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 글 옮김]


서울의 인사동은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傳統(전통)문화와 現代(현대)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가 문화를 통해 소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사동에서 發源(발원)하는 여론은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볼거리도 많거니와 먹을거리도 많다. 한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도 성업 중이다. 嶺湖南(영호남)의 특색있는 음식들이 입맛을 당기게 해준다. 여기에 곁들여 식당 여주인들의 걸쭉한 입담 속에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녹아 있다. 한 번씩 찾아가 맛깔스런 음식에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서 듣는 인사동의 이야기는 요지경 같은 요즘 세태의 축소판이다.

 

특정 종교의 성직자와 관련된 ‘秘話’

귀담아 들을 만한 高談峻論(고담준론)도 있고, 흥미진진한 풍자와 해학도 있다. 지저분하고 추잡한 놈들에게 들이대는 비수같이 날카로운 희롱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인사동에 자주 들른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희한하고 기상천외한 얘기들을 들으며 인사동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본다.
들은 얘기 가운데는 성직자의 도덕성에 관한 심각한 것도 있다. 특정 종교단체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에 대한 얘기가 관심을 끌었다. 방송과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은 내용으로 이른바 ‘특종감’이다.
“그 분은 재산이 100억 원대이고, 자식도 2명이나 있다. 물론 아이들의 어머니도 있다면서?”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았는가? 그런데도 그 높은 자리에는 어떻게 앉을 수 있었는가?”
수군거리는 귓속말이 의미심장하다. 소문이 쫙 퍼졌다고 S식당 여주인이 말문을 열었다. 막걸리 몇 잔에 거나해진 일행이 큰소리로 떠들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일부 빗나간 성직자의 부도덕함이 술상의 안주거리로 올려졌다.
“성직자란 자들이 형편없어. 모두 다 타락했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러니까 이놈의 세상이 개판이지 뭐야, 요지경이야!”
“성직자란 자들이 형편없어. 모두 다 타락했어!”
“그렇지 않네. 훌륭한 스님과 목사와 신부들이 더 많아!”
“이 사람아, 세상을 그렇게만 보지 말게.”

돼먹지 않게 돌아가는 꼴불견의 세태를 비판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온다. 문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고성(高聲)이다.
술기운이 거나해질수록 목소리는 커지고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것이 인사동의 밤 풍경이다. 술잔이 오고 가면서 분위기는 점점 거칠어진다. 애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성직자의 청빈함을 다룬 J일보 B기자가 쓴 칼럼〈수백만 원짜리 가사(袈裟)〉(2009년 11월 25일字)가 화제의 중심에 등장했다. 취객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注: 袈裟(가사)-중이 입는 法衣(법의)]
“출가자(出家者)가 300만 원짜리 가사를 입는다. 말이 되느냐”는 것이 핵심이었다. 얼핏 보면 가사는 승복 위에 걸치는 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표준가격은 20~40만 원이다. 수백만 원이 넘는 가사는 사치요, 호사다.
본질을 잊어버리고 타성에 젖으면 성직자 자격 없어
감각적 쾌락을 느끼는 졸부들이 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수행하는 구도자가 갖춰야 할 복장은 아니다. “잘린 조각을 기워 입어라. 이것이 수행자(修行者)에게 어울리는 가사”라고 붓다는 말했다.
종교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본질적 의미가 담겨 있다. 본질을 잊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버리면 그 성직자는 이미 자격을 잃게 된다. 시정잡배만도 못한 위선자로 타락하고 만다. 불교 뿐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비난의 소리가 높다.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의 십일조는 ‘영적인 가난을 일구어 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는 물질적 가짐을 떼어 냄으로써 정신적 가짐도 떼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를 행하고 난 후에 ‘내가 영적으로 가난해졌는가’를 반드시 따져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의무를 다하였으니 하늘의 보상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성당에서 이뤄지는 모든 전례(典禮)가 형식과 의무인가? 아니면 종교의 본질적 의미에 접근하고 있는가?
“종교가 나의 습관이 되고 관습이 될 때 진리를 가리키는 나침반은 제대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둘러앉은 취객들이 한참 동안 신나게 떠들어댄 뒤 좌장인 한 친구가 난상토론을 잘 정리해서 마무리 지었다. 땡땡이가 값비싼 가사를 걸치네, 성철 대선사는 누더기를 깁고 기워 입지 않았는가. 이 사람아! 교회도 시끄럽네. 나에게는 천당이 있는데 많은 재산이 왜 필요한가.

‘속물근성’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에게 告한다!

재물이 있으면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을 救恤(구휼)하는데 쓰겠다고 선언한 목회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담임목사의 세습제 추진이 말썽이 되고 있다. 수 천 억짜리 교회당 건축이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 않나.
성당도 말이 많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 시대의 큰 어른이었지만 빗나간 신부도 많고 많지 않던가? 본분은 뒷전에다 팽개쳐 놓고 편향된 행동을 하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은 이상한 로만컬러도 있었다.
부처와 예수의 이름으로 성직자임을 내세워 불쌍한 사람들의 등을 쳐서 치부하고 거드름 피우는 참 나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비와 박애를 위해 수행하는 성직자가 아니라 정상궤도를 벗어난 탈선자들에 불과하다.
그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에다 좋은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진 속물 아닐까? 세속에 때묻고 오염된 하루살이 부나비와 다름없다. 그런 파렴치한 엉터리들만 보지 말고 참으로 고행하며 수도하는 맑고 향기로운 영혼을 지닌 분들을 한번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이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 아닐까?
이 세상에는 듣도 보도 못한 잡놈 같은 이른바 ‘듣보잡(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사이비도 많지만 참으로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수도자도 많다. 그런 면을 보며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奮起撐天(분기탱천)하던 거친 숨소리가 가라앉으며 방 안은 어느 새 조용해졌다.
밤이 깊어지고 가로등도 졸기 시작하면 취객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혼탁해진 풍진세상을 질타하고 한탄하던 그들의 목소리도 술기운을 잃고 인사동 길거리에 차분히 밤이 내려앉는다. 이슬을 맞으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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