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범준 기자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 옥션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에서 이대원의 농원이 경매되고 있다. 이날 이대원의 농원은 6억6천만원에 낙찰되었다.

2013.12.18. bjko@newsis.com 2013-12-18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지난달 서울의 양대 경매에서 진행된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 경매는 미술품 경매사상 처음으로 100% 낙찰률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의 출품작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며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이학준 대표는 “이번 특별경매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100% 낙찰이라는 좋은 결과를 기록했고,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행사와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며 “미술시장의 기폭제 역할을 하며 2014년 미술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고 경매 후 소감을 밝혔다.

K옥션 이상규 대표는 “응찰자 뿐 아니라 구경 온 관람객들도 검증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신들이 매긴 가격과 응찰자들이 내놓은 가격이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을 넓혀 가는 경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전(全) 컬렉션’ 경매를 주관한 두 메이저 경매회사 대표들의 말처럼 이번 전두환 컬렉션 경매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반증했다. 전직 대통령 가문이 소장해 온 작품들이 경매에 나왔다는 점에서 사회적 흥미를 유발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긴 했지만, 미술의 대중화가 폭넓게 이뤄져 이번 경매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인사동과 청담동의 화랑가는 장기간의 불황으로 인해 관광객들을 위한 먹자골목으로 변하거나 고급 패션 매장들의 거리로 대체돼 가고 있다. 먼저 자리를 잡았던 화랑들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술시장이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경매 회사들이 하나 둘 생겨나 경쟁적으로 경매를 진행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온라인 경매는 서민 컬렉터들을 길러내는데 큰 몫을 했다.

미술품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고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아가도록 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경매시장이다. 화랑을 통해 사고파는 것보다는 경매에서 많은 작품과 많은 구매자들 상대로 사고파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미술품 경매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20년대 경성미술구락부에 의해서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국보급 골동품들을 국립중앙박물관 이상으로 많이 사 모은 주요 경로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였다. 조선 최대의 부자인 간송은 10만석 지기의 재산을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해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조선 청화백자,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 등 수많은 보물들을 일본의 약탈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하느라 탕진했다.

해방 후에는 신세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경매회사를 설립하려고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1970년 한국미술품경매가 설립돼 맥을 이어왔다.

이후 1998년에 인사동 3대 화랑의 하나인 가나화랑이 서울옥션을 설립해 국내 미술품 유통에 전기를 마련했고, 2005년엔 국내 최대 화랑으로 꼽히는 현대화랑이 K옥션을 세워 서양의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연상케 하는 양대 옥션 시대를 열었다. 두 경매회사는 분기별 정기경매를 비롯해 한해 7~8회씩 경매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8개 정도의 옥션이 활발히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경매시장의 규모는 2000년대 초중반에 100억원 수준에서 2007년에는 1000억원대에 올라섰으나 이듬해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이후 500억원대로 급감했다. 근래에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으나 아직 2007년도의 호황기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가 최근 내놓은 ‘2013경매시장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개 경매업체가 77회(온라인경매 포함) 실시한 경매에 12만82점이 출품됐고 이중 7659점이 낙찰됐다. 총 경매성사금액은 720억원으로 집계됐다.

미술품의 주 소비자(컬렉터)는 물론 부자들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3년 한국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10억원이상 자산가는 16만3000명(2012년 기준)으로 2011년 14만2000명보다 13.8% 증가했다. 2010년 13만명, 2007년 8만5000명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불황에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된 셈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7만8000명으로 전체의 48%를 치지했다. 서울 부자의 37.2%는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자들이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주요 고객층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요즘 경매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문 컬렉터들 뿐 아니라 30~40대의 젊은 층 고액 연봉 샐러리맨들도 경매가 열릴 때마다 많이 몰려든다”고 한다.

90년대 후반에 고도성장의 혜택으로 미술의 대중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는 옥션(경매회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대중화의 가속페달을 밟은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미술계의 분석이다. 전통적인 주 소비층 뿐 아니라 전문직 고소득층, 자영업자, 일반 주부, 30~40대 샐러리맨들도 미술 애호가들이 급속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경매가 열릴 때마다 객석에는 평번한 미술 애호가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미술에 대한 수평적 확산이 이뤄진 배경에는 삼성그룹을 필두로 한 주요 기업들과 경제계 전반에서 미술을 제품 경쟁력의 키를 쥔 디자인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임원들을 비롯해 직원들에게 미술을 강조해온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K옥션 이상규 대표는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선진국을 따라하면 됐기 때문에 미술과 디자인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중진국에서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창의적인 제품과 디자인이 요구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일찍 간파한 삼성은 호암미술관을 지어 국보급 미술품들을 수집해 전시해왔고,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 한남동에 리움미술관을 설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품들을 컬렉션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세계 최고 제품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일찌감치 미술을 중시한 오너 일가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풀이한다.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디자인 감각을 길러주는 일이 단시간에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미술품을 감상하고 접하는 가운데 적절한 교육도 가미돼야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미술시장은 지나치게 경기순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생활필수품이 아닌 기호품이기 때문에 의식주 교육비가 우선되는 건 당연하지만 정부 차원의 미술 진흥 정책이 미흡한 것도 요인이다.

기업들이 미술품을 구매할 때 손비 인정을 300만원으로 한 것은 대표적이다. 중견작가의 30호짜리 소품값에 지나지 않는 액수만 손비처리 해준다. 유명작가의 작품은 1호 크기가 2~3억원을 줘야 하는 판에 손비인정 금액을 3000만원도 아니고 300만원으로 제한한 것은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을 드러내는듯하다. 이래 가지고는 제대로 된 미술품 거래 활성화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한 미술 평론가는 “열심히 작업에 전념하고 어느 수준에 오른 전업 작가들이 작품을 팔아서 먹고살만하게 해줘야 창작의 의욕도 생겨나고 작가의 폭도 넓어지는 것인데, 현재의 정책 하에선 작가나 유통업계나 자생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이 현재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홍콩은 미술품 거래에 면세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모여들어 시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미술 뿐 아니라 관광, 문화, 패션, 쇼핑까지 함께 고객이 늘어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싱가포르, 중국의 상하이가 홍콩을 따라가는 추세인데 한국은 반대로 미술품 시장 지원은 커녕 양도세를 신설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소탐대실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leed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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