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임재천씨 전시에서 작당한 일이 하나 있다.
인천의 김보섭씨가 민어회가 맛있는 철이라며, 한 번 놀러오라 했다.
모두들 가겠다고 했으나, 술자리에서 오간 말이라 새겨듣지는 않았다.
그런데, 4일 오후5시, 인천역에서 만나자는 이규상씨의 메시지가 떴다.

그 날은 이명동선생 댁에서 시간을 보내 허급지급 달려갔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출 수 있어 한 숨 놓았는데,
‘차이나타운’방향으로 나가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김보섭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 엄상빈,

김 헌, 남 준, 이영욱씨 등 일곱 명이 나와 있었다.

다들 간편한 차림이었으나, 김보섭씨와 남 준씨는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무더운 날씨라 땀이 줄줄 흘렀으나, 역전의 용사다웠다.
김보섭씨의 안내로 변모하는 차이나타운을 거쳐,
김보섭씨 ‘바다사진관’촬영 현장이었던 만석부두로 옮겨갔다. 

찍을 때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 친숙하게 닥아 왔다.

윗도리를 벗은 채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 그 어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 인간과 연결된 구체적인 장소성이 주는 의미가 현장감을 더했다.

뜻밖에도 김보섭씨의 ‘바다사진관’사진을 인근에서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그 동네에 ‘우리미술관’이란 조그만 갤러리가 있었는데, 마침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실, 사진전은 사람들이 많은 서울의 큰 전시장에서 하는 것 보다,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 동네전이 사진을 찍은 작가로서는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나도 ‘두메산골사람’전시를 그 사람들이 사는 분교를 돌며 한 적이 있기에, 
김보섭씨의 자부심이 점쳐졌다.

여태껏 인천을 여러 차례 오갔지만, 만석부두 후미진 곳을 골고루 돌아 본 적도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현장을 기록해 온 김보섭씨의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장답사에서 재 인식된 것은 김보섭씨의 인천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었다.
긴 세월 인천의 역사적 현장들을 기록하며, 그만큼 껴안아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이런 사람에 감사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돌아다니다, 모두들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보섭씨는 식당 집 할머니가 인간문화재급이라며 칭찬이 대단했다.
그 큰 민어를 여유롭게 다루는 걸 보니, 일단 보통 솜씨는 아니었다.
드디어 민어가 상에 올랐는데, 살점을 듬성듬성 잘라 푸짐했다.
입에 들어가니 살살 녹는데, 오죽 맛있었으면, 엄상빈씨는 집사람 걱정을 해댔다.
집에 남겨 둔 마나님 생각에 차마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같이 오기로 했지만, 허리를 다쳐 못 왔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끓인 서더리탕 안주에 소주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으나, 술을 자제해야 했다.
술 취해 오버해 대면, 아내가 난처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누라 눈치도 봐가며, 알아서 기야 살아남는다.
갈 길도 먼데, 부루퉁해 있으면 입장 곤란하거던...

어쨌든, ‘바다사진관’ 답사도 답사지만, 맛있게 먹고, 잘 놀았다‘

사진, 글 / 조문호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네 번째 작가인 인천 김보섭 론이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지난 22일 오후630분에 시작된 개막식에는 작가 김보섭씨 내외를 비롯하여 김남진 브레송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사진가 한정식, 전민조, 구자호, 엄상빈, 김문호, 강제욱, 고정남, 이영욱, 남 준, 마동욱, 정영신,

곽명우, 박영환, 이 원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함께했다.

 

, 많은 사진가들 중에서 김보섭씨에게 가장 동료의식을 많이 느낀다.

왜냐하면, 사진을 시작한 연대가 서로 같은 데다, 둘 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으면서 다큐멘터리사진을 한다는 것,

그리고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동아미술제연작 대상으로 각 각 데뷔했다는 점들인데,

단지 다른 게 있다면 그는 돈이 있고, 나는 개털인데다, 그는 사회 모범생인데, 난 낙제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뭔가를 기록하다 죽을, 쟁이 근성도 똑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보섭씨가 가진 최고 장점은 인간성이다.

쉽게 말하면, 나대지 않는다.

그만큼 좋은 작업을 많이 해, 사진계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재력도 가졌지만,

거들대지 않고 사람이 너무 겸손하다. 또한 얼마나 선배들을 잘 모시며 인정스러운지, 때로는 존경심마저 인다.

 

그동안 보여 준 작업으로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기록한 ‘청관이래 개인전과 출판을 열 차례 넘게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000년의 한의사 강영재’, 2006년의 바다 사진관’, 2008년의 수복호 사람들

신포동 다복집’, 2010년의 시간의 흔적’, 2013년의 양키시장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정리해 내놓은 이번 전시작들은 이미 사진집이나 전시로 잘 알려진 사진인데다,

이번에 쓴 이광수교수의 작가론 또한 얼마나 정확하게 짚어 잘 썼는지, 다시 말하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혹시 김보섭씨의 작품을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이광수교수의 사진비평 기인같은 한의사의 다락방엔 무엇이 있을까

링크해 둘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광수교수의 비평에서, 한 단락만 옮겨두겠다.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서 사라져 가는 공간의 모습은 가족이나 동네 혹은 일터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문화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각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진 미학적으로 볼 때 매우 뛰어난 물성(物性)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자료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그의 인물과 정물 이미지는 매우 잘 다듬어진 시어(詩語) 하나, 하나와 같다.

둘이 섞이면 시어로 기록한 민족지가 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그 좋은 사진들을 그렇게 빡빡하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좁은 전시장에 70여점이나 걸어 놓으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하나의 사진에 집중이 안 돼,

돌아서니 뭘 보았는지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표작 너덧 점씩만 보여 주거나,

아니면 작은 사이즈의 사진을 많이 만들어, 중요 요점은 크게 보여주고,

설명적인 사진들을 한 꺼번에 보여주는 효과적인 배열이 필요했다.

 

, 말은 쉽다.

찍는 것도 찍는 것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보여주는 것이다.

또 남의 일은 잘 보이지만, 자신의 일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너무 많다.

남의 잔치 집에서 축하하는 좋은 소리만 하지, 왼 시비냐고 투덜댈지 모르지만,

우리가 남이가? 둘도 없는 동료니 감히 드리는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사진으로 자리 매김하는 이런 전시가 만들어짐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조문호

 

김보섭사진과 사진비평가인 이광수님의 글을 보고 싶은분은 링크된 주소로 들어가 보시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202671



한의사 강영재, 2000년


'바다 사진관' 2008년



'수복호 사람들' 2008년



'청관' 1990년



'시간의 흔적'2010년


'양키시장' 2013년


아래사진은 전시 개막식과 뒤풀이에서 만난 분들의 기록입니다.

좌로부터 사진가 전민조, 주인공 김보섭, '눈빛'의 이규상, 사진가 엄상빈씨



























































좌로부터 이 원씨와 조문호인데, 사진은 정영신씨가 찍음.




참 점잖게 생겼네! 브레송 관장 김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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