알기 쉬운 설명 방식이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이었을 것이다.

 

 

자오위핑 교수는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짓는 호인 인상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시작하자 금세

자세를 바로잡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모습에서‘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베이징=오윤희 기자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조조, 성공에 도취해 오만했다

조조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마오쩌둥은 “조조는 세월을 뛰어넘는 영웅”이라고 했고, 최근엔 국내에서도 조조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저서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조조의 군대가 적벽대전에서 유비·손권 연합군에게 대패한 것 자체가 조조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자오위핑 교수는 “조조의 잘못이 있다면, 그때까지 너무 순조롭게 성공해서 주변의 리스크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조가 결정적으로 방심했던 사례를 들었다. 손권의 장수인 황개가 매를 맞은 뒤 앙심을 품은 것처럼 위장하고 조조에게 거짓 투항한 때였다. 황개는 투항한 뒤 동남풍이 불 때를 기다렸다가 군량 보급선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조조의 수군에 접근해 불을 질렀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조조군의 배를 모조리 불태웠다.

“조조는 그 전의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훌륭한 장수를 많이 얻었습니다. 적벽대전에서도 훌륭한 장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현대의 기업들도 이렇게 성공에 도취하다가는 위험을 겪을 수 있습니다. 노키아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실패한 또 다른 이유로 혼자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들었다.

그에게 “조조, 사마의, 제갈량 가운데 현대 조직 사회에 가장 걸맞은 리더를 꼽으라면 누굴 들겠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도 조조의 장점을 열심히 열거하던 그는 “유비”라고 답했다.

“물론 제갈량, 사마의, 조조도 리더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유비를 꼽은 이유는, 앞서 말한 세 인물은 모두 개인 기량이 대단히 뛰어나고, 그래서 홀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비는 ‘지지(支持)형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유비가 가진 개인적 역량 자체는 걸출한 것이 못 됩니다. 문(文)으로 치자면 지략 면에서 제갈량과 어깨를 겨누는 방통에 범접하지 못하고, 무(武)에선 중국에서 신으로 숭배받는 관우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그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문관과 무관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인재들을 기용해 능력을 꽃피우게 만든 용인술(用人術)입니다.”

그는 그러나 기업 여건에 따라 필요한 리더십이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무나 시장 상황이 비교적 단순한 기업에선 조조의 방식이 성공하기 쉽습니다. 반면 업무가 복잡하고 변화가 급할수록 유비형 방식이 성공하기 쉽습니다. 간단하고 단순한 업계는 통제해야만 잘 돌아가고, 복잡한 쪽은 전문가들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조직이 잘 돌아가게 마련이니까요. 지금까지는 조조형 리더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기업 문화가 바뀌면서 유비의 방식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는 또 이상적 중간 관리자로는 제갈량, 이상적 일선 직원으로는 조자룡을 들었다. “제갈량은 만사 일처리가 착실하고 디테일을 잘 보면서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습니다. 위로는 보스의 신임을 얻고 아래로는 병사들의 존경을 받았지요. 조자룡은 능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조조가 형주를 공격해 유비가 달아날 때 조자룡은 품에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안고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적진을 돌파했습니다.”

천리마 같은 인재에겐 드넓은 초원을 제공하라

삼국지에 나온 영웅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우수한 인재를 자기 밑에 두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재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기업마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려고 애를 쓰는 오늘날, 삼국지 영웅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삼국지에서 아주 많이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삼고초려(三顧草廬)입니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고자 세 번이나 몸소 제갈량이 사는 누추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째는 큰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자기를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다도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인재는 물이고 조직은 찻잔입니다. 찻잔에 물을 따르려면 찻잔이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항상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점 역시 삼국지의 교훈이다. 방통은 굉장히 못생기고 세련되지 못해서 처음엔 유비가 좋아하지 않았다. 유비는 방통을 뇌양현이라는 변방의 작은 마을을 다스리도록 발령 냈지만, 방통은 그 일을 너무나 못해서 면직됐다. 나중에 방통의 재주를 높이 산 제갈량이 그를 다시 중앙으로 불러들여 군대 지휘를 맡긴 뒤에야 방통은 능력을 발휘했다.

“우리 손을 보면 굵은 손가락은 엄지, 제일 긴 것은 중지, 활동을 가장 안 하는 약지, 이런 식으로 손가락마다 하는 일이 다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손가락이 적재적소에 있어야 건강한 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지가 굵어서 좋다고 손가락이 전부 다 엄지가 되거나 전부 다 긴 중지가 되려고 한다면 그런 손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유비의 밑엔 우수한 인재가 많았습니다. 인재를 모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전설 속 천리마가 좋아하는 것은 넓게 뛰놀 수 있는 초원입니다. 그래서 만약 천리마를 가지고 싶다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것이 유비가 제갈량을 데리고 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둘째,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빵을 나눠 주지 말고 젊은이들 스스로 빵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준 비전은 대단히 유혹적이었습니다. 유비가 천하 통일이라는 커다란 대의를 이루기 위해 제갈량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로는 구성원들의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비교적 능력이 약하고 평범한 집단에는 편안함과 만족을 보장해 주면 족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자존감이 강한 구성원이 모인 집단에서는 그런 만족감만으로는 직원들을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이상이나 이념, 가치관을 실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비전을 줘야 합니다.”

리더는 정서가 안정돼야 한다

―유비는 말년에 관우를 잃고 상심한 나머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리하게 오나라를 침공하다가 실패하고 맙니다. 때로는 이처럼 리더의 무리한 아집이 조직에 큰 위기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이런 실패를 범하지 않기 위해 리더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먼저 지도자는 정서가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의 사례를 보면 정서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면 전부 실패합니다. 사업을 할 때는 고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 ‘갖가지 시험에 부닥칠 때 내가 이런 불안정한 정서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해선 안 됩니다. 리더가 정신을 잃으면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잘 보필하고 조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