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은 사진작가에게 술 한 잔 권한 적 없는 깍쟁이였다.

1986년 2월 인사동의 주막 ‘실비집’에서. [사진 눈빛출판사]


그의 소풍이 끝난 지 벌써 20년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 그의 순진무구한 표정이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시인 천상병(1930~93)의 20주기를 기념한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에서다.

사진작가 조문호(66)씨와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고(故) 김종구씨의 카메라에 담긴 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의 모습 그대로다.

 따뜻한 시와 달리 천상병의 삶은 지난했다. 1952년 ‘갈매기’로 등단한 그는 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전기고문을 당하는 등 옥고를 치렀다.

71년 고문 후유증과 음주로 인한 영양실조로 쓰러진 뒤 행려병자로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행방 불명된 그를

기리는 유고시집 『새』도 출간됐다.

 그럼에도 그는 늘 행복했다. 사진집 속에는 막걸리 한 통이면 더 행복했던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가득하다.

2010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인사동의 찻집 ‘귀천’과 그가 즐겨 찾았던 주막 ‘실비집’

에서는 지금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수락산 자락 의정부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앉아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과 병실에 누워 책을 읽거나 잠든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조문호씨는 “(선생님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고 기억했다.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낸 그는 이제 가벼운 새 한 마리가 돼 이렇게 울고 있을 듯하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 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

(중략)…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새’ 중)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사진작가 조문호, 추모사진집 펴내

                                                                                          

28일로 천상병시인이  세상을 뜬 지 20주기를 맞는다. 시인은 모질었던 삶을 ‘소풍’이라 부르며

‘아름다웠다’고 노래했다. 1982년 7월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조문호 사진작가 제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1930∼1993)의 시 ‘귀천(歸天)’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28일은 천 시인이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지 20년 되는 날. 시인이 생전 ‘문디 가시나’라고 살갑게 불렀던 부인 목순옥 씨가 세상을 뜬 지도, 이들이 운영하던 서울인사동 찻집 ‘귀천’이 문을 닫은 지도 3년 가까이 돼 간다.

시인을 추억할 수 있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조문호 사진작가(66)가 생전 천 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모아 펴낸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 조 작가의 사진에 고 김종구 사진작가의 사진, 그리고 천 시인의 앨범 속 사진을 곁들였다. 흑백 사진 속에서 때론 무표정하게, 때론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시인이 반가우면서도 가슴 아리다.

조 작가는 1980년 봄에 처음 천 시인을 만났고, 10여 년 동안 그를 앵글에 담았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쓰러질 듯 기우뚱거리며 주막을 찾아, 한 잔만 마시고 맡기기를 하루에 몇 차례씩 반복했으나 내게 술 한 잔 권한 적이 없는 깍쟁이셨다. 그러나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1949년 잡지 ‘갈매기’를 통해 등단한 천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6개월여간 옥고를 치렀고, 고문 후유증과 과도한 음주,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는 사망으로 추정됐고, 그의 첫 시집인 ‘새’는 유고시집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에 ‘기인’이란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시인은 월간조선 1990년 5월호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 멋대로 버릇없이 살아온 탓으로 흔히들 나를 ‘기인, 기인’ 하는데 나는 도무지 내가 왜 기인인지조차 모른다. 다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나는 가난하고 슬퍼도 행복하다. 그 나의 행복의 결과가 시로 태어났다”고 말한 천 시인. 그를 기리는 제10회 천상병예술제가 28일까지 경기 의정부시 일원에서 열린다. 27일 오전 11시 의정부시립공원묘지에서 20주기 천상노제 ‘봄 소풍’, 오후 7시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가 열린다. 28일까지 의정부 예술의전당 전시장과 로비에서 특별미술전과 책읽기 행사 등이 이어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그는 순수한 천재시인이었다"..천상병 추모사진집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1987년 인사동 칼국숫집에서 시인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이단

케이크 앞에 앉은 시인은 카메라를 보며 천진난만하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시인에게 가지

않겠다고 떼쓰며 우는 어린 처조카 딸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1930-1993)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가 나왔다.

사진집 제목인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의 대표작인 '귀천'(歸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사동에서 주로 활동해온 사진가 조문호 씨는 시인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을 정리해 사진집을 펴냈다.

1980년 어느 봄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한 인사동 전통찻집 '귀천'에서 시인과 처음 만났다는 조 씨는 그때부터 10여 년 동안 시인 곁에서 시인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귀천'에서 동료 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의정부 장암동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 인사동 실비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 등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생의 시와 함께 수록했다.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 씨가 찍은 사진, 선생이 남긴 앨범 사진도 실려 있다.

"선생님께서 귀천하신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영혼만은 인사동 어느 주막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는 조 씨는 "순수한 천재시인"인 고인이 자신의 최고 모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숱한 초상 사진을 찍어왔지만 천 선생님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며 그리워했다.

132쪽. 2만원.
 

 

 


                                                   yunzhe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4/22 17:5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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