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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論
저 물의 만년필,
오늘, 무슨 글을 쓴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를 쓴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다
지느러미를 흔들면 물에 푸른 글씨가 쓰이는, 만년필
저 글은, 잉어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잉어처럼 물속에 살지 않고서는 해독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오늘도 무슨 글자를 쓴다
캘리 그라피 같은, 그 변형된 글씨체로 무슨 글자를 쓴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잉어의 얼굴
눈꺼풀은 없지만 깊고 그윽한 눈망울을 가진, 잉어의 눈
분명 저 얼굴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편지에 엽서에 무엇인가를 적어 내게 띄워 보내는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오늘
나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인가를 썼을
만년필,
수취인이 없어도, 하다못해 엽서라도 띄웠을
만년필.
그래, 잉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겠지만
내가 너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편지를 받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깊은 잠의 핏줄 속을 고요히 헤엄쳐 온다
잉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는, 편지가 아니라고
가슴에 가만히 손만 얹으면, 해독할 수 있는
글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몸에, 자동기술(記述)의 푸른 지느러미가 달린
저 물의, 만년필-
ㅡ「잉어」 전문
은유를 형성하는 본질적 요소인 유사성과 차이성은 우리가 이 세계 인식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만약 은유가 없다면 언어도 없으리라. 우리는 은유를 통해 이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은유의 제국에서 우리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관습과 규율로 인해 우리의 인식은 일정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고 만다. 이 통제된 은유의 제국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는 기쁨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시이다. 그 한 예로 김신용 시인의 시 「잉어」를 들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은유의 주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처음부터 ‘잉어’를 ‘만년필’로 재정의하고 있다. ‘잉어’는 곧 ‘만년필’이다. 이 은유가 성립하고 큰 무리 없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유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잉어의 속성 즉, 물속에서 꿈틀대며 필적을 남기는 그 잉어의 행위가, 필적을 남기며 움직이는 만년필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은유의 전제가 일단 관철되고 나면 나머지 얘기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친숙하게 독자의 가슴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잉어- 만년필’이 쓰는 그 ‘글’, 또는 ‘글자’, 그리고 ‘편지’, ‘엽서’를 읽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잉어’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그 ‘秘文’이란 사실 ‘해독’을 기다리지 않는 언어이다. 다만 알아볼 수 있는 자에게는 항상 열려 있는 그런 공공연하게 만연된 우리 주위의 언어, 이 세계 온갖 것들의 자연어인 것이다.
시는 2연에 이르러 단 한 번 ‘잉어 - 만년필’과 시인과의 동일시를 유도하고 있다. “나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있었을까?”가 그 부분이다. 그러나 그뿐, 그것도 물음으로 끝난 것일 뿐, 이후 시의 전개는 다시 ‘잉어 - 만년필’ 얘기로 집중된다. 이 시가 김신용 시인의 시적 감각과 문학적 심미안을 보여주고 있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보다 명쾌한 시적 주제를 형성하기 위해 시는 시인의 이야기로 돌아서서, ‘시인 - 만년필’의 은유로 바꾸어서 ‘시쓰기’에 대한 메타적 내용으로 전개되는 것이 흔한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끝까지 ‘잉어 - 만년필’에 대한 관조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잉어 - 만년필’을 시인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시인을 ‘잉어 - 만년필’로 이행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가슴에 가만히 손만 얹으면, 해독할 수 있는/글자라고” 얘기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 해독의 가능성에 대한 단초 역시 시인 스스로 각성한 것이 아니라 ‘잉어’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속삭이는 것처럼’.
우리는 섣불리 대상과의 동일시를 이루기 위해 대상을 우리 세계로 끌어들이는 행위를 벌인다. 그러한 세계의 자아화는 강제적인 것, 인위적인 것, 관습적인 것, 폭력적인 것일 수 있다. 은유의 폭력성은 그것을 자연계에서 떼어와 인간계에 가둬놓고자 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쉽게 깨지거나 아니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를 자연에 이행시키는 방식으로, 관조 속에 내재되어 가는 방식으로, 은유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김신용의 시 「잉어」서처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글자’를 그윽한 심정으로, 평온한 가슴으로 바라만 보면 된다. 그러다보면 물아일체, 물심일여가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폭압이나 강제성 없이, 은유를 은유로 방생하고 있는 시안은유를 형성하는 본질적 요소인 유사성과 차이성은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만약 은유가 없다면 언어도 없으리라. 우리는 은유를 통해 이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은유의 제국에서 우리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관습과 규율로 인해 우리의 인식은 일정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고 만다. 이 통제된 은유의 제국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는 기쁨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시이다. 그 한 예로 김신용 시인의 시 「잉어」를 들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은유의 탈주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처음부터 ‘잉어’를 ‘만년필’로 재정의하고 있다. ‘잉어’는 곧 ‘만년필’이다. 이 은유가 성립하고 큰 무리 없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유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잉어의 속성 즉, 물속에서 꿈틀대며 필적을 남기는 그 잉어의 행위가, 필적을 남기며 움직이는 만년필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은유의 전제가 일단 관철되고 나면 나머지 얘기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친숙하게 독자의 가슴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잉어- 만년필’이 쓰는 그 ‘글’, 또는 ‘글자’, 그리고 ‘편지’, ‘엽서’를 읽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잉어’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그 ‘秘文’이란 사실 ‘해독’을 기다리지 않는 언어이다. 다만 알아볼 수 있는 자에게는 항상 열려 있는 그런 공공연하게 만연된 우리 주위의 언어, 이 세계 온갖 것들의 자연어인 것이다.
시는 2연에 이르러 단 한 번 ‘잉어 - 만년필’과 시인과의 동일시를 유도하고 있다. “나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있었을까?”가 그 부분이다. 그러나 그뿐, 그것도 물음으로 끝난 것일 뿐, 이후 시의 전개는 다시 ‘잉어 - 만년필’ 얘기로 집중된다. 이 시가 김신용 시인의 시적 감각과 문학적 심미안을 보여주고 있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보다 명쾌한 시적 주제를 형성하기 위해 시는 시인의 이야기로 돌아서서, ‘시인 - 만년필’의 은유로 바꾸어서 ‘시쓰기’에 대한 메타적 내용으로 전개되는 것이 흔한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끝까지 ‘잉어 - 만년필’에 대한 관조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잉어 - 만년필’을 시인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시인을 ‘잉어 - 만년필’로 이행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가슴에 가만히 손만 얹으면, 해독할 수 있는/글자라고” 얘기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 해독의 가능성에 대한 단초 역시 시인 스스로 각성한 것이 아니라 ‘잉어’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속삭이는 것처럼’.
우리는 섣불리 대상과의 동일시를 이루기 위해 대상을 우리 세계로 끌어들이는 행위를 벌인다. 그러한 세계의 자아화는 강제적인 것, 인위적인 것, 관습적인 것, 폭력적인 것일 수 있다. 은유의 폭력성은 그것을 자연계에서 떼어와 인간계에 가둬놓고자 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쉽게 깨지거나 아니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를 자연에 이행시키는 방식으로, 관조 속에 내재되어 가는 방식으로, 은유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김신용의 시 「잉어」서처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글자’를 그윽한 심정으로, 평온한 가슴으로 바라만 보면 된다. 그러다보면 물아일체, 물심일여가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폭압이나 강제성 없이, 은유를 은유로 방생하고 있는 시안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가 어떤 모양으로 ‘자동기술’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자동기술’에는 자유가 있다.
김신용 시인의 시를 통해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잉어 - 만년필’이 전해 주는 한 소식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 세계의 아름다운 본질에 관한 것이다.
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가 어떤 모양으로 ‘자동기술’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자동기술’에는 자유가 있다.
김신용 시인의 시를 통해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잉어 - 만년필’이 전해 주는 한 소식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 세계의 아름다운 본질에 관한 것이다.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기계 앵무새』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 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
한명희 시인
대구에서 출생. 서울 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받음. 1992년 《시와시학》에 〈시집읽기〉등 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시집 읽기』(시와시학사, 1996)와 『두 번 쓸쓸한 전화』(천년의시작, 2002),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 (세계사, 2005) 등이 있음. 2003년 시와 시학사 '젊은 시인상' 수상. 현재 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이며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첫 번째 이메일- 잉어의 눈망울을 한 사람
■ 한명희: 먼저 수상 축하드립니다. <시인광장>에서 선생님과 인터뷰를 해달라고 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조금 건방지게 말하면 요즘 인터뷰 청탁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요). 그치만 선생님 성함을 듣고는 금방 하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 나누려고 했는데 아뿔싸 이메일로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네요. 아마도 이건 자업자득인 것 같습니다. 제가 카카오톡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거든요. 그게 꽤 좋은 반응이었다는…(죄송합니다. 또 자기자랑이……) 그런데 선생님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슬픈 소식이… 아니 핸드폰마저 없으시다는…… 그래서요, 선생님. 이메일로 하는 인터뷰이지만 카카오톡 흉내는 좀 내보려고 합니다. 부디 계속 보내드리는 저의 이메일을 귀찮아 마시기를요.
우선 선생님의 일상생활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세상에 핸드폰도 없으시다니요? 행동반경과 주변인물을 포함해 선생님의 소소한 일상을 들려주세요.
(답장이 금방 왔다. 워낙 정연하게 답해 주어서 보내주신 글을 그대로 옮긴다)
□ 김신용: 내 일상은 그저 평범합니다.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어 책상 앞에 앉습니다. 젊었을 적엔 밤 새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음 날이 피로해집니다. 그것 때문에 잠자리에 일찍 들어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오전 9시가 넘으면 아침 식사를 하고 복숭아 과수원의 전지도 하고 적과도 해주며 그리고 논의 물꼬도 보며 오전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잠깐 쉬었다가 책을 읽거나 새벽에 써놓은 글의 퇴고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들판의 산책길을 걸으며 또 새로운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내 일상생활입니다. 나에게 핸드폰이 없다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냥 아날로그적으로 살고 싶어서입니다. 특별히 만나고 소식 들을 일도 없어 이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편합니다. 그리고 어쩌다 인사동으로 나가 내가 시인으로 첫발을 뗄 때부터 만나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내 소소한 일상입니다.
■ 한명희: 사실, 선생님의 일상과 관련해 제가 가장 궁금한 부분은 <독서>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며, 어떤 방법으로 독서하시는지요(선생의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부분이 궁금할 것 같다).
□ 김신용: 사실 요즘은 특별한 독서가 없습니다. 그동안 읽어왔던 독서가 지금의 내게 정신적인 양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특별한 독서가 하나 있네요. 그것은 포에트리 테라피(poetry therapy)에 관한 책입니다. 지난해 같이 시를 쓰는 한 지인의 부탁에 의해 교도소의 시 창작에 관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지인이 내게 읽어보라고 건네준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시 치료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꼼꼼히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에 집히는 대로 시집과 소설들도 읽고 있습니다.
■ 한명희: 저에게 선생님은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의 시인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대학생 때, 대학원생 때, 그 시들을 읽었는데 그때의 전율이 지금도 뚜렷합니다. 그러나 그 시집들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김신용: 글쎄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은 나에게 시인으로서 첫발을 떼게 한 시집이어서인지 지금도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시집입니다. 나는 이 시들을 지금의 서울역 앞에 있는 양동, 그러니까 이 서울의 최대의 빈민굴이자 사창가인 그 양동의 골방에서 엎드려서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 때 나에겐,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방법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즉 우리들이 눈으로 보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우울한 실존을 시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의 체험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내 핏줄 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지금의 내 시작의 바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 우리가 애써 잊고 싶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어두운 단면은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 한명희: 수상시 「잉어」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 김신용: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언제나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한 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한 편의 시에는 나타나 있는 것보다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가 더 많은 것이니까요. 또 그것이 시의 특징이니까요. 그리고 그 무의식의 의미까지 짚어가자면 그만 진땀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내 시에 대해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마치 그림을 보듯이 읽는 느낌 그대로 시를 읽어달라고 도리어 내가 부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한 마디 하자면 이번 수상 소감에서도 밝혔지만 지난 한 해 노숙자를 위한 시 창작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곤 했습니다. 그때의 내 암담했던 인상이 ‘잉어’의 이미지를 통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집 뒤 논밭이 넓게 펼쳐진 들판의 수로에 가면, 고요한 날이면 물위로 떠올라 유유히 지느러미를 일렁이는 잉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쩌면 지금쯤 알을 낳기 위해 수면 위에서 푸드덕이고 있는 잉어의 모습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한 가지 경이로운 것은 어떤 잉어는 꼭 사람의 얼굴을 닮아 있기도 합니다. 슬프도록 깊고 그윽한 눈망울을 가진-.
■ 한명희: 선생님은 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질문을 좀더 좁히면 영상시대에 시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정도가 되겠네요.
□ 김신용: 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대로 시를 쓸 뿐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시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교환 가치가 없다고 해서 시는 지금까지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영상은 영상이고, 시는 시입니다. 시인은 아무리 가난해도 시의 언어만을 찾으면 됩니다. 이것이 고달프고 못 참겠다고 생각이 되면 그때 시를 버려도 누가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요. 시인은, 그냥 시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대답 같지만, 나는 그냥 우직하게 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내가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미쳐주지 않으니까요.
■ 한명희: 선생님. 일단 이 정도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답변에 따라서 제 질문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 이메일- 노숙의 피
■ 한명희: (선생은 전화 통화에서 “그냥 평범하게 이레 할게요. 유식한 말로 이레 하는 게 싫어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답변은 너무나 유식하게 되어 있었다. 답변도 시를 쓰듯이 하시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 말씀 중에,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는 방법론 같은 것이 있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체험이 시가 되고 어떤 체험이 소설이 되는 걸까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질문 드린다면, 시를 쓰는 자세와 소설을 쓰는 자세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 김신용: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체험은 시가 되고, 어떤 체험은 소설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상상력과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소설은 체험의 이야기를 디테일한 전체 부분까지 묘사해야 하지만, 시는 체험이 주는 어떤 요소, 결정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려서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는 자세와 소설을 쓰는 자세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편의 시에서 소설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이미지화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상상력과 표현 양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명희: 선생님. 노숙자에게 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분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 김신용: 사실 처음 그들 앞에 섰을 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대체 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그러나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이곤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내 의식 속에는 노숙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 시선으로 세상과 모든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벽과 벽이 마주보고 있다는, 그 암담함에 젖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노숙자의 시선으로… 또는 노숙자 시인의 시선으로… 그래, 시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 같은 그런 원초적인 마음의 무늬가 들어 있다고…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무형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그리고 시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한 배려와 섬김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그것은 풀과 나무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부랑의 삶은 자기 방기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절망이라는 보수를 얻습니다. 그 보수는 매혹적입니다. 이 세계에 대해 어떤 기대도 갖지 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절망을, 벽을 허물 무엇이 시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해 주며 혼자 뒤돌아서서 부끄러워하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아무런 교환 가치가 없는 것은 잉여가 되는 이 세계에서, 대체 시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을 서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나는 그들과 대화하며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이메일- 찬란한 한 때
■ 한명희: 선생님. 편안하고 재미있는 인터뷰를 하려고 했으나, 인터뷰가 가벼워지지가 않네요.
아마도 선생님 시세계가, 또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인터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인생의 가장 빛나는 때는 언제였나요? 혹시 요즈음이 그때는 아닐까요?
□ 김신용: 하하, 시인에게서 가장 빛나는 때는 한 권의 시집, 또는 한 권의 책을 출간했을 때가 아닐까요? 미안하지만 이 정도로 노코멘트하겠습니다.
■ 한명희: (선생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다면 선생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니, 선생의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봐야 했을 것이다. 선생의 찬란한 한 때는 앞으로 계속 펼쳐질 것이기에)
근래의 선생님은 노동자 시인, 전업 시인 등의 수식어말고 다른 단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어떤 시인으로 불리고 싶으신지요?
□ 김신용: 참 곤란한 질문이네요. 나를 어떤 시인으로 부르고 싶으세요? 거두절미하고 그냥 시인으로 불리우고 싶습니다. 하나의 수식은 때로 상상력의 폭을 좁히는 덫이 될 수 있으니까요.
■ 한명희: (선생님께 꼭 맞는 수식어를 하나 찾고 싶었습니다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제목에는 민달팽이 시인이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지 싶습니다)
선생님 시에 영향을 미친 시인이 있다면 어떤 시인을 꼽으시는지요?
□ 김신용: 글쎄요,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모든 책의 저자들이 내게 영향을 미쳤겠지요. 그런데 지금 질문을 받고 보니 ‘도둑일기’의 작가 ‘장 쥬네’, 프랑스의 거지 시인 ‘프랑스와 비용’이 문득 떠오르네요. 또 ‘영혼의 자서전’, ‘희랍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한명희: (장 쥬네, 프랑스와 비용, 니코스 카잔차키스라… 이들은 선생께 문학에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도 인생을 미쳤으리라. 하긴 선생에게는 문학이 삶이고 삶이 문학이라 이것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부산에서 서울로, 또 도장골에서 소래로 옮겨 사셨잖아요. 공간의 이동이 시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선생님의 경우는 어떠신지요?
□ 김신용: 저는 지금까지 내가 떠돌면서 보아온 것, 몸으로 부딪친 것들을 시로 형상화하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환경과 맞부딪친다는 것은 시의 어떤 매너리즘에서 깨어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과 이미지들을 태어나게 해줍니다. 그 실례로 저는 도장골에 살면서 ‘도장골 시편’이라는 한 권의 시집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또한 ‘낯선 곳에서의 체험’이라는 설레임으로 시인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가져가 주는 것이 아닐까요?
■ 한명희: 지난 번에 드린 질문에 답하주신 것 중에서 몇 가지 보충해서 여쭈어보려고 합니다. 시와 소설에 대한 것인데요, 시를 쓰는 자세와 소설을 쓰는 자세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 체험을 시로 만드시고 어떤 경우에 체험을 소설로 만드시는지요?
□ 김신용: 이것은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두부모를 자르듯이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저의 경우, 지금까지 시로 형상화해 온 내 삶의 행간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들을 소설로 썼습니다. 그래서 저의 소설에는 자전적인 요소와 이미 시로 형상화된 이미지와 스토리가 중복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 한명희: 사실 노숙에 대한 것, 혹은 부랑의 시절에 대한 것은 별로 여쭈어보고 싶지가 않았더랬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언급하기 싫어하실까봐요(물론 저로서는 그 세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노숙자들에게 시 강의를 하셨다기에 살짝 돌려서 여쭈어본 것이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아직도 몸속에 ‘노숙의 피’가 흐른다고 하셔서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자기 방기의 댓가로 절망이라는 보수를 얻는다는 말씀, 그리고 그 절망이라는 보수가 세계에 대해 어떤 기대가 갖기 않게 하기에 매혹적이라는 말씀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그래도 절망의 매혹을 떨치고 일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 김신용: 그렇습니다. 고리끼의 소설에 보면 부랑의 치유로 인간의 노동을 제시했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니까요. 또 그것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대해 어떤 꿈도 갖지 않는 불치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그 치유의 능력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서곤 했습니다.
■ 한명희: 그 분들에게 시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그들을 매혹에서 떨쳐나오게 하는 다른 방법말이죠.
□ 김신용: 많은 방법이 있겠지요. 예컨대, 그들에게 자활의 틀을 만들어 준다거나 공장에서 스스로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방법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러나 시인으로서 내가 그들 앞에 선다는 것은 시가 가진 속성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과 우울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들 앞에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닐까요? 일례로 미국의 어떤 여성 노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숙 생활에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한 끼의 빵과 잠자리가 아니라 이 세계의 구조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해주는 인문학이었다고-’ 나 또한 지금 그 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 한명희: 선생님 말씀 듣고 또 여쭈어 보겠습니다.
네 번째 이메일- 작가 시인의 숙명
■ 한명희: 선생님. 아까 질문 드린 노숙자 관련해서 조금 더 어쭙고 싶습니다. 80년대, 좀더 넓게는 군부독재 시절을 어떻게 나셨는지요? 그 무렵에는 공장노동자들의 시도 쏟아져나왔더랬습니다만. 물론 시위현장으로 나가는 시인들도 많았고요.
□ 김신용: 아시다시피 80년대는 저에게 무척 암울한 때였습니다. 청계천 지게꾼 생활 10년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을 때였으니까요. 그때 나는 등에 지고 있던 지게를 마치 발작처럼 돌로 내리쳐부수어 버리고는 일부러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면서 피폐해진 몸도 추스르고 그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출감을 해서도 오갈 데가 없어 다시 남산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품팔이 노동을 하며, 또는 다시 지게도 지며 지내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눈멀고 귀멀어 헤매던 때였지요. 그때의 상황은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에 시로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쯤이면 출간 될 장편소설에 그때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한명희: 선생님.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시어 하나하나를 애써 고르고 다듬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호흡이 깁니다. 시도 길고요.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시를 쓰시는지요? 영감에 의존하는 편은 아니시지요?
□ 김신용: 저는 시를 쓸 때 마음에 들 때까지 퇴고를 하는 편입니다. 우선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독자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었으니까요. 시의 호흡이 길다는 것은 시의 행간에 빠트린 서사 욕구가 너무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리고 저는 우선 제 삶에서 시의 모티브를 찾아내어 시로 형상화하곤 했습니다. 영감은, 제 삶의 어는 한 단면이 시의 주제로서 나타날 때 더 강렬하게 나타나곤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몸으로 부딪친 제 삶에서 시의 주제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육화된 세계가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의 세계였으니까요.
■ 한명희: 문단에 관여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문단 동향은 잘 아시는지요? 새로 나온 시집들, 새로 발표되는 시들 읽으시는지요? 혹시 주목하는 시인이나 경향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우려되는 경향을 말씀해 주셔도 좋겠네요.
□ 김신용: 저는 문단에 별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단이라는 곳의 실체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어는 문학단체, 또는 문학 그룹에 소속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혼자서 시를 써왔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이도 있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어차피 작가나 시인은 혼자 있는 것이 숙명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주변에 새로 나온 시집이나 시들을 자주 찾아 읽곤 합니다. 그것이 지금 현실의 어떤 풍향계 같은 구실을 해주니까요. 그리고 모든 경향이나 새로움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 한명희: 어떤 시인들과 ‘술친구’ 하시는지요? 약주 많이 하시나요?
□ 김신용: 어떤 시인과 술친구를 하느냐고요? 그렇게 가깝게 죽마지우처럼 만나는 시인은 별로 없습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나면 어울리지만, 굳이 만나야 하는 약속 같은 것도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것은 오래된 버릇이고 또 그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 한명희: 앞으로 선생님께서 어떤 시세계를 보여주실지도 궁금합니다. 계획하는 것이 있으신지요?
□ 김신용: 글쎄요, 지금은 딱히 내보일 것이 없군요. 어쩌면 지금까지 써오던 그 연장선상에서 시 작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이번 ‘시인동네’의 기획 시선으로 새로 묶일 시집이 출간되어 봐야 알겠네요. 그때까지 무엇인가를 위해 지금 일부러 시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말쯤이면 ‘새를 아세요’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시집과 소설이 출간된 후 다시 심사숙고해 봐야겠습니다.
■ 한명희: (선생과의 인터뷰는 직접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면서 대화를 나누었어야 제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핸드폰은 물론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는 시인과의 이메일 인터뷰라니 한편 재미있지 않은가. 이 이메일 인터뷰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협조자’가 필요했다. 그 협조자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었으나 ‘경상도 싸나이’인 선생은 그 부분만은 싣기를 원치 않으셨다. 지금쯤 선생은 논의 물꼬를 보려 나가셨으려나? 다시 한번 선생의 수상을 축하한다. 진심으로.)
[출처] 【특집】제6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賞의 수상을 축하하는 김신용시인과의 메일 대담 대담: 한명희 시인(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시인광장』 2013년 6월호(통호 제52호) |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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