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마가 주관한 제1회 FNK PHOTOGRAPHY AWARD 다큐부문 수상자전인

박찬호의 ‘神堂’이 오는 1월17일까지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박찬호는 10년 동안 인간의 죽음에 집착하여 그 현장을 찾아다닌 사진가다.

이번에 보여주는 ‘신당’은 이년 전에 발표한 ‘귀歸’에 이은 후속작업이다.

오래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비롯되었다는 ‘귀歸’와

이번에 보여준 ‘신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후세계에 빠져 들게 한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저승이란 신화의 세상이 있는 걸까?

 

지리산 성모(마고성상), 모든 무당의 어머니

 

신을 모신 신당이란 무엇인가?

즉 산자와 죽은 자의 한을 풀어 주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켜 주며,

신과 인간이 만나 어우러져 한 판 굿을 엮어내는 곳으로,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 신당이다.

그 신당을 지키는 ‘신관’들이 심방, 당골, 무당의 이름으로 굿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데,

무속은 신위에 신이 없고 신아래 신이 없다.

 

충남 황도붕기도당, 고 김금화 만신

 

사진가 박찬호의 귀신 작업은 아무나 접근하기 어렵다.

타계한 김수남씨 외에 무속사진을 찍는 여류작가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수남씨야 술 때문에 떠났겠지만, 그 여인은 원인 모를 죽음이었다.

그 당시 귀신 씌여 죽었다는 말이 떠돌 정도라 접근하는 사진가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박찬호씨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진도뽕할머니사당 악사 김오현

 

2년 전 ‘류가헌’에서 열리 ‘歸’사진전에서 작가를 만났는데,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귀신과 동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끼가 없다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도 무당의 끼, 아니 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강원 다목리여신당 만신 이해경

 

십 여 년 동안 종가집 제의는 물론 마을제, 당제, 다비식 등 귀신 나오는 곳은 빠지지 않고 찾아 다녔다.

이번 ‘신당’전에는 서울 남산국사당터를 비롯하여 보광동 ’흥무대왕 김유신사당‘, ’한강밤섬부군당‘, 한남동 ‘큰한강부군당, 봉화산 ’봉화산도당, 용문동 ‘남이장군사당’, 인왕산 ‘인왕산선바위’, 여의도 ‘방학좆이부군당’, 광명 ’ 구름산당숲‘, 안산 ’잿머리성황당‘, 군자봉 ‘시흥군자봉성황제’ 수원 ‘벌말도당굿’, 강화도 ‘외포리곶창굿’, 수원 ‘거북신당’, 강원도 화천 ‘화천다목리산신당‘, ‘양양 서문리 양지말 성황사’, ‘대관령국사성황당’ 부산 아미동 ‘아미골까치산당산’, 구포 ‘대리당산’, 해운대 ‘죽성리성황당’, 서대신동 ’봉래산산제당‘, 영도 ‘조도당산’. 초량 ‘초량당산’, 기장 ‘죽성리성황당’, 통영 ‘마을굿’, ‘설운장군사당’, ‘남해안별신굿’ 경북 영양 ‘일월산 황씨부인당’, 충남 태안 ’황도붕기도당, 내포지역의 ‘내포앉은굿’, 서산 ‘창리영신제’, 부여 ‘은산별신제’, 서산 ‘율목리서낭당’, 부안 ‘위도원당’ 부안 ‘수성당’, 진도 ‘뽕할머니사당’, 군산 ‘호남넋건지기굿’, 고흥혼맞이굿, ’신안 씻김굿‘, ‘황해도대동굿’, 제주 김녕 ‘성세기 본향당', 한림읍 ‘비양도 본향당, 조천읍 ‘와흘본향당’, ‘와산리불도당’, 성산 ‘신풍리본향당’, ‘신천리본향당‘, ‘수산리본향당’ 구좌읍 ‘동복리본향당‘, ’송당본향당,

표선면 ‘구렁팟당’, ‘ 당케세명주할망당’ 등 제주를 비롯한 전국방방곡곡 신당을 쫓아다닌 것이다.

 

귀신이 씌여도 단단히 씌인 것이다.

사진에 드러난 신당의 음습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초상에서 느껴지는 무당의 가 압도했다.

 

제주 동복리 본향당 심방 강대원

 

혼신일체가 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전시에서 보여주었듯이, 무속사진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작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둘러싼 제의를 촬영하다’라는 제목으로

박찬호 전시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런 유명세는 이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충남 은산별신당 만신 이일구

 

그의 작업이 더욱 중요한 것은 무속인 개인의 초상이기 전에 시대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기록해 두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찬호씨의 작업노트 말미를 보니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는 굿 현장에서 신을 부르는 악기의 장단과 박자에 따라 몸이 흔들림을 느낀다. 눈을 감는다.

접신의 순간과 정신 세계로의 몰입에 몸과 마음을 그대로 의탁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셔터를 누른다. 그것이 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터무니 없이 좁은 의식의 틀로는 그들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신당 작업을 했다.”

 

그런데,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난, 기독교는 물론 천주교와 불교에서 세례명과 법명을 받을 정도로

여러 종교에 빠졌으나, 지금은 무신론자다.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법문이나 성경에 기반한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속은 신에 앞서 우리민족의 정신이라고 생각 한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에서부터 바다에는 용왕, 산에는 산신,

임신과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에서부터 조상신 등 많은 신들이

믿음의 대상이 되어 민초들의 삶에 위안이 되어 준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수많은 신화의 장소를 없애버렸다.

일본 놈 물 먹은 박정희 까지 ‘미신타파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국 각지에 있는 서낭당이나 신당을 없애버린 것이다.

박찬호가 찍은 사진 속의 공간들은 마지막 살아남은 우리나라 신화의 공간이며,

신과 소통하는 신관들 모습이다.

 

서울남산 국사당터 만신 최신영

 

사진집을 보면 대개 서낭당이나 신당에서 찍었는데,

유독 서울야경을 배경으로 남산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궁금증을 작가가 풀어주었는데, 서울을 수호하는 ‘남산 국사당터’가 본래 남산 꼭대기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나라의 안녕을 비는 수호신당으로 국사당을 남산에 세웠으나

일제에 의해 지금의 인왕산 기슭 선바위로 옮겼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성역인 남산국사당을 내 몰고 남산을 일본인의 성역으로 만들겠다는 속내가 있었다고 한다.

만신 최선영씨가 그곳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며, ‘남산국사당터’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민속학자 하효길씨는 “현대미술의 유형적인 문법으로 기록한

그의 사진은 오히려 무형적 조형성을 더 지니고 있다.

사진에서 건물과 공간속의 인물은 그 뒤쪽의 내용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신의 세계로 시대의 삶으로 현세와 내세를 느끼게 하는 종교적 신비랄까.

박찬호는 우리 굿 속에서 부단히 삶과 죽음의 신비를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리고 그는 사진 속에 이 신비를 담으려고 한다.”고 서문에 적었다.

 

그런데, ‘신당’사진집(가격 5만원) 표지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사진에서 느끼는 신성함과 더불어 모든 재앙을 물리치는 복 같은 듬직한 기분이었다.

도서출판 나미브에서 만들었는데, 한정판이라 책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더라.

 

오는 16일 토요일 오후2시, 전시장에서 "신당" 토크쇼가 있다고 한다.

작가를 비롯하여 민속학자 조성제씨가 패널로 나와 무속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단다.

코로나19로 많은 분을 모실 수가 없다니, 관심있는 분은 참가여부를 문의해 보기 바란다.

 

(문의 : 박찬호 010 4127 0041)

 

사진, 글 / 조문호

 




‘이지녀 맞이’전이 지난 29일 ‘창성동 실험실’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황해도 굿을 하는 이지녀 만신은 김금화선생 신딸로 예능에 다재다능하다.
옛날에는 무당도 기생처럼 소리와 춤은 물론 무속화나 지화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재능이 있어야 했다.

요즘은 무속화나 지화 등 대부분을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이지녀 만신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한다.
본래부터 무당은 끼를 타고 나야 할 수 있으나,
그 끼에 부단한 노력이 합쳐져 이지녀 만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서도소리를 배우기 위해 서도소리 이수자인 오복녀 선생을 따라 다녔고,
무신도를 그리기 위해 단청장 만봉스님과 판화가 김봉준 화백으로 부터 지도를 받았다.
굿문화연구소나 흙손 공방, 우리 옷 만드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등
모든 기능을 온 몸으로 습득했다.






다양한 재주야 진즉 알았으나, 무신도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무신도가 신당을 장식하는 수준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아닌가?






요즘 전시장에 잘 다니지 않지만, ‘이지녀 맞이’ 전시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지녀씨는 인사동 사람들 모임이었던 ‘창예헌’ 맴버이기도 했다.






29일 일찍부터 서둔 것은 꼭 보아야 할 영화 ‘김군’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관람 시간에 차질이 생겨 좀 늦었는데, 초행길이라 한 참을 헤매었다.
시골영감이 서울 김서방 집 찾아 가는 격이었다.
자하문로를 돌고 돌다 찾게 된 것은 조그만 한옥 전시장 앞에 세워놓은 무당집 같은 오방색 깃발 때문이다.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었다.
이지녀 만신과 박수 등 굿판을 벌일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박현수, 홍석화, 임계재, 김신명숙, 권오중, 김용선, 이한구씨 외에 
모르는 분이 더 많았는데, 안쪽에 정영신 동지의 모습도 보였다.
전시장에 올 줄 알았더라면 바쁜 걸음 칠 필요 없이, 시간 날 때 천천히 와도 될 텐데...






비집고 다니며 작품부터 보았는데, 무신도를 비롯하여 흙으로 빚은 신전, 지화, 장신구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마치 신당에 들어선 느낌인데, 이지녀 만신의 신 끼가 돋보이는 자리였다.





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무신도’ 또는 ‘맞이’라는 그림에는
일월성신, 옥황상제, 삼신, 칠성, 제석, 산신, 서낭, 장군, 동자, 대사 등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무신도는 본래 민화처럼 과장되거나 익살적인 표현이 있어 흥미롭다.






이지녀 만신의 무신도는 무시무시한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 난 모던한 창작이라 친근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많은 만신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자신이 무당의 길을 걸으며 느꼈던 소중한 경험이 더해져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런데, 전시준비에 힘들었던지 이지녀씨 표정이 편치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팠단다.

그녀의 표현으로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는 속담처럼 간신히 추슬러 나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이지녀씨의 인기도였다.
펜클럽이 생길 정도인데, ‘이지녀 맞이’도 펜클럽에서 주선했다는 것이다.






축사를 해주신 채현국선생께서는 돌아가신 자당께서도 신 끼가 있어

그걸 억누르고 사시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는 옛날 이야기도 하셨다.

당시야 양반가문에서 있을 수 없는 천한 직업으로 여겼으니까...





난, 무속을 종교이기 전에 종합예술로 본다.

춤, 소리, 그림, 조각 등 모든 예술이 어우러진 자리인데,

진득한 삶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니 이보다 더한 예술이 어디 있겠나?






이지녀 만신은 30여 년 동안 황해도 굿을 해왔으나, 서도 소리꾼으로 더 유명하다.
황해도 굿은 두 차례 밖에 보지 못했지만,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서도소리는 여러 차례 들었다.
몇 년 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서도소리 창극에 출연했는데,
오랫동안 다져진 이지녀 만신의 소리가 압권이었다.





잔잔한 농음의 애잔한 소리는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는데,
그 때 이지녀씨 대감놀이가 창극의 하이라이트 였다.
이 날도 인사와 축사가 있은 후 맞이굿과 대감놀이를 했는데,
신명난 굿판에 복이 슬슬 들어오는 것 같더라.






그런데, 좀 섭섭하더라.
복을 축원하며 시루떡을 잘라 주는데, 다른 사람은 입에 넣어주면서 나는 손에 집어주더라.
이거 사람 차별하는 거 아닌가? 그냥 웃으려고 해 본 소리다.


무신도의 진수도 맛보고 복까지 받았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닌가.






이 전시는 자하문로 12길 11-5 ‘창성동 실험실’갤러리(010-5413-6552)에서
6월4일까지 이어지니, 놓치지 마시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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