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의 기본에서 눈으로 만져지는 그림까지

From the basics of molding to a painting touched with one's eyes

권성원/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2023_0916 2023_1012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권성원_An icon of Flatland 23-1_모두의 환타지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3

권성원 블로그_blog.naver.com/forflame

 

초대일시 / 2023_0916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23_1007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13 2

@arting.gallery.seoul

 

조형의 기본에서 눈으로 만져지는 그림까지 채색 효과를 배제하고 단색으로 대상의 형태와 명암을 잡는 그리기 기법을 드로잉 혹은 드로우라 표기한다. 그걸 제목으로 딴 2022년 작 Draw는 이번 개인전에 세 점 나왔다. 종래 작업 연보와 달라진 이번 개인전의 변화를 읽는 출발점으로 이 연작을 꼽기로 했다. 원통 원뿔 육면체 원형 사면체 같은 기본 도형은 권성원의 작업 연보에서 개인 도상에 가까운 브랜드로 굳었다. Draw는 공중에 부양한 갖가지 기본 도형들 사이로 붓질의 시원한 질감이 뱀처럼 휘감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붓질의 움직임이 만든 유기성과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성된 기본 도형의 각진 질감은 하나의 결합체가 되어 역동감과 안정감이 혼재된 미묘한 인상을 준다. 붓질과 기본도형의 상반된 질감의 결합은, 노을 진 하늘을 붓으로 그린 바탕에 각진 도형들의 뭉치를 중심에 올린 신작 An Icon of Flatland이나, 표현주의적 붓질 위에 도형과 붓질을 뒤섞은 D-Formation으로도 연장되어 나타난다.

 

권성원_An icon of Flatland 23-1_모두의 환타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3_부분
권성원_An icon of Flatland 23-2_모두의 환타지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3
권성원_Draw-1_종이에 아크릴채색_46×34cm_2022

권성원은 2017년 이래 줄곧 시각예술의 다양한 원형에서 화면에 쓰일 기본 요소와 구성을 참조해왔다. 조형의 기본은 권성원의 초지일관한 미적 태도다. 세모 네모 원처럼 기본 도형들의 입체 버전으로 화면을 채워왔으니 말이다. 채색도 혼색을 하지 않고 3원색이라는 기본색을 병치 혼합시켜 밝고 맑은 색상을 구사했는데, 이번 신작에선 색상의 화려함이 이전보다 더하다. 작년 그의 개인전 서문에서, 나는 스토리가 사라지고 기본 도형과 3원색으로 구성된 작업 계보를 두고 '이미지 뭉치'라고 표현한 바 있다.

 

권성원_D-formation 22-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60.5cm_2022
권성원_D-formation 22-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53cm_2022

채색과 구성처럼 미술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외에도, 출품작 Draw처럼 시각예술의 기본 기법을 제목으로 작명하는 것도 권성원에겐 흔하다. 연작 형성 Formation이나 '변형' 쯤으로 번역될 D-Formation연작이 그렇다. 형성이건 변형이건 이처럼 명시된 제목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권성원 그림은 튜브로 짜낸 수직선과 수평선 물감의 줄로 화면이 구성되며 완성작에 이르기에, 직물 짤 때 씨줄과 날줄의 엮임을 연상할 만큼 체계적으로 화면이 축조된다.

 

권성원_Flatland 23-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0cm_2023
권성원_Flatland 23-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0cm_2023_부분
권성원_Flatland 23-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0cm_2023

그림의 안에 담긴 의미보다 작품 표면이 주는 첫 인상에서 작품의 우열을 가를 때가 많은 게 미술 현장인데, 이 점에 착안해서 기획한 그룹전 미술의 피부(2022년 아팅)에 그가 초대된 것도 권성원 그림의 촉각성 때문이었다. 이번 개인전 눈으로 만져지는 그림(2023.0916~1012 아팅)에 나타난 변화로는 Draw처럼 도형의 기하학적 경직성과 붓질의 표현주의적 기법을 결합시킨 화면을 시작으로, 표면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튜브를 짜 올리는 물감의 층을 기존보다 더 두툼하게 올린 점을 들 수 있다. 하얀색 바탕 화면에 수직 수평선으로 채워진 두툼한 물감의 색줄 사이에 틈새가 있다. 그 틈새 때문에 그림을 정면으로 볼 때와 측면으로 볼 때 색의 질감이 다르게 지각되는 렌티큘러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권성원_전환의 징후_붉은 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240cm_2023
권성원_입면화된 풍경 1-우크라이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80.5cm_2022
권성원_입면화된 풍경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00cm_2022
권성원_2D roller coaster_종이에 아크릴채색_51×37cm_2022

기존 작업보다 두툼한 물감의 층위가 돋보이는 신작은 두꺼운 물감 덧칠로 화면의 입체감을 극대화했던 반 고흐를 차용한 전환의 징후_붉은 밤이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소용돌이치는 푸르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왼편에 불타오르는 검푸른 삼나무를 배치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권성원의 튜브를 통과하면서 전환의 징후_붉은 밤이란 제목을 달았다. 권성원의 도상인 기본 도형들로 화면의 밑면을 깔고 그 위로 튜브로 짜낸 붉은 물감의 소용돌이 밤하늘을 3면화로 길게 올렸다. 그리고 원작에선 한 그루인 삼나무를 양편에 각각 배치해 좌우대칭이라는 권성원의 또 다른 프레임에 끼웠다. 반이정

다 탔으면 오라잇

정명국/ JUNGMYOUNGGUK / 鄭銘國 / painting

2023_0622 2023_0702 / 월요일 휴관

정명국_나랑 경주할래_트래팔지에 흑연 프로타주_338×177cm_2020~3

정명국 인스타그램_@joung_myounggu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월요일 휴관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협찬 / 파버카스텔

기획 / 정명국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kumhomuseumofart

 

중후한 흑연 광택에서 떠오르는 감정들 3차원 실물을 2차원 화면 위에 허구적으로 옮기는 기교의 연대기를 미술의 역사라고 할 때, 실물의 표면 질감을 고스란히 본뜨는 특이한 재현 기교는 동서양 모두 오랜 기원을 지녔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탁본으로 불리는 기술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을 베껴내는 일종의 손쉬운 복사법에 가까웠고 역사는 중국 당(618~907)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에서 프로타주frottage로 알려진 기법은, 대상 가리지 않고 표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대상의 외형이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조형 방법으로, 현대미술사에서 우연적 효과에 비중을 뒀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중 하나로 설명된다. 하지만 프로타주는 동서고금의 모든 유년 세대에겐 부지불식간에 체득되는 시각 유희로 기억된다. 대상을 똑같이 옮길 재간이 없는 거의 모든 아이에게 그저 문지르는 것만으로 대상이 종이 위에 떠오르는 체험은 전에 없는 만족감을 안겼다. 포괄적으로 프로타주의 가능성은 대개 동전이나 나뭇잎처럼 작은 대상에 한정되었고, 그 유희는 유년기에 묶여있기 마련이다.

 

정명국_Gate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35×112cm_2023
정명국_시간의 흔적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 아크릴채색_200×275cm_2023

대상의 중량이 최소 1톤을 넘는 자동차를 본 뜬 정명국의 프로타주 작업은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초반에는 바퀴와 휠, A필러가 포함된 앞 도어처럼, 차의 부분을 네모진 종이에 흑연 프로타주로 옮기다가 점차 차의 측면으로 확장해 차의 외형을 볼 만한 규모로 발전했고, 이후 차의 앞면 측면 후면을 각각 나눠 차의 3차원을 2차원으로 부분적으로 나눠 출품하는데 이르렀다. 대상의 표면을 본뜨는 기법이라는 차원에 더해, 정명국이 선택한 자동차가 대개 연식이 오래되어 지금은 단종 되어 과거의 기억을 품은 차종인 점, 그리고 차주와 차 사이의 유대감을 표상하고, 나아가 용도를 상실한 차를 향한 차주의 추모의 감정을 담아온 점에선 데스마스크death mask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사망 직후 죽은 이의 얼굴 본을 뜬 데스마스크라는 안면상의 기원은 BC 2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눈을 감고 있는 나폴레옹의 데스마스크처럼 명사들의 데스마스크가 여럿 남아있는 이유다. 데스마스크의 역사가 기원전까지 이르는 것은 인류에게 소멸된 존재를 반영구적으로 현재 시공간에 붙들고픈 바람과 석별의 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석고나 밀랍으로 본을 뜨는 데스마스크의 무채색 단색조는, 흑연으로 본을 뜨는 자동차의 단색조 표면과 정서적인 질감에서 연결된다.

 

정명국_dream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83×263cm_2010~23
정명국_꽃길로 우리는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22×185cm_2022~3

데스마스크가 고대의 혹은 짧게 잡아도 전근대의 보존 욕망의 재현이라면, 동일한 욕망은 동시대에서 때로 다른 목적으로 출현한다. 정명국의 초기작 중 차체의 측면 전체를 뜬 거의 첫 작품에 해당할 78 Pony(2006)1974년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첫 독자생산 자동차 모델명 포니의 1978년 모델을 프로타주 한 작품이다. 유선형 차체가 일반적인 요즘 자동차 외형의 흐름과는 달리, 1974년 처음 생산되어 1990년 단종 될 때까지 직선형 디자인으로 각인된 자동차다. 여기서 고대 데스마스크의 보존 욕망과는 다른 동시대적 보존 욕망이 소환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6월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포니의 시간이란 제목의 전시를 열었는데 전시장에는 과거 포니의 일련 모델들과 함께 1974년 생산된 4도어 패스트백 세단 포니와 함께 1974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지만 생산으로 이어지진 못한 포니 쿠페 콘셉트카 복원 모델도 함께 전시했다. 현대차그룹에선 1973년 생산된 첫 국산 승용차인 기아 브리사도 내년 쯤 복원한다고 한다. 포니나 브리사는 1970~80년대 한국의 도심 풍경의 한 조각을 차지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포니가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에 등재된 이유일 것이다. 유행 지난 옛 모델의 복원을 추진하는 자동차 업계의 보존 욕망은 브랜드의 정통성을 강화할 목적인 점에선 데스마스크와 결이 다르지만, 소멸된 대상을 추억하는 살아남은 사람의 호감을 환기시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흑연의 반짝임으로 시선을 끄는 정명국의 단종된 차종의 초상화들도 오늘날 도로에선 종적을 감춘 대상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특정 세대의 정서와 교감을 만든다. 흑연을 오래 문질러 차체의 본을 뜬 정명국의 프로타주 작업은 중층적인 색채를 지녔다. 광택으로 반짝이는 검정색 혹은 짙은 회색은 차라리 빛바랜 은빛처럼, 세월의 켜를 간직한 반짝거림을 지녔다. 일반 평면 작업과 달리 흑연의 중층적인 색감과, 특정 관객에겐 정서의 덩어리일 재현 대상의 성격에 집중시키고자, 특수 조명도 이번 개인전에 설치된다.

 

정명국_깊은 얼굴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99×54cm_2019
정명국_바르게 살자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51×96cm_2019

소멸된 대상을 보존해온 정명국의 지난 전시 이력을 살피던 중, 2009년 개인전 전경 사진을 봤다. '문화일보 갤러리'라고 2000년대 중반께 주요 미술가들의 전시를 기획한 문화일보 산하의 갤러리였다. 그가 개인전을 연 2009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의 포트폴리오에 수록된 개인전 전경 사진은 원목마루로 바닥을 마감한, 내겐 너무 익숙한 십 수 년 전 어느 전시 공간을 환기시켰다. 독백처럼 이런 생각이 무심히 지나간다. '이 전시장도 단종된 자동차처럼 부지불식간에 소멸 했구나.' 생의 소멸에 대해 10~40대 나이에 진지하게 성찰할 계기란 어지간하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가족의 일원이나 주변 인물의 부고를 접하거나, 느리지만 선명하게 삶의 종점을 향하는 지인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비로소 생의 소멸, 나아가 자신의 소멸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는다. 소멸에 대한 환기가 반복되면, 지난 시절 비중을 뒀던 자기 성취, 명성, 금전 욕구의 무상함을 몸 전체로 깨닫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정명국_각진인생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 은박_90×176cm_2012~23

흔히 바니타스 정물화로 정의되는 16~17세기 사이 네덜란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그림은 화려한 꽃과 과실과 금은보화로 장식된 탁자 위를 다룬 정물화로, 그림에 묘사된 온갖 욕망의 사물과 영화로움이 지닌 뜻은 죽음 앞에 무상함이라고 미술사에서 전한다. 바니타스 정물화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삶의 무상함과 등식화해서 떠올리지만, 다채로운 채색으로 묘사된 화려한 정물화 앞에서 인생무상을 직감으로 떠올리기란 실제론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삶의 유한성과 욕망의 무상함은 세월의 켜가 쌓였을 때 비로소 내면에서 떠오르는 개념이이어서일 게다.

 

정명국_휘익 마이카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84×271cm_2022~3

흑연 고유의 중후한 광택으로 빛나는 검정색 혹은 은색 차량은 해당 차의 주인에겐 가족의 유대감과 연민의 정을 일으키는 데스마스크와 같은 것일 테고, 그 차를 동시대에 접했던 불특정 관객에겐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절을 환기하는 모티프와 같은 것일 테고, 또 다른 이에겐 생의 소멸을 다시 환기시키는 촉매와 같은 것일 테다. 반이정

 

 

 

'선과 도형으로 다다른 회화의 자의식'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2022_0309 ▶ 2022_0328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90cm_2021

 

초대일시 / 2022_0312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선과 도형으로 다다른 회화의 자의식 ● 광활한 곡물 평야 위에 찍힌 동그라미 삼각형 따위의 기본 도형이 중첩된 문양을 창공에서 촬영한 신비한 광경. 세간에서는 이를 미스터리 서클이라 부른다. 이 불가사의한 광경이 권성원의 작업실에서 찍은 작품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떠올랐다. 캔버스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사선으로 바라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이어진 물감의 선들이 흡사 곡물 평야의 질서 잡힌 배열과 닮았고, 그 위에 동그라미 삼각형 원뿔 네모 등 기본 도형들이 중첩된 패턴은 미스터리 서클을 떠올릴 만 했으며 그림의 첫 인상이 주는 미적 효과가 미스터리 서클과도 닮아서 그랬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서구의 곡물 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던 미스터리 서클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방대한 규모도 그랬지만, 눈을 피해서 그토록 정교하게 곡물 밭 위에 기하학적 패턴을 새기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판단 때문에, 발견 초기부터 줄곧 외계에서 온 UFO 착륙 흔적설이 가장 널리 믿어져온 가설이었다. 이 외에도 조류설, 회오리 바람설 등, 이 신비한 현상을 풀이하려고 뛰어든 가설은 더 많다. 그럼에도 과학적인 근거나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할 때, 눈을 피할 수 있는 야밤에 농지에 잠입한 일군의 사람들이 패턴을 제작하고 잠적했다는 게 현재 가장 유력한 진실이다. 그렇지만 명칭에서 보듯 불가사의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곡물 평야에 새겨진 이 대지예술은 불가사의한 영역인양 보호되는 측면이 있다.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90cm_2021_부분

2017년 이래 권성원의 화폭 위로 일관되게 고수되는 공식은 미술의 원형에서 출발해서 원형으로 끝맺으려는 미적 태도 같다. 거의 모든 화면에 출연하는 주인공은 세모 원 네모처럼 말 없는 기본 도형들이고, 형체를 지닌 대상조차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 높은 봉우리 부분만 발췌하거나, 미국 국회의사당처럼 돔형식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 상단부를 따오는 식으로, 동서고금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도상이 선택되거나 다이아몬드, 와인 잔, 세단, 소파처럼 중산층 이상의 삶을 표상하는 사물들을 안정감 있는 좌우대칭에 맞춰 수평수직을 일치시킨 도상들이다. 「Flatland」(2021)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타워크레인과 장난감 경비행기 같은 오브제가 작은 크기로 그림의 좌우 말단에 출현하긴 하지만 그것이 화면의 전체 균형을 흔들지는 않는다. 기본 도형들이 만드는 안정된 구도는 채색에도 반복된다. 색 배합은 3원색을 기본으로 색을 섞지 않고 망막에서 착시를 일으키는 병치 혼합을 택했다. 그 결과 혼합된 색이 만드는 탁한 느낌이 사라지고, 원색과 착시 현상으로 지각된 절제된 혼색이 오롯이 공존하는 화면이 만들어진다.

 

권성원_Flatland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0cm_2021
권성원_Flatland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1
권성원_Flatland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1

미스터리 서클을 지구인이 인위적으로 제작했으리라 사람들이 감히 염두에 둘 수 없었던 데에는 광활한 곡물 평지에 새긴 기계처럼 찍은 정교한 문양의 스케일 때문이었다. 권성원의 그림을 도판으로 확인하면 얼핏 캔버스 천이나 종이 위에 색실로 꿰맨 직물 공예로 오해하기 쉽다. 실물을 가까이서 확인하면 비로소 컨베이어 벨트 위에 그림을 얹고 기계로 형형색색을 순차적으로 찍어낸 듯 한 절제미가 그림에서 느껴지는데, 정작 이 작업은 작가가 콤프레샤와 튜브로 제작한 수공품이다. 콤프레샤와 연결된 에어건을 쥔 왼손과 물감 튜브를 쥔 오른손이 호흡을 맞춰 동기화된 결과물이란 얘기다. 캔버스 위에 일직선으로 균일하게 그어진 물감의 줄은 가까이서 보면 물감 튜브를 쥔 오른손의 미세한 힘 조절로 균일하게 꿈틀꿈틀 이어지면서 물감의 재질감을 살리고 있다. 균일한 물감 굵기와 길이를 한 줄 한 줄 쌓아 완성에 이르는 이 노동집약적인 제작법에서 흡사 중세시대 모자이크 제작 공법을 떠올리게도 된다.

 

권성원_Formation_brushwork_See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2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00cm_2021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00cm_2021

권성원의 2017년 이후의 작품 연보를 통틀어 칭하면 '이미지 뭉치/덩어리' 쯤 될 것 같다. 스토리가 사라지고 기본 도형과 고전 도상이 뒤엉킨 하나의 뭉치/덩어리를 무작위인 듯 계획적으로 화면에 던진 모양새라고나 할까. 작가는 기본 도형들로 구성한 연작 회화 「형성 Formation」의 밑그림을 위해, 무작위로 쌓아놓은 실제 입체 도형들을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참고자료로 썼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된 도형 가운데 원구 원추 원뿔이,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단위로 세잔이 예시했던 회화론의 영향 탓도 크겠지만, 권성원의 「형성 Formation」은 회화에 대한 자의식과 맞닿아 있다. 양손을 동시에 사용해서 회화를 제작하는 독창적이고 기계적인 화법이나, 그림에서 스토리를 밀어내고 표면의 실험에 집중한 점이나, 시각적인 재현보다 물감의 촉각적인 질감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 점 등, 2010년대 전후 미술판에서 대세로 떠오른 새로운 회화 또는 메타 회화의 한 유형으로 묶일 만하다.

 

권성원_Unstable balance 21- ca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60.5cm_2021
권성원_균형쌓기 Building Balance 2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권성원_균형쌓기 Building Balance 21-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미술품은 실물로 보는 것과 찍은 도판으로 보는 것 사이에 설명되기 힘든 질감의 격차가 있다. 그렇지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도판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익숙한 심사 문화로 자리 잡았고, 대형 입체 설치물보다 평면 회화작업 그 중에서도 그림 표면의 세부에 비중을 둔 회화는 심사 무대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이 담은 이야기의 밀도보다 그림 표면의 감각적인 실험에 집중하는 회화는 그림을 보는 관습도 바꿔놓았다. 그림은 정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근접 거리에서 발견되기 힘든 그림 표면의 차별성을 밀접 거리로 다가가 발견해야 하는 작업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밀접 거리에서 더 나아가 권성원의 그림으로부터 불가사의한 미스터리 서클의 신비감을 연상하려면, 정면 바라보기, 근접 바라보기, 혹은 밀접 바라보기처럼 그림의 표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론 충족되지 않는다. 캔버스의 측면에서 사선 구도로 바라볼 때 미스터리 서클이 돌연 떠오른다. 정면 관람 + 근접 관람 + 밀접 관람에 더해 측면/사선 각도의 총합으로 회화의 면모가 구성되는 회화 작업. 회화는 지금 변하고 있다. ■ 반이정

 

Vol.20220309a |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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