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개월새 수억원대 도난… 경교장길·홍대앞 화랑도 털려
한 번 도난당한 미술품은 공소시효 7년 지나도록 숨어 범인 검거·물건 회수 어려워

조선일보 / 최연진 기자 



지난 7월 서울 종로구의 한 고미술품 경매업체에서 도난당한 조선시대 목활자본‘사마안록(司馬案錄·왼쪽 위)’과 춘향전 이본인‘성열녀전(成烈女傳·오른쪽 위)’. 아래 사진은 이 업체가 지난 3월에 도난 당한 신소설‘춘향가연정(春香歌演訂)’에 실린 삽화 판목 4점 중 일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의 한 고미술품 경매업체에서 도난당한 조선시대 목활자본‘사마안록(司馬案錄·왼쪽 위)’과 춘향전 이본인‘성열녀전(成烈女傳·오른쪽 위)’. 아래 사진은 이 업체가 지난 3월에 도난 당한 신소설‘춘향가연정(春香歌演訂)’에 실린 삽화 판목 4점 중 일부. /문화재청 제공
서울 종로구 경교장길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화가 주영근(48)씨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자기 화랑 인근을 홀로 순찰한다. 지난 7월 초 화랑에 도둑이 들어 작업 중이던 작품과 작품 디자인, 사진 자료 등 4000여점, 4억여원어치를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주씨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범인의 행방은 3개월째 오리무중이다. 작품 기반을 송두리째 털린 주씨는 "최근 '작품을 털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는데 검거 소식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에 '나 홀로 순찰'에 나서게 된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인사동, 경교장길, 홍대 앞 등의 화랑과 골동품 취급 업체에서 최근 몇 개월 동안 연쇄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인사동의 피해가 특히 크다. 골동품 경매업체 A사는 지난 7월 절도 피해를 입고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A사는 당시 이뤄진 경매에서 조선시대 목활자본인 '사마안록(司馬案錄)'과 춘향전 이본인 '성열녀전(成烈女傳)'의 국한문 혼용 필사본을 내놔 낙찰됐지만, 경매 절차 후 낙찰자에게 물품을 내어주려 했을 때 두 책이 사라진 걸 알게 됐다. A사는 "지난 3월에는 신소설 '춘향가연정(春香歌演訂·1912년 작품)'에 실린 삽화의 판목(목판) 4점을 도난당한 적이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신고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인 관재(貫齋) 이도영의 그림을 새긴 이 판목은 감정가가 600만원에 달한다.

A사 인근 골동품 판매점인 B사 역시 지난 8월 초 조선 초기 분청사기인 '분청사기면상감초화문주병'을 분실했다며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손님을 가장해 가게 안으로 들어온 여성이 도자기를 몰래 들고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지만, 그 여성의 행방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털린 작품은 다시 못 찾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미술품 절도범들은 조직적이고 치밀하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그림이나 골동품을 터는 일당은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미술품만 훔치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검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계의 한 경찰관은 "미술품 도둑들은 절도 공소시효(7년)를 고려해 훔친 물건을 장기간 숨겨뒀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것' 이라는 등 거짓말을 하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하고, 수법도 치밀해 검거에 애를 먹는다"고 설명했다.

과거 서울에 집중됐던 미술품 유통 경로가 지방에도 형성되면서 연쇄 절도범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경매는 서울에 비해 '보는 눈'이 적고 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만 찾아가기 때문에 도난 미술품을 은밀히 거래하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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