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 인사동 ‘통인화랑’에 감성의 꽃이 피었다.

 

'통인화랑'에서 김제민, 허보리, 신수진, 이창남, 김정선,

이광호, 이만나, 한수정, 이정은씨 등 아홉 작가의

꽃 그림을 초대해 ‘화론’전을 개최한다.

 

작가들의 꽃은 과거에서 유래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의 일부이자

회화적 지속성의 구실이며 현실의 투영이다.

 

김정선의 확대된 꽃들은 심리적인 기억을 되 뇌이게 한다.

 

이만나의 '기둥'은 두렵기도 하고 저항할 수도 없는 생명의 거대한 집합체다.

 

김제민의 그림은 무성한 잡초를 그려 식물과의 교감을 다루고 있다.

 

신수진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자연의 근원적 힘에 맞닿아 있다.

그 어느 씨앗 못지않게 수많은 꽃잎과 생의 단위들을 정연하게 생산 한다.

 

이광호는 섬뜩하도록 앙증맞은 선인장 꽃 봉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탐스러운 사과 한 바구니와 화병 속의 꽃을 그린 이정은의 정물화는

갈색고양이 한마리가 화면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창남의 그림은 잊을 수 없는 심리적 감성이 깔려 있다.

단순한 슬픔이나 황홀감이 아니고 복합적 감수성이다.

 

한수정은 확대된 꽃과 주변부 묘사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공간을 넘나들며 우리의 시선을 기만한다

 

꽃과 잎으로 화면을 채운 허보리는 진화된 새로운 지점을 찾아 나선다.

애써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무심하거나 무던하다.

 

계절 따라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구경도 좋지만,

작가마다 다른 감성을 드러내는 '화론' 꽃그림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꽃 그림 보러 인사동 가자.

 

전시는 4월1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족쇄와 코뚜레'

참여작가 :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신민,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전시일시 : 2019,9,5-10-26

전시장소 : oci미술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좀 추슬러 차리니 아무래도 먹기가 편하다.종류별로 나눠 가지런히 담아내니 더 깔끔하고 맛있는 것 같다.갖은 모양을 내어 예쁘게 플레이팅 하니 요리의 급수가 오른 기분이다.음식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수준으로 정성을 들이니, 아까워 먹을 수 없을 정도이다.평생에 다시없을 독창적인 꾸밈새가 나오니, 이건 더 이상 음식의 영역이 아니다. 먹고사는 일과 美1의 추구는 전혀 딴판 말고 같은 판에 있다. 숨이 붙어 있기만 하면 산 것이고, 걸치면 옷이고, 씹어 삼키면 다 음식인가? 맛있는 것보다 기왕이면 맛있고 예쁜 걸, 치마 하면 다홍치마를 집어 드는 건, 욕구 단계론이라도 끌어다 논리적인 척할 것도 없이 그냥 ‘본능’이라 퉁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러울 듯싶다. 쾌快의 수많은 가닥 중 굵직한 하나가 단연 美라면, 의식주를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걸, 더 좋은 걸 찾을 것이다. 그런데 美의 추구에는 대가가 따른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데, 너도 나도 찾는 홍상이 동가일 리 있나. 동가에 ‘ㄷ’만 꺼내도 ‘홍상 프리미엄 모르냐?’는 타박만 돌아온다. 제품도 그러할진대 작품이야 말해 무엇하랴. 당장 입지도 못할 홍상을 훨씬 멋지게 짓는 일인 것을. 그런데 어럽쇼? 천신만고 마다않고 다 지어 놨더니 ‘입지 못할 홍상, 매입 사절’이란다. 짓는 족족 팔려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빌붙어 늙는 자식놈처럼 철없이 눌러앉은 치마 더미를 보고 있자니 썩고 타는 건 그저 속이요, 언감생심 다음 치마 넘볼 처지가 못 된다. 치마는 쌓이고, 여력은 깎이고, 확신은 꺾인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작업 하기 더더욱 어려워진다. 연년생 키재기하듯 무럭무럭 쌓이는 울긋불긋 고지서와 갖은 독촉장을 우두커니 바라보자니 휑한 깨달음이 온다. ‘다른 모든 걸 끊고 작업에 매진하다가는 까닥, 작업도 끊게 될 판이구나.’ 이러나저러나 ‘작업을 하려면 작업 아닌 것을, 작업의 ‘여집합’을 열심히, 또 잘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요번에 필feel 한번 제대로 꽂힌 회심의 역작, 하늘을 나는 다홍치마 작업 하려면, 공장에서 바지 백 벌은 기워야 할 성싶다. 모자랄지 모르니 이백 벌 해 놓자. 그냥 넉넉하게 천 벌 할까?’ 여집합에 몰두할수록 든든히 작업을 뒷받침할 수 있으리란 기대 하나로, 치마 지을 힘이며 짬이며 좌우간 있는 대로 박박 긁어다 바지 공장에 기약 없이 들이붓던 어느 날, 인터뷰가 들어왔다! 무려 ‘바지 달인 특집’이란다. 치마 작가 말고. 여집합은, 몰두할수록 작업과 서먹해지는 부작용 표기가 소홀했다. 발목 잡히지 않으려 뛰어든 여집합에 코 꿰어 정신없이 끌려가다 보니 숫제 여긴 어디쯤일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무엇에 취한 듯 덜 깨어 아직 흐리멍덩한 눈, 도통 갈피가 서질 않아 여전히 망설이는 얼굴로 연거푸 두리번댄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족쇄 차고 고군분투 마른 풀숲을 훑어야 할까? 여물 때만 손꼽으며 이름 모를 논두렁 따라 그저 ‘존버 앞으로’ 해야 할까? 갈 힘과 갈 길, 어느 쪽을 저당잡힐는지.족쇄냐 코뚜레냐 그것이 문제로다.

1문두에서 ‘예쁜 것’으로 순화-연수기로 거르듯 ‘연화 軟化, softening’라 하면 더욱 적절하겠다-한 좁은 의미의 ‘美’와 관련, 진리, 보편, 합리, 숭고, 우아, 희소, 비장, 황홀 등 하고많은 모양새를 규정해 왔지만, ‘그럴듯함’이야말로 너무 한정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고 사뭇 적절해 보인다. 앞서 나온 단어들 또한 ‘이런저런 그럴듯함’의 나열이 아닌가.

김영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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