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더우면 서울서 살지 못할 것 같다.
지난 4일 밤, 새벽 일찍 일어나 정선으로 떠나야 하는데 더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선풍기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운 바람이었고 온 몸은 끈적끈적 거렸다.

밤12시경 정선으로 출발하고 싶었으나 조금이라도 눈을 부쳐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4시간을 뜬 눈으로 지새야 했다.

 

그와 반대로 정선 만지산에 도착한 첫 날은 몸을 움추려야 할 정도로 싸늘했다.

방이 눅눅하여 방에 군불까지 지폈는데, 방안에 연기가 차 올라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잠들어 버린 것이다.
정신없이 자다 온 몸에 한기를 느껴 눈을 떠보니 벌써 날이 밝았다.
방안에서는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새소리가 들리는 문짝을 통해 펼쳐진 풍경은 바로 그림 자체였다.

옷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카메라를 들었다.
앞산에는 운해가 몰려 다녔고 뜰의 장미는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지난 폭우에 무너진 축대가 내 손길을 기다리지만 살아남은 방울 도마도 몇 알이 나를 부르기도 했다.

나무 잎사귀에는 무당벌레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잠들어 있었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지껏 살아오며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한 번도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행복을 못 느꼈으니 잘 못 살은 것 같다.

 

부엌으로 들어가 보니 박근혜대통령이 내 엉덩이에 깔린 흔적이 선명했다.

엊저녁 군불을 지필때 앉은뱅이 의자 위에 종이를 깔았는데, 하필이면 대선 홍보물로 배달되었던 박대통령후보의

전단지를 깔았던 것이다. 이북 같았으면 불경죄로 아우지 탄광에 끌려 갈 사건이었다.

각설하고, 어제 정선에 도착하여 아리랑시장 상인대학 개강식을 참관한 후 아내는 열차 편으로 서울로 돌아갔다.

마감이 임박한 원고도 있지만 중요한 연락을 받을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이다.

정선에서만은 아날로그로 살고 싶어 인터넷 연결은 물론 컴퓨터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였다. 정선아리랑시장 블로그 관리를 맡아 정선에서 컴퓨터 사용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상인대학에 참가한 것도 블로그에 올릴 자료 때문이었다.

정영신의 원고료 만으로는 장터촬영경비도 충당 되지 않아 보탬이 될까하여 블로그를 맡았는데,

오가는 경비와 시간소모에 비하면 봉사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성공한 정선오일장에 대한 애착도 남 다르고 정선에서 촬영해야 할 일들이 많아 맡았다.

앞으로 장터에 대한 일만도 힘에 부칠 것 같아, 인사동에 들리거나 ‘인사동유목민’ 카페를 관리할 시간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인사동 유목민' 카페지기를 다방면으로 찾았으나 모두들 애착은 있지만 막상 일을 맡으려는 분은 없었다.

이 글을 '인사동 유목민"에게 드리는 저의 마지막 잔소리로 여기시고 널리 양해하시기 바란다.
그동안 ‘창예헌’이란 단체와 ‘인사동유목민’카페를 관리해 오며 공적인 일들로 지인들과 쌓아 온

오랜 교분이 무너지거나 서로 간 마음을 다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좋은 추억들만 간직하려 한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란다.

 

2013.8.9

조문호

 

 

 

 

 

 

 

 

 

 

 

 

 

 

 

 

 

 

 

-정성아리랑시장 상인대학에 참가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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