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열씨의 ‘모심’전이 지난 5월17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막되었다.

그는 좋아하는 화가 열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라, 기대했던 전시였다.

 

전시장으로 가다 지리산에 은거하는 무예가 하태웅씨를 만났다.

그 역시 ‘모심’전을 보고 가는 길이라는데, 그날 일진이 만만찮을 것 같았다.

 

그 날은 가야 할 전시가 세 곳이나 되어 ‘일타삼피’라며 좋아했으나,

반가운 분들 만나다 보면 술에 녹초가 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덱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창성의 ‘나는 시민군이다’전과

김진열의 ‘모심’전은 민중의 한과 연결되어 궤를 같이한 전시라고 느껴졌다.

김진열씨의 형상미술은 민중들의 아픔을 담아내는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4시에 개막식이 열린 ‘나는 시민군이다’부터 보고 갔더니,

김진하관장과 나종희씨 두 분만 남아있고 모두 뒤풀이 집으로 가버렸다.

 

전시된 작품을 돌아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레오록’에 소개된 작품을 보긴 했으나 실제 작품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철판이나 양철을 덧붙여 만든 작품들은 마치 찢기고 분열된 민중의 노동이고 상처였다.

투박한 질감은 존재 자체의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용도를 다해 휘어지고 녹슬거나 쇠락한 사물을 연결하거나 덧붙인 형체 위에

붓질한 드로잉은 막 쌓아 올린 토담처럼 간결하면서도 원시적 편안함을 주었다.

 

투박한 조형적 감수성이 빚어낸 그의 작품에서 삶에 대한 경외감이 일었고,

버려진 사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역동적 에너지가 꿈틀거렸다.

 

작가의 삶이 베인 원시적인 힘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직관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물질과 거침없는 붓질에서 민중의 울림이 일었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김진열씨의 생명존중 작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비평 ‘투박한 존엄, 그 생명의 모심’으로 부족한 소견을 대신한다.

 

“김진열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윤의 판화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에 등장하는 숱한 사람들처럼 익명적 민중성을 확보한다. 다만 오윤이나 리베라가 객관적으로 기호화된 인물의 전형성을 확보했다면, 김진열의 인물들은 정서를 환기하는 추상적 기운으로 기능하는 점이 다르다. 김진열의 작업이 사실주의적 재현성보다는 표현주의적 속성에 가까운 건, 정형적으로 패턴화된 캐릭터를 부여받은 인물 구성 방식에서 이탈하는 그의 조형적 특성으로 인해서다. 그런 면에서 김진열의 비정형적 형상성의 회화적 긴장감은 오히려 싱싱하다.”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105243701

전시는 5월30일까지 열린다.

 

작품에 대한 여운을 안은채, 뒤풀이 장소인 ‘사랑채’로 갔더니, 김진열씨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장경호, 김 구, 손기환, 김재홍, 이태호, 이재민, 이운구, 이흥덕, 조신호, 김이하시인 등 여러 명이 있었다.

앞쪽에는 지방에서 오신 손님들이 계셨고 다락방까지 가득 차 끼일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반가운 분들 사진 찍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신 술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소주를 드시는 분이 없어, 탈 많은 막걸리를 마신 게 마음이 걸렸다.

 

정동지를 '사랑채'에 남겨둔 채, 이창성씨 뒤풀이가 열리는 ‘부산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막식에서 사람이 많아 인사도 드리지 못한 이창성선배께 인사도 드리고,

시민군 방송원이었던 차명숙씨 더러 40여 년 전에 찍힌 예쁜 모습에 반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왜 술만 취하면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놈의 술만 들어갔다 하면 180도로 바뀌어 버린다.

정동지라도 같이 있으면 덜 할 것 같아 부산식당으로 불렀으나, 이미 파장이었다.

 

김문호, 이규상씨와 ‘사랑채’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곳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김문호씨와 이규상씨는 언제 갔는지도 모르겠고, 정동지마저 줄행랑쳤다.

오죽하면 인사동 물귀신 장경호씨가 택시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었겠나?

뒤늦게 찍은 사진을 보니, '예당'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임경일씨 모습도 보였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해, 술 자리는 일체 가지 않기로 맹세했으나, 이 역시 개 맹세 될까 두렵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20작성]




지난 22일, 오류고등학교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강연회에 정영신씨가 초청되었다.
오류고등학교의 미술교사인 화가 이운구선생의 요청에 의한 강의였는데,
매년 한 차례씩 문화예술인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그날 강의는 정영신씨가 초청되었지만, 마음은 동자동에 사는 내가 더 바빴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리는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까까머리 남학생의 입장으로서는 여고가 선망의 궁전이 아니었던가.




오류고등학교에 도착하여 이운구선생의 안내로 교장실에 들려 차 한 잔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임국택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박인옥 교감, 박찬희 행정실장 등 몇몇 선생님과 인사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탈한 인상처럼, 후덕한 교장선생님의 소박한 꿈에 존경감이 일었다

.



얼마 후 정년퇴임하면 양평 방면에 거처를 두고 변두리 시골장터에서 장사 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유명 예술인을 제쳐 두고, 정영신씨의 ‘전국5일 장터이야기, 그들의 삶과 애환’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사실상, 기계처럼 인성이 메말라가는 학생들에게 아주 적절한 강의로 여겨졌다.




시간이 되어 강의 장소인 오류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영신씨는 여러 차례 강연에 다닌 경험이 있어 별 다른 걱정은 안 했으나,
그 많은 장터이야기중 무엇을 들려줄지 궁금했는데, 정해진 시간이 너무 짧을 것 같았다.




강의실에는 2-3백여명의 여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끼리끼리 나누는 웅성거림이 마치 난장 같았다.
마침, 그 날이 대학 시험 발표 날이라는데,
오류고 재학생 중에 서울대학교에 세 명의 학생이 합격해, 모두들 마음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강의가 시작되었으나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낯 선 장터이야기는 관심 밖이었다.
요즘의 교육현장을 처음 지켜보는 터라 참담함이 일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일선에서 일하는 선생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앞 서 보낸 PDF의 한글 자막이 알 수없는 기호로 나타났다.
잘 아는 사안이라 강의는 진행할 수 있었으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아 강사가 버벅댔다.
강의하는 정영신씨도 난처했지만, 나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을 모우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으로 유도했으나, 잘 먹히지 않았다.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줄 장터사진집까지 챙겼으나, 다들 빨리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강의는 마쳤지만, 얼마나 마음 조려 지켜보았는지, 기록사진 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강의하는 사진은 한 장 찍었으나, 그마저 초점이 빗나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이운구 선생으로부터 힘든 교육현실을 들었는데, 오늘은 그중 양호한 편이란다.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도 많았으나, 일부 학생들의 수군거림에 파묻힌 것 같았다.
뒤늦게 정영신씨의 ‘한국의 장터’ 블로그에 올라 온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학생들의 댓글에 위안은 가졌으나,
학생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강사의 책임도 따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강한 리드 쉽을 사전에 익히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무엇하랴!
명강사가 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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