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고미술이 아닌 동시대 미술품을 다루는 화랑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베트남 전쟁 특수, 중동 건설 붐 등으로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새로운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확산하면서다. 고급화한 취향에 어울리는 장식품이나, 수집 대상으로서의 미술품 수요가 급증했다. 1970년 현대화랑·명동화랑을 시작으로 인사동·관훈동 일대에는 30여 개 화랑이 들어서게 됐다.

 

한국화 현장 지킨 동산방 화랑

국공립 미술관들의 빈틈채워

이용우 ,  산수 ( 山水 ), 1930 년대 ,  종이에 먹 , 86.5x152 ㎝ .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

1961년부터 동산방표구사를 운영해 오던 박주환(1929~2020) 대표가 한국화(동양화) 전문화랑 동산방을 개관한 것은 1974년이었다. 정부 주도의 민족주의 문화 정책으로 한국화가 주목받던 시기이자, 변관식·박노수·허백련 등 동양화 6대가들이 세상을 뜨면서 세대교체가 모색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명동화랑의 ‘30대 오늘의 얼굴들전’(1971), 그로리치 화랑의 동양화가 7인전’(1974) 등 화랑들은 화단의 공백을 메울 젊은 작가들을 발 빠르게 물색했다.

 

동산방화랑은 1976년 개관전으로 30·40대 작가들 위주로 동양화가 중견작가 21인전을 기획했다. 현대적 진경산수를 구현한 이열모·김동수·이영찬, 도시 풍경을 세련된 수묵에 담아낸 송수남·이철주, 수묵의 추상성을 실험했던 송영방·이규선, 문인화의 신경지를 개척한 홍석창 등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경향을 아울렀다. 작가에게 10호 크기 (53×45.5) 두 점씩을 출품할 것과 이 중 한 점은 화랑이 매입할 것을 알렸다. 당시 한 점당 50만원 정도였던 작품들이 매진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 오일 파동으로 경제가 요동치자 사람들의 관심은 값이 오를 대로 오른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옮겨갔다. 이후 1980년 동산방에서 현실과 발언창립전이 열렸다. 민중미술을 탄압한 군사 정부 때문에 전시가 취소되자 동산방이 기꺼이 전시 공간을 내줬다.

 

1980년대 이후 동산방은 서양화·판화로 영역을 확장해갔지만, 그 중심은 한국화였다. 1985년 현대화랑과 합작으로 기획한 청전과 소정전은 이상범·변관식 두 대가의 작품을 망라해 비교한 첫 전시로,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컸다. 미술시장에서 한국화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오늘까지도 동산방은 한국화 작가들을 변함없이 소개해 왔다.

 

화상이자 수장가였던 고() 박주환은 그가 평생 모은 미술품이 공공재로 쓰이길 희망했다. 그 뜻을 이어 아들 박우홍 현 동산방화랑 대표는 한국화 154점을 포함한 총 209점을 2021, 202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은 이 가운데 57인 작가의 작품 90여 점을 선별해 동녘에서 거닐다: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열고 있다.(내년 212일까지)

 

근대기 작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이용우의 산수’(1930년대). 전통화법의 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동연사를 조직했던 이용우는 먹의 농담을 통해 사실적 깊이 감을 더하는 한편, 지게에 땔감을 짊어진 농부와 삽살개를 그려 넣어 친근한 한국의 산야를 사생풍으로 구현했다. 현대작 가운데 이종상의 남해즉흥’(1977), 이철주의 세종로 풍경’(1979), 이열모의 팔현리’(1983), 이영찬의 구미정’(1992)은 실험정신이 잘 드러난 현대의 실경산수화다. 박주환 컬렉션의 또 다른 백미다.

 

동산방화랑 외에도, 2000년 가나아트센터가 서울시립미술관에 민중미술을 포함한 200점을, 2004년 갤러리 현대가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박수근 작품을 포함해 55점을 기증하는 등 화랑 기증품이 국공립미술관 수장고를 채우는 전통은 과거에도 있었다.

 

화랑은 동시대 미술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사적 공간임에도 때로는 지나친 상업성과 폐쇄성으로 부정적 측면이 부각됐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국공립박물관의 전시공간이 미비하던 시절 동산방을 필두로 한 화랑들은 미술 현장에서 터득한 안목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함으로써 미술시장만이 아니라 현대미술사의 형성에도 역할을 했다. 전시와 발굴, 수집과 판매를 넘어 좋은 작품이 대중과 함께 향유되고 보존되기를 희망하는 보통 사람들의 바람이 화랑의 미술품 기증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이 전시는 보여주고 있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중앙일보 / 스크랩

 

密語
양대원展 / YANGDAEWON / 梁大原 / painting
2016_0525 ▶ 2016_0607



양대원_씨앗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38×127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0527b | 양대원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6_05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일,공휴일 11:00am~05:00pm



동산방화랑DONGSANBANG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93번지

Tel. +82.2.733.5877



눈물과 칼 ● 그는 물질, 재료를 혼신의 힘을 다해 연마하고 새로운 성질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편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상당히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절제와 감각의 극한을 다루려는 의지 아래 강력히 통어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정교하게 가공하고 디자인(작도)하거나 물질의 속성을 자기 식으로 제련해서 화면에 밀착시킨다. 황토색감이 파고들어 은은한 색채감과 부드럽고 강인한 재질감이 살아있는 장지를 7번 배접한 화면이 그렇고 진하고 깊은 맛을 내며 단호한 어둠, 검정에 가깝게 아크릴물감을 밀어올린 것 등이 그렇다. 그 위에 올라가는 형상 또한 그렸다기보다는 도안, 작도, 그래픽과 유사하다. 그래서 반이정은 그의 그림에 대해 '미학적 청교도주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로서는 강박적 완성주의자 혹은 내용과 형식, 이미지와 물질을 모두 자기 감각에 맞게 혹독하게 끌고 가려는 모종의 고집과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고집스럽게 매여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반이정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의 그림은 "작가 내면의 분노와 자기완결성에 대한 강박이 착종된 결과물"로 보인다. 그래서 작업이 꽤나 인상적으로 어필하면서도 어딘지 갑갑한 느낌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작도에 가까운 구성, 함축적으로 올려놓은 도상들의 너무나 선명한 윤곽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정도의 공력과 완성도, 감각의 날카로움을 지닌 회화를 보기는 어렵다.


양대원_말씀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78×74cm_2014


양대원_기름부음을 받은자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21×88cm_2014


양대원_삶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48×104cm_2014


양대원_바램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82×148cm_2016


양대원_영원한 비밀2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30×148cm_2015


양대원_눈물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48×105cm_2015


양대원_안다_광목천에 한지, 아크릴채색, 토분, 아교, 커피, 린시드유_131×101cm_2014

양대원에게 미술이란 자신의 삶에서 연유하는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차원에 놓여있는 듯하다. 그 반경은 대단히 넓은 편인데 지극히 실존적인가 하면 정치와 권력, 분단 상황과 한미 간의 역학적 관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비정한 한국 사회, 자살과 정체성의 문제(페르소나, 가면) 등을 종횡으로 다룬다. 내용에서 이 주체적 관점은 기법의 새로움과 더불어 그의 작업이 지향하는 현대성을 유추하게 하는 단서다. 그의 모든 그림은 결국 자신의 삶에서 파생한 문제를 여하히 조형적으로 완성도 있게 구현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 그의 근작은 더 날카롭고 단호해졌다. 여전히 양식화된 세련된 화면 구성 속에서 그는 자객이 되어 칼을 후비고 다닌다. 그 칼날이 헛된 사랑과 꿈과 눈물, 문자의 체계를 마구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미술 2013. 11월호 발췌) ■ 박영택



Vol.20160525a | 양대원展 / YANGDAEWON / 梁大原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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