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

공구/ GONGGOO / 空求 / mixed media 

2023_1104 2023_1209 / ,월요일 휴관

공구 _Phantasmagoric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233×561cm_2018

공구 홈페이지_boxkr.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월요일 휴관

 

G컨템포러리

G contemporary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66 가야랑빌딩 3

Tel. +82.(0)2.6324.2139

 

'파생실재(Hyperreal)'에 의해 약탈당한 세계에서 '원형(Archetype)' 이 세계는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종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은 예술가에게도 오래된 것이다. 공구는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기록하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변형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바탕으로 이 질문에 다가간다. 그의 원형(Archetype)(2013) 연작을 보자. 어떤 사진에는 형광 빛이 흘러나오는 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또 다른 사진에는 사찰의 굳게 닫힌 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풍경이 있다. 신전에 있는 동물 석상, 석가모니의 형상이 그려진 돌,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를 기다리는 송아지의 이미지 같은 것도 있다. 사진 속 시간은 세속에 물들지 않기를 고집하다가 아무도 접속하지 않아 방치된 게임의 가상공간처럼 멈춰 있었다. 태고의 시간과 마주하는 듯한 이 사진은 세계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그리고 세계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묻는 아르케(Arche) 1) 적 원형 탐구의 산물 같다.

 

공구 _Phantasmagoric(DC 015)_ 알루미늄에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48×70cm_2018_ 부분

  사진 속 이미지는 어둡고 음습하여 긴장감을 유발한다.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불타고 있는 가시 떨기나무를 마주하였을 때 그랬을까? '네가 서 있는 땅이 숭고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절대자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이미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청 같은 것이다. 이 이미지는 또,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은둔자의 집이거나 신령한 신들이 사는 무당의 신전처럼도 보인다. 공구가 원형 연구를 통해서 우리 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심층 무의식 안에 잡은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이 세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어떻게 유전되는 지를 밝혀내는 것에 가깝다. 공구는 자신의 논문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우라의 몰락을 동양 종교의 내향적 관점에서 주목한 바 있다. 2) 그는 융이 말한 것처럼, 유일성과 원본성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핵심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구 _Offering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230×300cm_2015
공구 _Offering(DC 047)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48×70cm_2015_ 부분

  융은 신화와 종교사에 관한 연구를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았는데, 특히, 전형적인 형태와 이미지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자신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환자들의 꿈 혹은 환상, 환각에 상호 동일한 요소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이를 '원초적인 이미지(Urbild)', '집단 무의식의 기조', 본능과 무의식이 결합 된 "원형(Archetype)"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3) 그의 연구에 의하면, 원형 자체는 가정에 의해서 생겨난 모델로서 지각될 수 없고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 태로만 존재한다. 때문에 '원형'은 매우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아우라(Aura)'처럼 작동한다.

 

공구 _Beauty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230×300cm_2014
공구 _Beauty(DC 027)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48×70cm_2014_ 부분

  공구의 또 다른 시리즈 약탈(plunder)(2013-2018)은 원형적 이미지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가변적인지를 보여준다. 이 사진들도 이전의 디지털 사진 작업과 마찬가지로 생경한 사물과 풍경을 그렸으며, 초현실주의적이다. 전작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 형상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집적된 박스들(Stack boxes)'의 이미지를 모아 만든 형상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가까이 다가가 보거나 자세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박스들은 인간 피부의 각질처럼 이미지의 형체를 둘러싸고 있지만, 언제든지 표면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티끌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공구 _Archetype 1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104×300cm_2013
공구 _Archetype 2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104×300cm_2013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크게 서구제국주의 문화 침탈로 인한 상실감을 다룬 작품과 서구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서구제국주의 문화 침탈로 서구화된 세계를 다룬 작품은 원형 시리즈에서처럼 역사적인 상징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표적으로 금강역사상이 좌우로 지키고 있는 석조 구조물 (tower)과 다음으로 고종황제가 입었던 제복의 이미지를 그린 근대(modern)를 들 수 있다, 황제의 제복은 옷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신체가 사라진 겉껍데기로 우리 근대가 가지는 공허감을 드러낸다. 또 다른 사진은 풍경처럼 보이는 데, 볏짚 블록을 비게 구조물로 둘러싼 아름다움(Beauty)에는 그리스어 활자가 쓰여 있다.

 

공구 _Tower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135×210cm_2013
공구 _abstract 2_ 알루미늄에 잉크젯 프린트 ,  우레탄 코팅 _50×100cm_2018

 석조 구조물 사이로 베니스의 해안 풍경처럼 보이는 서구화된 조선(The Western Chosen)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위기에 처한 우리 근대와 전통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언어는 매우 상징적이고 때로는 추상화되어 있다. 다음의 작품에는 더 많은 상징이 나타난다. 태양신 헬로오스(Helios)를 그린 희생(offering)과 바다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는 스타벅스의 싸이렌 여신을 그린 유혹(temptation), 하늘에 떠있는 마스크를 향한 숭배(worship)와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제자들과 자본주의 향락적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 예수를 그린 꿈에서 보는 듯한(phantasmagoric)은 융이 동양 종교의 내면에서 찾고자 했던 것, 외향적 서구 문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함께 읽을 수 있다.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공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허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다.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이미지들은 인간 신체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간 각질(종이박스)처럼 또 다른 유령과 같은 형상의 표피를 이룬다. 작가가 디지털 이미지 조각(박스 조각)을 하나씩 쌓아 올리거나 덧붙여서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한 이미지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미지 -작은 데이터의 조각이거나 망점으로 형성된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들-에 대응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허상에 쌓여 살게 되었을까?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파리의 번잡한 도로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마차를 피하려다가 진창에 빠져 흙탕물을 뒤집어쓴 상황을 '후광의 분실'이라는 시로 썼다. 보들레르가 말한 '후광의 분실'은 단순히 변화하는 도시 환경에 대한 불평이 아니다. 그의 투덜거림은 시인으로서의 주체 인식이다. 그는 도시의 변화와 기술 환경의 진보를 맞고 있는 세계에서 주체적인 감각하기와 경험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음을 인지했다. 그가 본 세계에서의 사물(혹은 도시)과 복제된 상품은 도시의 진열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사물의 고유한 영혼이 사라지고 없는 복제된 사물들, 그리고 인간은 의식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공구 _ 악마의 맷돌 展 _G 컨템포러리 _2023

공구는 이것이 세상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즉, 마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임을 말한다. 그는 "아우라는 사물이나 인간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벤야민이 표현한 대로 대량 복제를 통한 아우라 제거는 불가능하고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아우라의 원형을 추적해야 수평적, 비 숭배적 예술 관계가 형성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4) 고 말했다. 서양 기독교가 말하는 외부적이고 초월적 세계로부터의 구원은 지속해서 허상을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 이에 인간은 본질적인 세계와의 교감할 수 없어졌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서 사물의 아우라만을 상실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인간과 광물 등의 모든 상호적 관계가 위기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순진하게도 벤야민은 사진기술과 같은 복제의 문제로 이를 풀어냈지만 말이다.

 

 공구는 "아우라는 사물이나 인간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벤야민이 표현한 대로 대량 복제를 통한 아우라 제거는 불가능하고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아우라의 원형을 추적해야 수평적, () 숭배적 예술 관계가 형성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라 말한다. 그는 외부로부터 신적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특성이 미술에 있어서 아우라와 같은 숭배적 이론에 도달했으며, 파생 실제가 실제를 대체하는 시대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가 공구의 원형(Archetype) 시리즈(2013)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낯설고 생경한 감각의 출처를 생각해본다. 무언가 약탈당한 뒤, 희끗희끗하게 변한 아우라의 시대. 이제는 희소한 원형의 존재가 뜻밖에도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백기영

 

* 각주1) 고대 그리스어로(=헬라어, 헬라스어)'처음', '시초'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아르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탈레스는 이 세상의 기원을 ''이라고 말했다.2) 김충섭(공구), 윤준성, 칼 융의 원형이론과 아우라 몰락-동양문화 원형의 내향적 관점, 숭실대학교, 예술과 미디어, 2013. 21.3) 송태현, 카를 구스타프 융의 원형개념, 인문콘텐츠 제6, 선학사, 2006, 27.4) 김충섭, 윤준성,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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