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코로나에다 날씨까지 푹푹 찌는 삼복 더위라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아무리 집에 박혀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살 것 아닌가?

이왕 외식을 하려면 전시도 볼 겸 인사동 나들이나 가자.

 

며칠 전 인사동에 들려 맛집의 추억을 더듬어가며 찾아 보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긴 인사동은 식당들도 한가했다.

주인은 죽을 지경이나 손님 입장에서는 편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인사동 맛집 순례지만 가는 곳마다 먹을 수 없어 사진만 찍고 맛은 지난 날을 추억하기로 했다.

마침 점심때라 한 끼는 먹어야 하는데, 어디 갈까 망설이다 낙점한 곳이 ‘툇마루’의 된장비빔밥이었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도 좋지만, '툇마루' 된장 맛은 이름처럼 된장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주인인 김원순씨가 갈 때마다 도토리묵을 공짜로 줘, 입장 곤란하게 만든다.

 도토리 뇌물 먹어 일번으로 추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곳은 박중식 시인이 호구지책으로 93년에 문을 연 밥집인데, 완전 대박이었다.

그리고 된장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쾌거였다.

 

처음엔 1층에 문을 열었으나 손님이 너무 많으니, 건물주인이 그 자리에 식당을 차리는 바람에

지하로 밀려났고 나중엔 2층까지 얻어 식당을 확장했다.

박중식 시인은 시골에서 한가하게 지내는 대신 선아엄마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잡곡밥과 된장이 따로 나오는데, 부추를 된장에 넣어 순을 죽인 후 참기름을 쳐 비벼 먹는다.

열무김치까지 곁들이면 옛날 생각이 절로난다. 주전자에 따라 주는 막걸리 맛도 은근히 죽인다.

술 안주로는 가지미식혜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약간 바스락거리게 구운 녹두전이 별미다.

 

그 다음은 같은 건물 일층에 있는 ‘향교 나주곰탕’을 찾았는데, 맑은 곰탕 국물의 깊은 맛이 일품이다.

‘툇마루’가 처음 문을 열었던 곳인데, 주인이 직접 식당을 운영했으나 손님이 없어 몇 년을 고전하다

나중에 ‘향교 나주곰탕’이 들어서며 손님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민 시인께서 살아계실 때는 종종 들렸지만, 요즘은 갈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얼마 전 나주에 있는 원조 곰탕도 먹어 보았지만, 인사동 나주곰탕보다 못하더라.

 

어떻게 끓였으면 맑으면서도 이렇게 깊고 진한 국물 맛을 내는지 모르겠다.

국물 위에 떠있는 파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보들보들한 수육 맛도 일품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예술가들은 푸짐하게 들어 있는 수육을 안주로 반주까지 곁들일 수 있다.

‘툇마루’와 ‘나주곰탕’ 위치는 종로구 인사동4길 5-26인데, 갤러리 서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북인사마당 방면으로 가기 전에 들릴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바로 낙원상가에 있는 청국장으로 유명한 ‘일미집‘이다.

 

갓 지은 고슬 고슬한 밥과 담백하고 고소한 청국장 맛은 밥집 이름처럼 일미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적어 청국장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

낙원 상가에 자리잡은 허름한 식당이지만, 미식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인사동사거리에서 낙원동방향으로 가면 ‘낙원악기상가’지하148호에 있다.

 

그리고 인사동 사거리에서 공평동 쪽에 있는 삼계탕의 본가 ‘무교 삼계탕’도

40여년의 관록 있는 음식점인데, 복날에나 가끔 들려 몸보신 한다.

밑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김치 외에 고추장으로 무친 마늘이 있는데, 은근히 닭과 궁합이 잘 맞는 반찬이다.

 

서비스로 주는 인삼주까지 한 잔 곁들이다 보면 세상 부러운게 없어진다.

위치는 인사동사거리에서 공평동 쪽 '인사동7길'에서 우리은행 건물을 끼고 돌면 나오는 종로구 인사동7길 37이다.

 

그 곳에서 맞은 편 건물 사잇길로 조금 들어가면 100여년의 전통으로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된 ‘이문설농탕’이 나온다.

'이문설농탕'의 진맛은 묽은 육수 국물에 있다.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뼈와 도가니를 많이 넣고 끓여 국물이 희고 뽀얀 색깔이 특징이다.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깊은 맛이 우러난 담백함이 일품이다.

주소는 종로구 우정국로 38-13이다.

 

그 곳에서 다시 사거리 방향으로 나와 북인사마당으로 가면 '통인가게'가 나오는데, 2층에 한 때 양과점으로 이름을 떨쳤던 ‘태극당’이 있다.

'통인가게' 옆에는 ‘뜰과 다원’이라는 전통차와 떡을 파는 새로운 가게도 생겼더라.

 

인사동에서 오래된 만두집으로는 만두전골로 유명한 ‘사동집’과 개성식 만두집 ‘궁’이 있다.

 

‘궁’은 만두국과 조랭이 떡국이 유명한데, 만두 내용물이 실하면서 맛은 담백하다.

 

만두전골로 유명한 ‘사동집’은 큼직한 만두에 10가지가 넘는 야채가 들어가 또 다른 맛을 낸다.

 

‘개성만두 ’궁‘은 수도약국 옆길로 조금 가다 왼편의 경인미술관 방향으로 들어가면 경인미술관 바로 앞에 있다.

 

그리고 ’사동집‘은 ‘인사아트프라자’ 건물 사이 골목인 인사동5길에 있다.

 

사동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 왼쪽으로 접어들면 쫄깃한 수제비가 일품인 ‘인사동 수제비’가 나온다.

 

항아리에 담겨 나오는 인사동수제비는 얼큰 수제비와 들깨 수제비로 구분되는데.

굴이 들어간 국물 맛도 진하지만 쫄깃한 수제비 맛이 이집만의 자랑이다.

 

그리고 인사동 9길로 들어가면 백악미술관 지하에 ‘소람 안동국시’ 인사점이 있다.

 

양지 국물에 가늘게 썰은 파와 고기 지단으로 맛을 낸 안동 국수가 소람의 대표 음식이지만,

여름철 메뉴로는 콩국수가 더 좋다.

 

그 곳에서 서인사마당주차장 건너편의 인사동 11길에는 생태탕이 시원한 ‘부산식당’이 있다.

손님들이 기다려도 항상 갓 지은 밥을 내놓아 밥맛이 일품이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고소한 콩나물 맛도 좋다.

 

시원한 생태탕에 내장을 추가해 소주 한 잔 걸치는 진미를 모른다면 인사동 주당이 아니다.

 

인사동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영화감독 이미례씨가 운영하는 ‘여자만’이다.

'여자만'은 여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여수와 고흥 사이에 있는 만 이름이다.

 

싱싱한 남도 제철음식으로 유명한 이곳은 양념꼬막이 맛있다.

위치는 인사동 14길 골목으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귀천’ 맡은 편에 있다.

 

인사동에는 가난한 예술가가 식당 차려 부자된 곳도 두 군데나 있다.

박중식 시인이 된장예술이라 명명한 ‘툇마루’와 이미례 영화감독이 만든 ‘여자만’이다.

두 곳 다 분점이 생길 정도로 유명세는 떨쳤지만, 돈과 예술은 궁합이 안 맞는지 더 이상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 밖에도 맛있는 밥집이 많으나, 인사동 토박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을 골랐다.

맛도 있고 부담이 덜한 음식점인데, 대부분의 식당들이 골목에 숨어있다.

찾을 때는 골목 입구에 붙은 도로번지 이정표를 참조하면 찾기 쉽다.

 

무더운 여름철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체력이 말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맛있는 음식으로 몸을 챙겨, 님도 보고 뽕도 따자.

건강한 여름을 바라는 마음에서 인사동 맛 집을 돌아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곰탕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대구 달성의 현풍곰탕과 경기 곤지암 소머리곰탕, 전남 나주 지역의 나주곰탕이 유명하다.

지역별로 조금씩 형태와 맛이 다른데 이중 나주곰탕은 많은 사골국물 위주의 타지방 곰탕과는 달리 맑은 국물에 푸짐한 건더기에 치중해 고깃덩이를 많이 넣는다는 점이 다르다. 소를 많이 키우던 나주 지역 곰탕의 특징이라 한다.

서울에 많은 나주곰탕 전문점이 있지만 인사동에 있는 향교 나주곰탕이 그중 유명하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하지만,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다시 오게 된다.

 

 

수육곰탕



기름기를 싹 걷어낸 맑은 국물. 정통 나주곰탕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향교 나주곰탕에는 전해지는 방식으로 계란황백지단이 놓여있다.

계란지단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반가의 음식이란 뜻이다. 대충 먹는 게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지단을 따로 내어

고명을 올리는 격식을 갖추는데, 나주곰탕과 타지역 곰탕의 차이점이다.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 개성의 온반이 그러하듯 고급 관리와 양반이 많은 지역에선 음식에 지단과 실고추 등

호화스러운 고명을 많이 올렸다. 나주는 예전에 인근 지방을 관할하는 나주목사가 있었던 터라

이처럼 정성들인 반가음식의 전통이 이어졌던 모양이다.

인사동 나주곰탕엔 양지, 사태 등 고기 건더기가 푸짐하다.

국물은 맑지만 대신 진한 육수 맛을 품고 있다. 매일 가마솥에 고기를 오래 고은 다음 기름기를 걷어냈기 때문이다.

 

 

물회



그리고 소주라도 한 잔 겯들이려면 곰탕보다는 수육곰탕을 주문하면 된다.
별도의 수육을 주문하지 않아도 곰탕에 수육이 많이 들어있어 충분하다. 
굳이 안주를 시키려면 물 회를 시키는 것이 좋다. 

가격에 비해 맛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곰탕 : 9.000원 / 수육곰탕 : 12,000원 / 물회 : 9,000원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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