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도형으로 다다른 회화의 자의식'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2022_0309 ▶ 2022_0328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90cm_2021

 

초대일시 / 2022_0312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선과 도형으로 다다른 회화의 자의식 ● 광활한 곡물 평야 위에 찍힌 동그라미 삼각형 따위의 기본 도형이 중첩된 문양을 창공에서 촬영한 신비한 광경. 세간에서는 이를 미스터리 서클이라 부른다. 이 불가사의한 광경이 권성원의 작업실에서 찍은 작품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떠올랐다. 캔버스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사선으로 바라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이어진 물감의 선들이 흡사 곡물 평야의 질서 잡힌 배열과 닮았고, 그 위에 동그라미 삼각형 원뿔 네모 등 기본 도형들이 중첩된 패턴은 미스터리 서클을 떠올릴 만 했으며 그림의 첫 인상이 주는 미적 효과가 미스터리 서클과도 닮아서 그랬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서구의 곡물 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던 미스터리 서클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방대한 규모도 그랬지만, 눈을 피해서 그토록 정교하게 곡물 밭 위에 기하학적 패턴을 새기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판단 때문에, 발견 초기부터 줄곧 외계에서 온 UFO 착륙 흔적설이 가장 널리 믿어져온 가설이었다. 이 외에도 조류설, 회오리 바람설 등, 이 신비한 현상을 풀이하려고 뛰어든 가설은 더 많다. 그럼에도 과학적인 근거나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할 때, 눈을 피할 수 있는 야밤에 농지에 잠입한 일군의 사람들이 패턴을 제작하고 잠적했다는 게 현재 가장 유력한 진실이다. 그렇지만 명칭에서 보듯 불가사의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곡물 평야에 새겨진 이 대지예술은 불가사의한 영역인양 보호되는 측면이 있다.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190cm_2021_부분

2017년 이래 권성원의 화폭 위로 일관되게 고수되는 공식은 미술의 원형에서 출발해서 원형으로 끝맺으려는 미적 태도 같다. 거의 모든 화면에 출연하는 주인공은 세모 원 네모처럼 말 없는 기본 도형들이고, 형체를 지닌 대상조차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 높은 봉우리 부분만 발췌하거나, 미국 국회의사당처럼 돔형식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 상단부를 따오는 식으로, 동서고금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도상이 선택되거나 다이아몬드, 와인 잔, 세단, 소파처럼 중산층 이상의 삶을 표상하는 사물들을 안정감 있는 좌우대칭에 맞춰 수평수직을 일치시킨 도상들이다. 「Flatland」(2021)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타워크레인과 장난감 경비행기 같은 오브제가 작은 크기로 그림의 좌우 말단에 출현하긴 하지만 그것이 화면의 전체 균형을 흔들지는 않는다. 기본 도형들이 만드는 안정된 구도는 채색에도 반복된다. 색 배합은 3원색을 기본으로 색을 섞지 않고 망막에서 착시를 일으키는 병치 혼합을 택했다. 그 결과 혼합된 색이 만드는 탁한 느낌이 사라지고, 원색과 착시 현상으로 지각된 절제된 혼색이 오롯이 공존하는 화면이 만들어진다.

 

권성원_Flatland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0cm_2021
권성원_Flatland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1
권성원_Flatland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1

미스터리 서클을 지구인이 인위적으로 제작했으리라 사람들이 감히 염두에 둘 수 없었던 데에는 광활한 곡물 평지에 새긴 기계처럼 찍은 정교한 문양의 스케일 때문이었다. 권성원의 그림을 도판으로 확인하면 얼핏 캔버스 천이나 종이 위에 색실로 꿰맨 직물 공예로 오해하기 쉽다. 실물을 가까이서 확인하면 비로소 컨베이어 벨트 위에 그림을 얹고 기계로 형형색색을 순차적으로 찍어낸 듯 한 절제미가 그림에서 느껴지는데, 정작 이 작업은 작가가 콤프레샤와 튜브로 제작한 수공품이다. 콤프레샤와 연결된 에어건을 쥔 왼손과 물감 튜브를 쥔 오른손이 호흡을 맞춰 동기화된 결과물이란 얘기다. 캔버스 위에 일직선으로 균일하게 그어진 물감의 줄은 가까이서 보면 물감 튜브를 쥔 오른손의 미세한 힘 조절로 균일하게 꿈틀꿈틀 이어지면서 물감의 재질감을 살리고 있다. 균일한 물감 굵기와 길이를 한 줄 한 줄 쌓아 완성에 이르는 이 노동집약적인 제작법에서 흡사 중세시대 모자이크 제작 공법을 떠올리게도 된다.

 

권성원_Formation_brushwork_See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62cm_2022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00cm_2021
권성원_Formation_Top view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00cm_2021

권성원의 2017년 이후의 작품 연보를 통틀어 칭하면 '이미지 뭉치/덩어리' 쯤 될 것 같다. 스토리가 사라지고 기본 도형과 고전 도상이 뒤엉킨 하나의 뭉치/덩어리를 무작위인 듯 계획적으로 화면에 던진 모양새라고나 할까. 작가는 기본 도형들로 구성한 연작 회화 「형성 Formation」의 밑그림을 위해, 무작위로 쌓아놓은 실제 입체 도형들을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참고자료로 썼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된 도형 가운데 원구 원추 원뿔이,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단위로 세잔이 예시했던 회화론의 영향 탓도 크겠지만, 권성원의 「형성 Formation」은 회화에 대한 자의식과 맞닿아 있다. 양손을 동시에 사용해서 회화를 제작하는 독창적이고 기계적인 화법이나, 그림에서 스토리를 밀어내고 표면의 실험에 집중한 점이나, 시각적인 재현보다 물감의 촉각적인 질감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 점 등, 2010년대 전후 미술판에서 대세로 떠오른 새로운 회화 또는 메타 회화의 한 유형으로 묶일 만하다.

 

권성원_Unstable balance 21- ca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60.5cm_2021
권성원_균형쌓기 Building Balance 2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권성원_균형쌓기 Building Balance 21-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21

미술품은 실물로 보는 것과 찍은 도판으로 보는 것 사이에 설명되기 힘든 질감의 격차가 있다. 그렇지만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도판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익숙한 심사 문화로 자리 잡았고, 대형 입체 설치물보다 평면 회화작업 그 중에서도 그림 표면의 세부에 비중을 둔 회화는 심사 무대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이 담은 이야기의 밀도보다 그림 표면의 감각적인 실험에 집중하는 회화는 그림을 보는 관습도 바꿔놓았다. 그림은 정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근접 거리에서 발견되기 힘든 그림 표면의 차별성을 밀접 거리로 다가가 발견해야 하는 작업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밀접 거리에서 더 나아가 권성원의 그림으로부터 불가사의한 미스터리 서클의 신비감을 연상하려면, 정면 바라보기, 근접 바라보기, 혹은 밀접 바라보기처럼 그림의 표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론 충족되지 않는다. 캔버스의 측면에서 사선 구도로 바라볼 때 미스터리 서클이 돌연 떠오른다. 정면 관람 + 근접 관람 + 밀접 관람에 더해 측면/사선 각도의 총합으로 회화의 면모가 구성되는 회화 작업. 회화는 지금 변하고 있다. ■ 반이정

 

Vol.20220309a | 권성원展 / KWONSUNGWON / 權聖元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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