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봉현의 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

 

 

그래픽=송재우 기자

                                   ▲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길은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외국의, 특히 유럽 쪽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이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참 많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거리들이 많았다. 나는 파리나 런던, 뉴욕 같은 너무도 크고 유명한 도시들에는 그리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보다는 약간 작지만 옛것들이 더 많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큰 도시보다 조금은 작은, 그리고 개발이 좀 느리게 진행된 유럽의 중소도시나 시골 풍경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체코의 프라하 카를교 부근의 카페골목, 그리스 미코노 섬의 미로 같은 뒷골목들, 독일의 브레멘이나 로덴버그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옛 거리, 루마니아의 히기소하라나 브라쇼프 같은 지방도시의 골목들…. 하나씩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곳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그런 곳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것들을 품고 있어서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런 멋진 곳들을 찾기 힘들까 하는 생각들을 막연히 해보곤 했었다. 서울 대학가와 강남 등의 유명 거리를 가 보면 너무나 소란스럽고 북적거려 은근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낭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가슴에 스미는 그런 아련한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가보게 된 삼청동 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독특한 거리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 건물과 예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장면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골목 안팎과 언덕배기에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섞인 다양한 분위기의 가게와 카페, 음식점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작품사진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언제부터 이런 보물 같은 거리가 생겨났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가게 안의 물건 하나하나, 음식점의 메뉴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정갈해 보여 주인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느껴진다. 아, 우리에게는 없는 듯해 늘 아쉬웠던 그런 거리가 이미 여기 있었구나!

한동안 못 와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곳은 벌써 아주 멋진 거리가 되어 있었고 계속 더 아름답게 진화 중인 것을 여기저기서 감지할 수 있다. 최첨단 디지털이 관통하는 서울 안에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 도심 한가운데서도 청량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삼청동 길인 것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시절, 삼청동은 그쪽 버스 종점 오지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큰 맘 먹고 가서 계곡에 들어가 발 담그고 놀다 왔던 기억이 있는 정도의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북촌 한옥마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삼청동과 직접 연결시켜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삼청동이 이 북촌에 속하고 그 끝자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행정동으로서 삼청동은 삼청동,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등 여러 동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삼청동 길은 작은 의미의 삼청동을 말한다. 삼청동의 지명이 도교의 삼청전이 이곳에 소재한 데 유래하지만 산이 맑고 물이 맑아서 사람들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하늘도 맑고 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 숲도 맑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도 모두 맑아 보이고, 그 속에 함께 섞여 걷고 있는 나 또한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 삼청동 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쑥 지나가면 한 시간 정도면 걸어 지나갈 거리지만 구석구석 보물처럼 감춰진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차나 커피 맛도 보고, 배고프면 양식이건 한식이건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아 들어가 즐기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또 도시생활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삼청공원의 맑은 숲이 여기에 있다. 북악산에 이어진 산 속의 공원인 이곳은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 솔향이 지친 영혼에 좋은 휴식을 줄 듯 싶다.

이 길은 주변으로 인사동 쪽에서 정독도서관 쪽, 사간동·소격동 쪽 인근에 갤러리가 밀집돼 있어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광화문, 경복궁이 바로 인근이니 친구들 또는 연인들이 한가한 시간에 고궁 산책이나 예술품 감상을 하고 이곳을 찾아들어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한다. 쇼핑, 외식, 레저를 함께 즐기며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도시 안 복합 문화공간, 휴식공간으로 일품이다. 삼청동 길의 메인 도로변은 말할 것도 없고 뒷골목 여기저기 숨어있는 옷가게, 카페, 식당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외모와 개성 있는 상품, 메뉴로 손님을 맞고 있어 어느 몇 군데를 가보고 삼청동을 다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삼청동은 어느 한 곳을 정하고 가보는 것보다는 삼청동, 삼청동 길 자체를 느끼며 여기저기 숨겨진, 마음에 드는 곳들을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더 즐거울 듯싶다.

삼청동 길은 처음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성됐다. 하지만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면서 비즈니스화 되기 시작했다. 고도의 상업자본이 이곳을 잠식해 들어오면서 원래 추억이 깃들었던 이곳만의 독특한 모습들이 처음과 달리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나온다.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외형만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리면 이곳도 도심의 다른 삭막한 공간과 크게 다를 게 없어져 이곳만이 갖는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삼청동 길이 멋진 추억과 낭만의 거리로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려면 이곳을 지키는 문화, 예술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여길 뜨고 싶어하지 않게 배려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젠 이런 멋진 거리가 있어, 문득 생각나면 이곳을 찾아 거닐고 한가로이 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방문하면 맨 처음 데려가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 되었다. 옛것과 초현대식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이 거리가 오래 간직되기를 기원해본다.

[스크랩/ 문화일보] 박봉현 : 소설 ‘카투사’ 저자

작가 박봉현의 삼청동

 

[스크랩] 문화일보

 

 

 그래픽=송재우 기자 jaewoo@munhwa.com

 


▲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길은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외국의, 특히 유럽 쪽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이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참 많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거리들이 많았다. 나는 파리나 런던, 뉴욕 같은 너무도 크고 유명한 도시들에는 그리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보다는 약간 작지만 옛것들이 더 많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큰 도시보다 조금은 작은, 그리고 개발이 좀 느리게 진행된 유럽의 중소도시나 시골 풍경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체코의 프라하 카를교 부근의 카페골목, 그리스 미코노 섬의 미로 같은 뒷골목들, 독일의 브레멘이나 로덴버그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옛 거리, 루마니아의 히기소하라나 브라쇼프 같은 지방도시의 골목들…. 하나씩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곳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그런 곳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것들을 품고 있어서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런 멋진 곳들을 찾기 힘들까 하는 생각들을 막연히 해보곤 했었다. 서울 대학가와 강남 등의 유명 거리를 가 보면 너무나 소란스럽고 북적거려 은근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낭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가슴에 스미는 그런 아련한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가보게 된 삼청동 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독특한 거리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 건물과 예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장면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골목 안팎과 언덕배기에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섞인 다양한 분위기의 가게와 카페, 음식점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작품사진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언제부터 이런 보물 같은 거리가 생겨났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가게 안의 물건 하나하나, 음식점의 메뉴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정갈해 보여 주인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느껴진다. 아, 우리에게는 없는 듯해 늘 아쉬웠던 그런 거리가 이미 여기 있었구나!

한동안 못 와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곳은 벌써 아주 멋진 거리가 되어 있었고 계속 더 아름답게 진화 중인 것을 여기저기서 감지할 수 있다. 최첨단 디지털이 관통하는 서울 안에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 도심 한가운데서도 청량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삼청동 길인 것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시절, 삼청동은 그쪽 버스 종점 오지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큰 맘 먹고 가서 계곡에 들어가 발 담그고 놀다 왔던 기억이 있는 정도의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북촌 한옥마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삼청동과 직접 연결시켜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삼청동이 이 북촌에 속하고 그 끝자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행정동으로서 삼청동은 삼청동,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등 여러 동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삼청동 길은 작은 의미의 삼청동을 말한다. 삼청동의 지명이 도교의 삼청전이 이곳에 소재한 데 유래하지만 산이 맑고 물이 맑아서 사람들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하늘도 맑고 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 숲도 맑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도 모두 맑아 보이고, 그 속에 함께 섞여 걷고 있는 나 또한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 삼청동 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쑥 지나가면 한 시간 정도면 걸어 지나갈 거리지만 구석구석 보물처럼 감춰진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차나 커피 맛도 보고, 배고프면 양식이건 한식이건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아 들어가 즐기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또 도시생활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삼청공원의 맑은 숲이 여기에 있다. 북악산에 이어진 산 속의 공원인 이곳은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 솔향이 지친 영혼에 좋은 휴식을 줄 듯 싶다.

이 길은 주변으로 인사동 쪽에서 정독도서관 쪽, 사간동·소격동 쪽 인근에 갤러리가 밀집돼 있어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광화문, 경복궁이 바로 인근이니 친구들 또는 연인들이 한가한 시간에 고궁 산책이나 예술품 감상을 하고 이곳을 찾아들어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한다. 쇼핑, 외식, 레저를 함께 즐기며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도시 안 복합 문화공간, 휴식공간으로 일품이다. 삼청동 길의 메인 도로변은 말할 것도 없고 뒷골목 여기저기 숨어있는 옷가게, 카페, 식당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외모와 개성 있는 상품, 메뉴로 손님을 맞고 있어 어느 몇 군데를 가보고 삼청동을 다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삼청동은 어느 한 곳을 정하고 가보는 것보다는 삼청동, 삼청동 길 자체를 느끼며 여기저기 숨겨진, 마음에 드는 곳들을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더 즐거울 듯싶다.

삼청동 길은 처음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성됐다. 하지만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면서 비즈니스화 되기 시작했다. 고도의 상업자본이 이곳을 잠식해 들어오면서 원래 추억이 깃들었던 이곳만의 독특한 모습들이 처음과 달리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나온다.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외형만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리면 이곳도 도심의 다른 삭막한 공간과 크게 다를 게 없어져 이곳만이 갖는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삼청동 길이 멋진 추억과 낭만의 거리로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려면 이곳을 지키는 문화, 예술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여길 뜨고 싶어하지 않게 배려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젠 이런 멋진 거리가 있어, 문득 생각나면 이곳을 찾아 거닐고 한가로이 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방문하면 맨 처음 데려가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 되었다. 옛것과 초현대식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이 거리가 오래 간직되기를 기원해본다.

소설 ‘카투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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