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미술시평

천경자, 여인상, 1985, 종이에 채색, 60×45.5cm, 대한민국예술원 소장


천경자 미스터리. 참으로 희한한 신문기사 제목이다. 천경자 미스터리? 뭐가 어쨌길래? 기사의 핵심은 뉴욕에서 투병 중인 천경자 화가의 생사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추정에서 비롯되었다. 천경자는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만년을 보내고 있다. 올해 90세이다. 사건은 왜 생겼는가. 대한민국예술원은 천경자 생사 여부의 문제로 지난 2월부터 회원 수당지급을 중단했단다. 지난 10년간 화가와 직접 대면한 외부인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술원은 회원 21명에게 매월 180만 원씩 지급해왔다. 그동안 예술원은 천경자 관련 생사 여부 확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생사 확인에 대하여 환자를 보살피고 있는 화가의 큰딸 이혜선 섬유미술가는 불쾌감을 표현하고, 천경자의 예술원 탈퇴서를 제출했다. 가족은 화가가 살아 있다는데, 한쪽에서는 생존 문제 운운하면서 미스터리라 했으니 정말 희한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은 예술원 개원 60년을 맞아 특별전(4.17-7.27)을 열고 있다. 역대 예술원 회원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하지만 예술원이라는 거창한 말을 내세운 전시치고는 너무 ‘심심한 전시’였다. 60년이라면 회갑이지 않은가. 이제 예술원도 연륜이 쌓여 원로의 반열에 올라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의 예술원은 정말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가. 우선 60년 기념전시를 살펴보자.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심으로 꾸며졌다. 전시작품을 수장고에서 진열실로 평행이동한 것이다. 60년 역사에 대한 평가와 같은 의식은 애초부터 없었다. 늘 보아오던 그렇고 그런 소장품의 단순 나열, 전시는 관객의 감 동을 원천적으로 박탈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무엇 때문에 예술원 전시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표정이 없는 예술원’이라는 대외적 이미지가 있었는데, 관련 전시까지 표정이 없었다. 대규모 전시는 기획자의 주장이나 성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술원 60년전은 어떤 주장이나 평가작업과 무관한 학예회 같은 집안 잔치에 불과했다.

전시장에서 특히 놀란 것은 출품작가의 면면이었다. 어, 이 작가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지금도 예술원 회원 선정기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나라의 대표적 미술가라 하는 데, 원로 가운데서도 원로라 하는 데,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정했는가. 미술사적 잣대로 역대 예술원 회원들을 평가하라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나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예술원 회원 선정은 기존 회원의 참여와 간섭이 없는 객관적 기구에서 선정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기존 회원의 참여는 기득권 행사의 잔치마당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예술원 회원인 한 특정작가는 절대로 신입회원이 될 수 없다는 것, 이는 낭설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예술원은 무엇하는 기관인가?

나는 예술원이 무엇하는 기관인지 알지 못한다. 양로원이 아니라면 한 나라의 예술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어야 명칭과 부합될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예술원은 평상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매월 회원들에게 180만 원이라는 수당만 지급하고 있는 곳인가. 회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매월 수당을 받는가. 궁금할 따름이다. 수당은 국민의 세금이 아닌가. 예술원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천경자 회원에 대하여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생사 문제의 미확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불행하게도 작금의 예술원 사태를 보면서 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사에 나온 ‘천경자’라는 이름 대신 ‘예술원’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하여 읽어 보았다. 참으로 희한한 기사가 되었다. 제목은 ‘예술원 미스터리’. 그 엉터리(?) 기사 내용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 국민은 예술원의 생사 문제를 확인할 수 없어 회원들에게 수당지급 중단을 요구했다. 예술원 가족은 예술원은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예술원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본 국민은 없었다. 국민들의 신병 이상 운운에 대하여 예술원 회원들은 불쾌한 감정으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허허허.)

미술가 복고바람

연초 미술가에 박수근, 이중섭 등 ‘국민화가’ 중심의 복고바람이 거세다.그동안 연말연시 기획으로 해외 유명미술관의 소장품전이 큰 흐름을 이뤘으나 올해엔 우리나라 근현대명화전이 강세다. 겨울방학용 해외명화전 위주에서 벗어나 ‘국민화가 작품전’이 새롭게 호응을 얻고 있다. 친근한 국내 작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우리 미술이 재조명되면서 학생, 가족 단위의 미술애호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으로 관람객층이 확산되는 추세다.


▲  가나인사아트센터의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 관람객들이 대표작 ‘빨래터’를 감상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미술가 복고 열기를 이끄는 대표적인 기획전은 가나인사아트센터의 박수근 회고전(3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3월 30일까지) 및 갤러리현대의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3월 9일까지)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을 비롯해 대형 화랑들이 진행하는 이들 전시장으로 주말이면 하루 2000∼3000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등 국내 미술거장과 대표작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전시를 중심으로 기발한 실험과 도전의 난해한 현대미술과는 또 다르게, 전통 장르의 회화, 드로잉 중심의 근현대미술전이 미술가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다.

◆중·장년층 문화마인드가 반영된 친근한 우리미술 =‘근현대작가전 열기’와 관련해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해외 유명미술관 소장품전이 경비 부담 등을 이유로 주춤한 반면, 국민화가 기획전이 새로운 문화소비층으로 부상한 중·장년층의 회귀적 감성과 맞물려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이중섭의 ‘세사람’


 

자본 부담이 덜한 국내기획으로 연초 세시풍속형 고미술전과 더불어 우리 미술을 돌아보는 기획전이 정례화하고 있는 것. 전시기획자들은 은퇴 전후 경제적·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중·장년세대들이 추구하는 문화마인드가, 대중음악의 ‘세시봉 열풍’의 연장선에서 우리 근현대미술로 연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젊은 층에서도 해외여행 중 유명미술관 나들이를 통해 접한 미술 경험이 자연스럽게 우리 미술과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오후 2시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는 서너 명씩 무리지어 다니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등산복 차림의 주부 이경인(50·서울 서초구 효령로 68길) 씨는 “박수근 화백의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어 반갑다”며 “지난 1월 17일 개막 직후 혼자 둘러봤고 오늘 북한산 등산길에 친구들과 또 찾았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3층 전시작 중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미술품경매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됐던 가로 72㎝의 ‘빨래터’와 이보다 크고 가라앉은 색채의 1.1m 크기의 제2 ‘빨래터’를 꼼꼼히 대조해보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4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박 화백이 자신의 장남을 그린 1952년작 유화를 한동안 지켜보더니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최윤이 가나인사아트센터 팀장은 “전시가 입소문을 타면서 일부 소장자가 미공개 소장품을 전시에 제공하고 있다”며 “22일 박 화백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앞서 전시작이 보강됐다”고 밝혔다. 전시도록 표지화 ‘노상의 사람들’을 닮은 드로잉, 1950년대 유화 ‘절구질하는 사람들’이 설 직전 전시작으로 추가됐다.

◆이중섭 소그림 3점 동시 전시 등 전시작 업그레이드= 지난해 10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막 올린 ‘명화를 만나다-근현대회화 100선’은 90일 만인 지난 토요일 유료관람객 25만 명을 넘어섰다. 무료관람을 포함해 일평균 관람객이 2900여 명에 이른다. 1920∼1970년대 한국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근현대화가 57명의 대표작 100점을 한데 모은 기획이다.

전시기획자 임병준 씨는 “40∼60대를 중심으로 관람 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시작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  천경자의 ‘길례언니


현재 이중섭의 소그림 중 서울미술관과 개인의 소장품 2점이 걸려 있는 전시장에는 오는 18일부터 홍익대 박물관의 소장품이 더해져 이중섭의 소그림 걸작 3점이 한자리에 모인다. 서울미술관과 개인의 소그림은 제목이 ‘황소’이고, 홍익대 소장품은 ‘흰소’다. 서울미술관 ‘황소’와 홍익대 ‘흰소’는 이미지가 비슷해도 자세히 보면 고개를 숙인 서울미술관 ‘황소’가 보다 동적이며, 머리가 수평인 홍익대 ‘흰소’는 움직임이 덜하다. 반면 전시 중인 개인 소장의 ‘황소’는 ‘머리’만의 소그림이다.

관람객 대상의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근현대 대표작 100점 중 특히 관람객의 관심을 모으는 작품으로 이중섭의 소그림 외에 천경자의 ‘길례언니’,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이 지목됐다.

서울전 폐막 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4월 8일부터 시작하는 ‘명화를 만나다’ 부산전에는 서울전에 나오지 못했던 김인승의 ‘봄의 가락’이 소장처인 한국은행 2월 자체 기획전 후 추가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도 1층에 전시 중인 이중섭의 종이드로잉 ‘세사람’과 은박지 그림 등에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문화일보 /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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