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냥 책사냥]

저승여비 4백만 원 재로 들고 간 시인

이소리 글꾼(lsr21@naver.com)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

 

‘소릉조-70년 추일’ 모두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이름 그대로 ‘천상’ 타고난 시인이었던 고 천상병(1930~1월 29일 일본~1993년 4월 28일) 시인.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라는 시를 남긴,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저승으로 은근슬쩍 들어간 걸 보면 저승 가는 데는 여비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다. 어쩌면 장례식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으로 저승 가는 여비를 보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는 4월 26일(금)은 ‘이 시대 마지막 기인’이라 불렸던 고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아 그가 살았던 의정부에서 ‘제10회 천상병 예술제’(19일~28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문학iN 4월 16일자 보도)가 열리는가 하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그를 기리는 문학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그뿐이 아니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천상병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을 펴냈는가 하면 의정부에서 살고 있는 문학예술인들이 지금까지 문학관 하나 없는 천상병 문학관을 번듯하게 세우기 위해 소매를 걷었다. 지금 저승에 있는 천상병 시인이 “가서 아름다웠더라”라고 말할 만 한 세상이다.

‘인사동 소풍, 천상’… 26일, 시와 노래의 밤+추모사진집 출판기념회

내 친구 천상병 시인은
저승 가는 여비를
4백만 원이나 가지고 갔다네
이승의 찬 기운 떨쳐 버리려
그것을 태워, 재로 갔다네
쭈그러진 얼굴로 헤실피 웃으며
내밀던 손
검은 손 착한 손
그 손에 쥐어 주던 쥐꼬리 같던
우리들의 우정
쌍과부집 독한 막소주로
허허로운 뱃속 바람과
이승의 공허 메우던 친구 -강민, ‘시인의 귀천’ 몇 토막


<rimgcaption>ⓒ 눈빛 </rimgcaption>

시인 천상병 선생 20주기가 되는 4월 26일(금)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실에서 ‘인사동 소풍, 천상’이라는 제목을 내건 시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이날 낮 4시부터 저녁 6시까지 2시간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는 천상병 시인과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가 남긴 시와 노래, 회고담 등으로 이어진다.

천상병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출판기념회는 Mu/Art에서 밤 9시까지 이어진다. 이번에 추모사진집을 낸 사진작가 조문호는 “선생님께서 귀천하신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영혼만은 인사동 어느 주막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며 “순수한 천재시인인 고인이 자신의 최고 모델이었다”고 되짚었다.

천상병 시인은 순수한 천재시인이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숱한 초상 사진을 찍어왔지만 천 선생님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천상병 시인 20주기를 맞아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를 펴냈다. 이번 사진집 제목이 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이 남긴 대표작 ‘귀천’(歸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번 추모사진집에는 ‘어머니 생각’, ‘아내’, ‘나의 가난함’ 등 천상병 시인이 지녔던 여러 가지 모습을 사진작품으로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지닌 숨김없이 솔직한 모습과 삶에서 다가오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시인이 지닌 참 모습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다.

1987년 인사동 칼국수집에서 열린 천상병 시인 생일잔치 사진도 눈에 띤다. 이 사진은 2단 케이크 앞에 앉은 시인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시인에게 가지 않겠다고 떼쓰며 우는 어린 처조카 딸이 지닌 모습도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만든다.

1980년 어느 봄날 시인 부인 목순옥 여사가 꾸리고 있었던 인사동 전통찻집 ‘귀천’에서 시인과 처음 만났다는 사진작가 조문호. 그는 그때부터 10여 년 동안 시인 곁에서 시인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귀천’에서 동료 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의정부 장암동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 인사동 실비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 등… 이 사진집에는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시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생 시와 함께 실었다.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김종구가 찍은 사진과 선생이 남긴 앨범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제1부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제2부 나의 노래는 하늘의 것, 제3부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제4부 천상병 앨범에서, 제5부 천상시인 천상병-배평모에 이어 실려 있는 작가 후기, 천상병 연보 등이 그것.

사진작가 조문호는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개인전으로 아시안게임 기록전(1986), 동아미술제 초대전(1987), 민주항쟁 기록사진전(1987), 전농동 588번지 기록사진전(1990), 불교상징전(1994), 전통문양 초대전(1995), 동강 백성들 기록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신명 설치사진전(2008), 산을 지우다 사진전(2008) 등을 열었다.

단체전으로는 낙동강 환경사진전(2001), 우리 사는 이 땅 환경전(2003), 한국다큐멘터리 사진의 조망(2004), 함께 사는 땅 환경전(2004), 광복 60년, 시대와 사람들(2005),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특별전(2005), 현대사진 60년전(2008), 흑백사진페스티벌(2008) 등에 참가한 바 있다.

개인 사진집으로 <두메산골 사람들> <불교상징>이 있으며, 포토 에세이집 <동강 백성들>을 펴냈다. 공저로는 <우포늪> <동강> <낙동강> <한국불교미술대전>(전 7권) 등이 있다. ‘동아미술제’에서 연작 ‘홍등가’로 대상 수상(1985), 아시안게임 기록사진공모전 대상(1986), 강원다큐멘터리 사진가(2002)고 뽑혔다. 그동안 <월간사진> 편집장, <한국사협> 회보 편집장, <삼성포토패밀리> 편집장,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강원도 정선에서 농민들 삶을 기록하며 인사동을 드나들고 있다. 한국사진굿당 대표.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의정부에서 살고 있는 예술인들이 시인 천상병 문학관 세우기에 소매를 걷었다. 지난 3월 이 지역 예술가 박이창식(49)을 주춧돌로 열 명 남짓 뭉쳐 ‘천목 문화사랑방’을 만든 것이 그것이다. 천(天)과 목(木)은 각각 시인과 시인 아내였던 목순옥 여사 성에서 따온 글자다. 이 글자에는 ‘천상의 나무’라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작가, 비누 공예가, 젬베 연주가 등으로 짜인 이들은 천상병 시인 제자도 아니고, 천상병기념사업회 소속도 아니다. 이들은 천상병 시인이 생을 마친 의정부에 뿌리를 둔 예술인이라는 점만 유일한 공통점이다.

박이창은 “이 모임이 우연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라며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천상병예술제에 각자 참여하면서 문단과 지자체가 시인을 홀대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우선 의정부시민을 대상으로 천목 문화사랑방을 홍보하고 회원 수를 늘리는 게 1차 목표”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오는 10월 12일 시인이 지녔던 작품세계를 주제로 ‘소풍길 예술제’를 연다. 이때 문학관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이와 함께 천상병 세미나를 열어 모금활동도 벌인다.

박이창은 “시인의 육필원고와 미발표된 메모들은 언제라도 유실의 위험이 있다”며 “문학과 건립이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목 여사마저 이 세상을 떠나고, 시인이 살았던 집마저 경매로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유품들이 갈 곳이 없게 됐다는 것.

고 천상병 시인 유품은 천상병기념사업회 김병호(50) 부이사장이 꾸리고 있는 한 극단 소품 보관창고에 3년째 임시 보관하고 있다. 이 보관창고는 시인 부부가

살았던삶터를 벗어난 구리시 갈매동에 자리 잡고 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