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물러가니, 연이어 추위가 찾아왔다.

쪽방은 더위보다 추위가 지내기 쉽지만, 노숙인의 겨울은 죽음의 골짜기다.

노숙인을 위해 안 입는 내복을 얻으러 쪽방 몇 곳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단벌이라 여분이 없었고, 정씨는 일찍부터 잠들어 있었다.

박희봉씨 방문을 열어보니, 그는 짐 속에 파묻혀 웃고 있었다.

 

방세가 20만원이라 다른 곳보다 싸기는 하지만,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다.

창문도 없는데다, 사방이 짐으로 둘러쌓여 들어가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밖에 걸터앉으려니, 방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내 저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좁은 통로라, 길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좁은 공간에 끼여 앉아 커피한 잔 얻어 마시며, 내복 이야기를 꺼냈다.

안 입는 내복은 있으나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다 들어내야 해, 이사가기 전에는 손도 대지 못한단다,

많은 짐을 끌어 내리면 다시 쌓아 올릴 수가 없다기에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공간이 협소했으면, 티브이와 선풍기도 손바닥만 한 것을 사용했다.

 

박희봉(69세)씨는 밀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객지를 떠돌았다고 한다.

혈육이라고는 형님 한 분 계셨으나 어린 시절 헤어져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고생이란 고생은 찾아 다니며 하다, 20년 전에야 동자동에 안착했다.

그동안 모은 짐이 쪽방을 가득 채웠으나,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만약 쌓아놓은 짐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술은 끊었다지만, 담배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단다.

담배연기 빠질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유일한 낙이 담배라며 담배부터 꺼내 문다.

살아 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악몽의 세월은 돌아보기도 싫단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쪽방이 공공 개발되면 방 같은 방에서 한 번 살아 볼 꿈에 부풀었지만,

죽기 전에 이룰 수 없는 진짜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 쉰다.

동자동 공영개발이 민영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동자동 빈민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집에서 가져 온 내의 한벌을 챙겨 서울역광장으로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에 노숙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 응급 잠자리를 운영하는 지하공간은 공사 중이었고,

노숙인이 머물 수 있는 지하도에만 30여명이 몰려 있었다.

 

내의가 한 벌 뿐이라 잠든 노숙인 머리맡에 슬쩍 내려놓고,

오는 길에  ‘실버넷뉴스’ 운현선 시민기자를 만났다.

나를 만나러 서울역에 왔다는데, 평소 전화를 받지 않아 어렵사리 만난  것이다.

작년 홈리스 추모제에서부터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 전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취재해 갔으나,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야 한단다.   

 

여지 것 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의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지만, 운현선씨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나의 ‘인사동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공조했기 때문이다.

별 영향력 없는 매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틀림없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실시한 ‘약자와의 동행’ 식권사업에 대해 물어 흔쾌히 답해 주었다.

독거노인에게 절실한 사안이라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국토부'는 빈민들의 마지막 희망인 동자동 공영개발을 하루속히 추진하고,

'복지부'는 독거노인에게 하루 한 끼의 식권을 제공하라.

그리고 차디 찬 거리에 방치된 노숙인의 안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약자들의 재난은 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마지막 인연의 끈을 내려놓지 못하는 곳이 동자동과 인사동이다.

한 곳은 삶의 전쟁터고 한 곳은 마음의 고향이다.

동자동도 인사동도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지난 수요일은 동자동 빈민들 생수 나누어 주는 날이었다.

쪽방 더위를 견딜수만 있다면, 한 시간 쯤 땡볕에서 줄 서는 것이야 할수도 있다.

더위에 지친 이들의 갈증에 불만도 따랐으나, 고마운 배려였다.

 

사소한 일로 목소리가 높아진 두 젊은이는 죽일 듯 주먹을 치켜세웠다.

 "씨발놈아~", "오로새끼!"만 서로 반복하며, 주먹은 계속 허공을 맴돌았다.

매값을 훤히 알고 있으니, 어찌 성질대로 하겠는가?

 

지루함을 메워주는 퍼포먼스처럼 한참을 싸우더니,

물이 도착하니 약속이라도 한듯 싸움을 끝냈다.

 

작은 생수 스무 병 묶음이 일사불란하게 분배되었다.

삼백 명 한정이라 외출을 하지 않는 늙은이는 몰라서도 못 얻지만,

힘없는 노인들은 높은 곳까지 들고 가기도 힘들다.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매번 늙고 힘없는 사람만 소외된다.

 

 '공정'이란 말을 혁명 공약처럼 내 세우는 분들이시여!

제발 밑바닥 인생, 작은 것부터 공정하게 해 주세요.

 

오후 늦게는 모처럼 인사동 나갈 일이 생겼다.

한때 인사동에서 작은 뜨락을 운영한 노인자씨가 추억이나 까먹자는 연락이 와서다.

 

먼저 인사동 골목부터 돌아보았다.

죽을 때가 되면 이곳 저곳 돌아본다던데, 죽을 때가 되었을까?

콧수염으로 불리던 사진가 김영수씨가 오르내리던 작업실 골목도 갔다.

 

깐죽대던 강용대가 김영수의 군화발에 차여 처박힌 곳에서부터,

10원짜리 동전을 펼쳐 놓고 일원 짜리와 바꾸어주는 돈장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화가 강용대 유적지가 가장 많이 떠올랐.

금방이라도 머리를 풀어 헤친 까딱이가 고개를 까딱이며 나타날 것 같았다.

 

실비대학’으로 불린 '실비식당'은 개털의 소굴이었다.

물주 기다리다 잠든 어디엔들 머물 곳이 없으랴의 땡초시인 적음도,

유일한 물주였던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도 이제 모두 저세상 사람들이다.

 

노동자시인 김신용의 '조빠하'란 시어가 안주가 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알몸으로 난장판 된 실비대학 결혼식 뒤풀이 등

끊어지고 뒤엉킨 추억의 실타래를 되 감는다.

 

소설가 배평모를 만나 이박 삼일동안 한자리에서 죽쳤던 레떼도 생각났다.

죽이 맞은 술친구보다, 주모 이점숙의 갈까보다’ 노래가 발목 잡았다.

 

사진쟁이들이 많이 들락거린 꽃나라흑백현상소보다

그들과 어울려 술잔 나누던  뚱뚱이 삼겹살 집이 더 그립더라.

 

천상병시인의 아지트였던 귀천만 자리를 옮겨 살아남았을 뿐,

‘실비집'에서 부터 ‘누님칼국수’, 수희재',  '하가', '춘원', '평화만들기' 등

많은 주막과 찻집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때 이야기를 아는 분도 별로 없겠지만,

세대 따라 인사동에 대한 추억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40대의 한 분처럼 추운 겨울날 호떡 하나 사 먹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떨며 기다리다 호떡을 사고보니 입이 얼어 호떡 맛을 알 수 없었다는 분에서 부터,

 쌈지에 대한 추억이 많은 3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추억을 떠올린다.

 

 노인자씨가 운영한 작은 뜨락도 한 때는 인사동 참새들의 방앗간이었다.

마신 만큼 자진 납부하는 콧구멍한 대폿집이라 매상도 신통찮은데다,

그마저 외상 하는 골패들이 늘렸으니,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약속장소인 유목민 본래의 카페도 떠올랐다.

그땐 ’이란 카페였는데, 착 가라앉은 술집 분위기가 연애걸기 딱 좋았다.

그곳에서 들었던 킹크림슨의 아일랜드‘가 아직까지 귓가에 맴돈다.

 

유목민에는 이대훈, 노인자 내외와 정영신 동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안쪽에는 화가 유준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내외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노보살은 살이 포동포동한데 반해 이대감은 나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노보살만 드시고 이대감은 굶겼을까도 생각했는데,

진짜 단식원에 집어넣어 모질게 십키로나 살을 뺏다고 한다.

그러고도 술과 인연을 끊지 못해 빨간딱지나 찾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유목민' 주인장 역시 술은 독약이지만,

술을 너무 사랑해 목숨 걸고 마시는 것이다.

 

 오늘도 술에 절어 '미워도 다시 한번'을 곱씹는다.

 

인사동은 마음의 고향이 아니라 술의 고향이던가?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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