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가 최치권 / 사진 정영신

최치권의 ‘구미호-불리지 않은 신화'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67’호로 발행되었다.

출판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지난1월 15일부터 24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으나 차일피일하다 포스팅이 늦어버렸다.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시장 출입을 꺼리는 시절이라

사진집을 구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늦게나마 소개하게 되었다.

 

그동안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눈빛사진가선’은 책자가 적어 소장이나 휴대하기도 좋지만,

책값도 12,000원 정도의 부담 없는 금액이라 아무리 돈이 없는 나도 빠짐없이 구해보았다.

여지 것 다섯권의 사진집을 냈으나 ‘눈빛사진가선’으로 출판한 ‘청량리588’만

유일하게 재판을 찍었다는 것만으로 ‘눈빛사진가선’의 인기도를 알 수 있다.

 

그 사진집은 출판사에서 엄선하여 발행하는 책이라

신진 사진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데다,

'눈빛사진가선'이 우리나라 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난, 페친인 최치권씨가 사진가인지는 몰랐다.

그 날 전시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여

서일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한다는 것과

‘대한민국 전도’,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등 여러 차례 비슷한 주제의

사진전을 가졌다는 것도 사진집에 적힌 이력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진들은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최치권만의 어법으로 형상화한 전시였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예리하게 채집하여 그만의 내러티브를 담아냈는데,

욕망과 탐욕이 이글거리는 인간 내면의 암울한 해학도였다.

 

구미호란 전설에 나오는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를 말하나,

인간성을 잃어 사악해진 인간을 빗댄 말이다.

물질문명의 탐욕에 휩싸여 영악하기 이를 데 없으니,

늙은 여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작가는 거리에 흩어진 이미지를 채집하는 사냥꾼에 다름 아니었다.

지나치는 거리 모퉁이에 놓인 사물이나 간판 등 하잘 것 없는 오브제를 언어로 끌어들였다.

조간신문의 한 문구나 이미지마저 자신의 메시지로 활용했다.

다들 숨은 그림처럼 못 알아채고 지나쳤던 것들을 찾아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포착한 도시의 풍경이나 피사체가 낯설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치다 부딪친 대상을 적절히 잘라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적 센스가 날카로웠고,

피사체를 관조적으로 보는 시선도 남달랐다.

 

 80년대 초반 내가 서울 올라 온 후, 한동안 외도한 적이 있었다.

물질문명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은유적인 소재로 기계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민식선생의 영향으로 줄 곳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당시는 대상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찍히는 문제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기계를 통해 물질문명을 비판하며 인간성 회복의 기치를 세우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청계천 주물상가나 마장동 폐차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차겁고 육중하거나 날카롭게 보이는

형상들을 채집하여 사진잡지에 연재하기도 했으나, 그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돌아선 것은 반대어법의 소구력이 약해서였다.

스스로 아무리 강한 느낌을 받아도 상대가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작가의 주관적 작업보다 사료로 남을 수 있는 객관성에 무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이 정리된 단편적인 오브제는 그 울림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한계도 느꼈다.

 

아무튼, 다시 사람을 찍으며 적극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으나,

상대와의 소통을 위해 함께 어울리다 보니 많은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그런 경험이, 최치권씨의 ‘구미호’가 남달리 다가 와서다.

 

작가가 던지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몇 몇 사진에서는 발길을 멈추게 하며 다시 한 번 사람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적중했다는 말이다.

 

‘최치권 스타일 다큐’라는 제목의 해설을 쓴 오혜련씨의 마지막 글로 마무리한다.

 

“‘구미호-불리지 않은 신화’시리즈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는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다움, 인간 가치에 대해 묻는다.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 ‘구미호’에는 그것을 보고 있는 구미호가 있고,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가 있다.“라고 얘기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반은 인간이고 반은 여우인 구미호는 인간인가? 여우인가?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는 인간인가? 여우인가?

가치혼돈의 요지경 시대에 우리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도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