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사진설치전은 지난 3일로 끝났지만,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어, 간간히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내가 방에 있으면 자유롭게 사진들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가지만,

마당에 나가 있으면 길거리 주변 사진만 돌아보고 가 버린다.

 

낯선 늙은이와 대면하는 것이 편할 리야 없겠지만, 그렇다면 내가 전시장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약속이 생기면 다시 내려오더라도 당분간 동자동에 머물며 그동안 못 다한 일에 매달려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이광수교수의 따마스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특강이 갤러리브래송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그동안 시간 내지 못했던 윤석렬 탄핵 집회에도 한 번 가봐야겠다.

참고 견디는 것도 한계에 달했는데, 그냥 두면 나라 망할 것 같다.

 

전시장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한 번도 들려 보지 못한, 맞은편에 자리 잡은 과수원 길을 걸어 보았다.

 

가끔 승용차가 들락거려 과수원길 안쪽에 근사한 저택이 있을 것으로 지레 겁먹었는데,

가보니 초라한 스레트집과 조그만 닭장이 있었다.

 

사람이 살아 주변이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나마 자연이 보존되어 있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정취도 좋지만, 곳곳에 섞은 나무둥치들이 늘렸는데,

땔감으로 주워오고 싶지만 가져올 수 없었다.

 

어제는 나무가 없어 현충사 산길로 올라가 나무를 주워온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어느 페친이 올린 불법이라는 댓글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어린 시절 산에서 자유롭게 나무했던 생각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는데,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이다.

 

내 딴에는 산책길에 넘어져 걸리적거리는 나무를 정리해 준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리를 해도 산림청에서 하지 개인이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이란 게 흉통성도 없지만, 법을 다루는 놈들이 깽판 쳐 놓아,

법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3일은 정동지와 아산으로 봄나들이 갔다.

요즘은 몸이 편치 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오래 전부터 한 약속이라 어쩔 수 없었다.

장터나 유적지로 떠나는 촬영 길이 아니라, 모처럼 김선우를 만나러간 것이다.

 

양햇살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갈도 있었지만, 겨우 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선우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집터가 있는 곳이 아니라 한우로 유명한 염치면 식당이란다.

 

도착하니 김선우, 양햇살, 김창복씨가 먼저 와 있었다.

햇살은 폐차시킬 정도의 큰 사고였으나, 천만다행으로 턱만 조금 찍혔지 다른 곳은 멀쩡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였다. 아이쿠! 그 날 햇살이가 이름 바꾸었다고 알려주었으나 깜빡 잊어 버렸네.

육회비빔밥을 시켜 아침 겸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2년 전 아산 현충사 둘레 길 한적한 곳에, 어느 목수가 살던 오래된 헌집을 샀다기에 구경 간 적이 있는데,

그 집을 개보수하여 미술관으로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변신했는지 보고 싶어 김창복씨 따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입구에는 백암길185 미술관이란 조그만 현판이 붙어 있었고,

오래전 수박 먹던 마당에는 여러 명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만들어 놓았더라.

폐가나 다름없는 허름한 시골집이 아담한 갤러리로 변신한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구조의 갤러리가 되어 있었는데,

벽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전시했던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 26점이 걸려 있었다.

 

하잘 것 없는 자재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 알뜰함이야 말 할 것도 없고,

바닥에는 황토와 콩기름 먹인 장판지가 깔려 있었는데, 어릴 때 살던 고향집 방바닥을 떠올리게 했다.

선우의 추진력과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돈만 있다면 건축업체에 맡겨 그보다 더한 것도 만들 수 있으나, 돈 들이지 않고 힘 모아 만들어 더 애착이 갔다.

요즘은 건축자재비보다 인건비가 더 비싸 업자에게 맡겼으면 당연히 허물고 새로 지었을 것이다.

 

청년 공감문화 플랫폼을 끌어가는 김선우는 작은 여장부다.

공동체의 김창복씨가 다방면에 경험 있는 전문가이긴 하나,

남의 일손은 전혀 끌어들이지 않고, 연약한 햇살이 까지 달라붙어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아산 온천동 상가의 공유공간 마인에 이어 두 번 째 만든 백암길185 미술관은 현충사 산책길이라,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산의 명소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뒤늦게 김온도 나타났는데,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며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정담 나누던 아련한 추억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백암길185 미술관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달부터 본거지에 내가 머물 집을 짓겠다는 말에 겁이 덜컹 났다.

정선 작업실이 불난 후 여러 지인이 후원금을 보내주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 초대하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다 버려야 할 때 집은 지어 무엇 하겠는가?

 

화재 보험에서 나온 이천만원을 보태어 조그만 거처를 만든다지만,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물질과는 거리 둔지 오래지만, 사진과 좋아하던 사람까지 싫어지는 판에...

 

요즘은 전시장 나들이는 물론 웬만한 모임에도 가지 않고 동자동에서 지내는데,

정동지 사는 녹번동보다 아무도 없는 쪽방이 더 편하다.

 

'버려진 사람의 초상' 사진 찍으며, 쉼 없이 죽어가는 사람처럼 눈 감고 싶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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