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메멘토, 동백”도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6월 01일 (금) 00:25:11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일 ‘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월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상(象)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작품 앞에 선 화가 강요배


전시되고 있는 “상(象)을 찾아서”는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보여 줄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부 ‘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부 ‘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강요배,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그림의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강요배,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이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강요배,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며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삽화는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요배,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강요배,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자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단다.


이번에 전시한 ‘상(象)을 찾아서’는 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象'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상(象)’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강요배,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강요배,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 우레비, 2017 Acrylic on canvas 259


강요배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강요배,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쌘 제주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강요배,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그런데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뒤풀이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보는 마음이 찡했다.


6월17일까지 학고재(02-720-1524-6)에서 열리는 “상(象)을 찾아서”에 이어,

4,3항쟁을 그린 2부작 “메멘토, 동백”은 6월22일부터 7월15일 까지 열린다.










 

622일부터 715일 까지 메멘토, 동백으로 이어져...



작가 강요배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그리는 화가 강요배의 현재와 과거로 이어지는 2부작전이 지난 25학고재에서 개막되었다.

617일까지 열리는 1부작 ()을 찾아서는 말 그대로 마음에 들어 온 상의 정수를 뽑은 역작들이다.

제주 풍경과 자연의 벗들을 윤기 없이 거칠게 그려 낸 심상풍경 30여점을 내 걸었다.



1부 '우레비'를 관람하고 있다. 2017 Acrylic on canvas 259


 

전시되고 있는 ()을 찾아서622일부터 715일까지 보여 주게 될 4,3을 그린 2부 작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메멘토, 동백이 과거였다면, 1상을 찾아서는 현실일 뿐 일맥상통 한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느껴지는 묵직하고 느릿한 색에 민중의 한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1부 치솟음 2017 Acrylic on canvas 259X194cm

    

 

작가 강요배는 그 한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바닥에 깔린 한이 강요배 그림의 백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제주4·3항쟁 연작을 발표할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주는 한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2부 부모들 1992 Acrylic on canvas 130,3X162,1cm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 같은 당시 많이 사용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식 이름은 남들이 같이 쓸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 (요나라 요), (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고 한다.



1부 한조1, 2018 Acrylic on canvas 90,5X72,5cm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81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적 모습을 담아내는 민중미술가로 활약했다.

소설가 현기영씨의 '바람 타는 섬'에 그린 한겨레신문 삽화로 제주 4·3 항쟁에 대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2부 자식을 묻는 아버지1991 Conte on paper 38,7X54cm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한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전은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의 충격은 제주4,3을 다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2부 잠녀 반일 항쟁1989 Pen and blank ink on Paper 38,7X53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 나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1부 항산 2017 Acrylic on canvas 197X333

    

 

이번에 전시한 ()을 찾아서2015년 보여 준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이은 삼 년만의 서울전이다.


코끼리''자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날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

'()’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인상적이다 는 것은 마음에 찍혔다는 것으로 그 찍힌 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번 작업이다.



2부 토벌대의 '포로' 1992 Acrylic on canvas 97X162cm



전시된 작품들은 가까이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뒤로 몇 걸음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한라산 정상의 설경,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등

전시장에 걸린 그림의 형태는 뭔가 분명치 않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였다.

'언젠가 본 듯한 장면'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까지 느껴진다.



2부 젖먹이 2007 Acrylic on canvas 160X130cm


사생보다 기억으로 그린 이번 그림들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즉 진경화(眞景畵)라고 평했으며,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은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2부 천명 1991 Acrylic on canvas 162X250cm

 


마음에 파고 든 심상을 추상으로 꺼냈다지만, 추상같은 구상이고, 구상 같은 추상이었다.

강요배씨는 '추상(abstrac)'이라는 뜻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도 오인되어 왔다. 라틴어에 abstract'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다."고 말했다.


    

1부 수직, 수평면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30X161,7cm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요배 작품에 깔린 한의 무게다. 누가 강요배 만큼 한의 뿌리가 깊겠는가?

2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하여 현장을 돌아다니며 삭이고 삭인 한이다.

그는 붓도 빗자루나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상처받은 한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거칠지만 노련한 붓질로 속도감은 물론 소리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심상을 표출한 것이다.





마치 시골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면모도 강요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픽 쓰러질 것 같은 비쩍 마른 몸으로 실없는 웃음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맛이 있다.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적 끌림이다. 그의 의리도 여간 아니다.

이번 전시의 뒤풀이를 주최 측인 학고재에서 가까운 곳에다 준비해 두었건만, 기어이 인사동 낭만으로 간 것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용태형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뒤풀이가 있은 그 이튿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술이 취한 강요배씨가 몇 사람 남지 않은 자리에서 용태형의 십 팔번 산포도 사랑을 부르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마음이 찡했다.





그 날 참석한 분으로는 원로 손장섭, 주재환선생을 비롯하여 신학철, 유홍준, 김정헌, 박재동, 임옥상, 민정기, 황의선,

우찬규, 윤범모, 장경호, 조경숙, 김환영, 허상수, 박홍순, 김영중, 김태서, 박 건, 박은태, 박불똥, 안창홍, 김준권, 최석태,

김종길, 이종구, 정동석, 이광군, 김정대, 성기준, 이지하, 마기철, 노형석씨 등이다.



    

 

617일까지 열리는 ()을 찾아서에 이어지는

4,3항쟁을 그린 메멘토, 동백오는 622일부터 715일 까지 열리니 많은 관람 바란다.

학고재(02-720-1524-6)

 

사진, / 조문호














































































































 

 

 

 


1부. 상(象)을 찾아서 Ⅰ. Just, Image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18_0525 ▶ 2018_0617 / 월요일 휴관




강요배_수직 · 수평면 풍경 Vertical · Horizontal Scener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1.7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219g | 강요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52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마음을 파고든 심상(心象), 추상(抽象)으로 꺼내다 ● 강요배의 제주 공간은 여유롭다. 새로 지은 작업실 귀덕화사(歸德畵舍)는 높고 널찍하다. 다듬지 않은 앞뜰에는 지천의 수선화와 홍매가 지고, 붉은 동백과 귀한 흰 동백꽃이 가만가만 떨어져 봄 숨을 쉰다. 운치로 가득 넘친다. 지난 4월 초가 그랬다. ● 올해 제주 4월은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촛불정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4·3항쟁 70주년 기념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 들르니 4·3항쟁 70주년 특별전으로 한중일 화가들의 『포스트 트라우마』 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강요배의 『불인(不仁)』(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기획전의 백미였다. 지난 30년간 강요배가 그려온 '제주 4·3항쟁 연작'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새로 작업실을 짓고 그린 작품으로, 500호 캔버스 4장을 붙인 333cm×788cm 크기의 대작이다. 강요배의 역작으로 꼽을 만하다. 항쟁 후기 1949년 1월 17일 제주 북동쪽 조천 북촌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현장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마을 전체가 모두 한날 제사를 지낸다는 이곳에는 현재 애기무덤을 포함해 20여 기의 무덤이 남아 있고,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림 제목은 '하늘과 땅 사이에 어진 일이 없다'라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에서 따왔다고 한다.(老子, 『道德經』) ● 화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1월의 팽나무 잔가지들이 세찬 바람을 타고, 마른 풀이 엉킨 제주의 풍경이 전개된다. 언덕에는 학살이 지나간 후 스러져가는 불꽃들과 쥐색 연기가 인다. 타는 풀내음만이 붓 너울에 묻어나, 그때의 상흔을 처연하게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엔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인간은 없다. 언뜻 보면 학살의 현장이라기보다, 그냥 회갈색조 바탕에 눈보라 이는 겨울 풍경화이다. 종이를 접어 물감 묻혀 쓴 강요배 특유의 선묘들만이 화면 구석구석 이리저리 성글게 흩날리며 여운을 풍긴다. 아픈 역사의 대지를 이렇게 녹여냈다.



강요배_수평선 Horiz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8


너울대는 종이 붓의 제주 진경화(眞景畵) ● 강요배는 일반적인 붓보다 빗자루, 말린 칡뿌리, 종이를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고향 제주에 내려와 제주의 자연을 그리면서, 투박하고 성근 제주의 땅과 돌과 풀, 나무에 어울리는 도구를 나름 개발한 것이다. 1994년 『제주의 자연』 전(학고재 갤러리) 뒤부터 20년 이상 종이 붓을 줄곧 써왔다. ● 켄버스 옆에는 몇 상자씩 종이 붓이 쌓여 있다. 종이 붓은 대롱도 없고 털도 없다. 종이 붓의 선과 터치는 손이 가는 대로 잘 따라오지 않을 법하다. 어떨 때는 종이 붓과 손이 따로 놀거나, 의도하지 않은 자국이 종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흐물흐물 거리기 십상일 터인데, 강요배의 캔버스에는 종이 끝을 스친 물감이 빠르게 이미지를 형성한다. 때론 선들이 거칠게 서걱대거나, 춤추듯 쉭쉭 하며 신명이 넘쳐 있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 붓 터치들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흥에 겨워 현란하다. 완연히 강요배식 종이 붓 화법을 창출한 셈이다. 2016~2018년에 그린 이번 전시의 30여 점은 종이 붓 씀씀이가 최고조에 이른 듯하다. ● 「항산(恒山)」은 한라산 정상의 설경을 500호에 담은 대작이다. 귀덕 작업실 마당에서 동쪽에 솟은 모습이다. 반은 자색 그늘의 설산이고, 반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힐긋힐긋 드러나 있다. 풍경을 덮은 종이 붓 자국들은 이제 달인의 경지이다. 옆으로 흐르면서도 상하를 넘나들며 자연스레 리듬을 타 있다. 손길을 따른 우연의 색선들이 필연으로 그렇게 붓 길을 만들었다. ●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우뢰비(雷雨)」, 큰 파고의 「보라 보라 보라」, 바닷가 개펄의 「개」, 해변 벼랑에 몰아치는 「치솟음」이나 「물부서짐(碎水)」, 구멍 바위로 불어 닥친 「풍혈(風穴)」, 마을 신목인 「풍목(風木)」, 이번 겨울의 「폭풍설」, 제주 백사장의 푸른 바다 「수평선」, 초록바다에 뜬 달 「수월(水月)」, 앞마당 홍매의 「춘색(春色)」 등도 눈길을 끈다. 역시 종이 붓질의 득의작(得意作)들이다. ● 이들은 어느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사생하기보다 머리에 선명하게 남은 이미지로 재구성했으니 엄밀하게는 관념화인 셈이다. 더욱이 「우뢰비(雷雨)」는 주역의 괘상(卦象) '해(解)'로, 「보라 보라 보라」는 '환(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은 강요배가 평생 눈에 익히며 가슴 깊이 파고든 '심상(心象)'이자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념화가 아닌, 분명 제주를 기억한 진경화(眞景畵)라 할만하다. ● 짙은 구름 사이 노을빛 쏟아지는 「풍광(風光)」, 저녁노을의 「파란 구름」, 겨울 동트는 「동동(冬東)」, 서리 내리는 계절 「상강(霜降)」의 노을 하늘, 가을의 높은 하늘 「천고(天高)」 등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하늘 그림도 마찬가지 진경이다. 「풍광(風光)」에 표현된 짙은 구름 틈새는 하늘을 나는 봉황새답다. 붓질은 날갯짓을 따라 스피디하고, 찰나의 노을빛 연노랑색은 찬연하다. 「동동(冬東)」의 새벽하늘은 날개를 편 용오름 같다. 미끈한 표면의 「천고(天高)」에 흐르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되는 모양새이다. 필자와 강요배는 학고재 후원으로 1998년 8월 평양지역과 금강산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강요배는 당시 확인한 고분벽화의 구름무늬가 그냥 상상한 도안이 아니라, 관찰한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抽象)해낸 결과물임을 재확인했다며 즐거워했다. ● 초록빛 「흑산도」는 사생화의 맛이 물씬해 좋다. 흑산도의 전형적인 암반의 벼랑 풍광이 아니라, 능선을 오르다 굽어본 숲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그림의 능선 너머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한 정약전의 유배지였다. 화면 가득 채워 포착한 시선이 강요배 답기도 하고, 새로운 구도로 다가온다. 여행이 준 선물이다. 

 


강요배_치솟음 Upr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94cm_2017


정겨운 일상과 귀덕 친구들 ● 강요배는 요즈음 사생에 잘 나서지 않는다. 대신 작업실이나 주변에 찾아드는 자연의 벗들을 일상과 함께 즐겨 그린다.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소소하고 정겨운 그림들을 이번 전시에 여러 점 선보인다. 화실을 오가는 고양이, 왜가리, 까마귀 등과 뜰에 피고 지는 꽃과 나무 등의 친구들 상(象)은 또 다른 추상(抽象)이다. 눈에 띈 사물을 마음에 품었다가 추상화해낸 그림이다. ● 빨간 열매가 달린 먼나무에 수돗가에 쌓인 눈 그림 「수직·수평면 풍경」, 푸른 그림자 드리운 나목의 눈 밟기 「답설(踏雪)」, 겨울 하늘에 매달린 붉은 감 「동시(冬柿)」, 눈밭을 차오르는 왜가리 「으악새」, 잠시 개울가에 둥지를 튼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 흰 눈밭의 까마귀 떼 「설오(雪烏)」 등은 겨울 향기가 가득하다. 올겨울 유난스레 눈이 많았던 설경 속 이미지를 놓치지 않은 강요배의 눈썰미와 따스한 감성을 엿보게 한다. ● 「답설(踏雪)」의 옥색 푸른 그림자는 순간을 포착한 전형적인 인상주의풍이다. 단숨에 묘사한 「설오(雪烏)」의 까마귀들 동세는 흰 여백과 더불어 마치 수묵으로 그린 선화(禪畵)다우며, 강요배 추상론의 형상미에 근사하다. 특히 「한조(寒鳥)Ⅰ」 「한조(寒鳥)Ⅱ」의 웅크린 왜가리는 자세 그대로 강요배의 자화상일 법하다. ● 절친이 될 뻔한 검정고양이 「오지 않는 길양이」와 노란 귤 사이 검정고양이의 「봄잠」 그림은 맑은 화면에 봄기운이 나른하며 정겹다. 역시 선화(禪畵)의 맛을 풍긴다. 「백일홍」 「흰모란」 「춘색(春色)」의 홍매 등에 구사된 자연의 색깔이나 대상 색 면의 질감에는 꽃내음이 묻어난다. 「두부, 오이」는 비릿하며 단내 상큼하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갖고 싶은 그림이다. 즐기는 술안주를 소재로 삼아서인지, 이 소품 두부와 오이 정물은 강파른 현실에 맑은 치유의 향기로 다가온다. ● 이처럼 강요배는 귀덕 생활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상(象)을 찾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읽는다. 강요배의 성정性情이 잘 드러난 그림들이다.민중미술에서 회화의 본질로 다가서 ● 최근 캔버스에 쏟은 강요배의 사유와 몸짓은 강요배 회화의 속성이 그렇듯이 프랑스에서 발전해 세계화된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기반으로 삼는다. 강요배의 요즈음은 일본을 통해 인상주의 배운지 100여년 만이다. 고희동에 이어 김관호가 1916년 두 여인의 해질녘 목욕장면을 담은 대동강변 「석모(夕暮)」(동경미술학교 졸업작품이자 일본공모전 문부성미술전람회 특선작)를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하다. 이후 오지호와 김주경, 도상봉, 이대원 등으로 내려오며 우리 땅의 사계 경치과 풍물을 통해,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일구었다. ● 강요배는 빛과 색의 회화성뿐만 아니라 땅의 역사와 자연의 형질, 추상의 길까지 선배들보다 한발 진보해 있다. 1980년대 민중작가로, 1990년대 제주4·3항쟁 연작을 완성해낸 화가로, 독서와 사색을 통해 강요배는 진정한 인상주의적 자기 기풍을 창출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회화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생각한다. ● 강요배의 종이 붓 그림은 유럽 인상주의 회화를 완성한 거장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1910~1920년대 「수련」 연작을 떠오르게 한다. 화면에 가득 찬, 분방하게 튀는 붓질 선묘가 특히 그러하다. 「불인(不仁)」 「항산(恒山)」 「우뢰비(雷雨)」 「보라 보라 보라」 등은 대작의 위용이나 감명에서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실견했던 대형 「수련」 연작에 못지않다. 모네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눈을 떴을 때 받은 빛의 찬연함을 상상하며, 1890년대 이후 「건초더미(wheatstack)」나 「수련(nympheas)」 같은 연작들에 몰두했다. 이들은 결국 현대회화에서 추상(abstract) 표현의 원조로 재평가 받는다. ● 강요배의 화론은 내면에 들어온 심상(心象), 주역으로 해득하려는 괘상(卦象), 내 생각을 남과 공감하고 공유하며 공동체의 추상(抽象)을 추구한다. 이렇게 동양예술론에 근사하며, 생애 첫 빛을 기억해내려던 모네보다 차분하다. 캔버스 전면에 풀어낸 종이 붓의 흔적들도 서양 마네의 뻐신 붓질보다 한층 유연하다.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이다. 단연코 강요배 회화를 한국화라 할만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능란해진 강요배의 종이 붓은 이제 그를 떠나지 않았나 싶다. 도가의 무위(無爲)나 불교의 무상(無相)의 경지를 찾아선 듯하다. 「우뢰비(雷雨)」 같은 작품의 빗물 표현은 민요나 산조의 허튼 가락처럼 산란하다. 자연스레 일렁이는 강요배의 종이 붓 숨결은 퍼지 논리(fuzzy logic)의 불규칙한 정형성과 유사하다.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올 오버 페인팅(All-over-painting)과도 닮은꼴이다.


강요배_파란 구름 Blue Clou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3cm_2017

 

 

절정기를 맞은 상(), 추상(抽象)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을 찾아서'이다. 여기서 상은 '코끼리 상'이다.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 시절의 상형문자는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이다. 뼈의 외물을 사람마다 다르게 그리는 데서 상상想像(想象)이라는 단어가 파생했다고 한다.(韓非子, 解老編) '형상(形象)'에서 ''은 눈에 보이는 것(Form), 상은 마음에 남은 것(Image)을 말한다. 또 강요배가 최근 천착했던 주역(周易)64괘도 하늘의 여러 징조(徵兆)들을 상()으로 파악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상()은 뇌리에 남은 마음의 이미지이자 하늘이 펼치는 조짐(兆朕)의 흔적이니, 강요배 회화에 딱 맞는 아젠다(Agenda)이다. 이번 작가의 글 "사물을 보는 법"에 그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강요배는 '나만의 시선 안에 있고, 심적 여과 과정을 거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되살아난' 형상에서 찾는 '강렬한 요체' 또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명료함''추상(抽象)'이라 한다. 현대미술 사조에 대입한다면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도 그 범주에 들겠지만, 강요배는 '추상(抽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묵죽도나 사군자 그림을 추상화의 한 형식으로 본다. 맞다. 우리 옛 화가들은 거의 사생보다 기억으로 외워서 그렸다. 동양화론에서는 이를 '마음에서 쏟아내 그리다', '사의(寫意)'라고 했다.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대나무를 길러야 한다''흉중성죽(胸中成竹)'의 사의론을 폈다.(蘇軾, 篔簹谷偃竹記) 중국 근대회화의 큰 스승인 제백석(齊白石)'삼라만상이 머리에 들어 있는 것 같다'라고 제자들이 술회한다. 단출한 구성과 형상의 사의 그림 문인화는 물론이려니와, 한국미술사의 거장 겸재 정선(謙齋 鄭敾)도 주로 마음에 담은 실경이나 금강산 유람을 추억하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 최근 강요배는 절정기를 맞은 듯하다.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 2015) 제주에서 가진 회고전 시간 속을 부는 바람(제주도립미술관, 2016)에 이어 이번 학고재 갤러리의 ()을 찾아서전까지, 계속해 새로이 대작들을 선보여 왔다. 이들은 모두 강요배의 수행과정에서 인생과 사유와 회화가 통합의 길에 들어섰음을 일러준다. '몸 안의 천()과 마음',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뽑은 '추상(抽象)'과 정수(精髓)'()'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아래는 작년 '해석된 풍경'이라는 기획전 도록에 실린 강요배의 인터뷰이다. "...자연물은 몸 밖에 있고, 천은 몸 안에 있습니다. 장자도 하늘은 마음속에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자연을 통과해서 하늘을 찾아가야 합니다. 천심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천의 곡조를 듣는다는 거예요...저는 회화를 통해...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는 것을 꿈꿉니다." "...50대 이후15년 동안 저는 내면에 있는 천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천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그림에서 자연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의 문이랄까..."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은 오인되어 왔습니다. 라틴어를 봤더니 abstract에는 떨어져서 끌어낸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무도 그렇게 추상화하는 겁니다..., 에센스. 이건 효율성이에요. 향은 정수에 닿아 있습니다...이것은 많은 것을 커버하고, 모든 갈등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마술적이에요." (김지연, "회화, 을 만나는 과정" 강요배 인터뷰, 해석된 풍경, 성곡미술관, 2017.)

 

강요배가 쏟아낼 향내 그림들 이번 전시작품들은 강요배가 마음으로 파고드는 심상(心象)에서 가슴으로 보듬어 단순해진 추상(抽象)에 몰입해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심 없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무관심성', 그리고 주관적 미감정이 객관화되는 주관적 필연과 보편, 곧 모든 이들에게 '공통감각'이 되는 취미판단 같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 개념을 소화한 듯하다. 이번 만남에서 강요배는 주역보다 '무관심성'이나 '공통감각'의 칸트 얘기를 유난히 입에 올렸다. 그러면서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이 남들도 공감하고, 모든 이가 그렇게 부담 없이 그림 그린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지금 강요배의 삶 풍경이 이번 그림들처럼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 강요배가 앞으로 얼마만큼 쏟아낼 향내 나는 그림들을, 부러워하며 한밤중 별무리 가득한 귀덕화사(歸德畵舍)를 나왔다. 이태호

    

강요배_항산 恒山 The Eternal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333.5cm_2017



Vol.20180525a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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