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빌린 돈도 갚아야 하지만, 차례상 차림에서 선물에 이르기까지

돈 들어 갈 곳이 너무 많아 명절 다가오는 것이 무서운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삶을 살아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다.

더러 불편한 점도 있으나 돈으로 생기는 폐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다행스럽게 기초생활수급자라 최소한의 수입이 보장되어 사는데 불편함은 없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생기 듯,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사건이 돈에서 비롯된다.

정치인들이나 재벌이나 가질 만큼 가진 자들의 돈에 대한 집착은 무섭다.

공직에서 옷을 벗거나 감옥에 가는 것까지 감수하며 돈에 혈안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은 ‘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돈 놓고 돈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돈은 밑천이 있어야 벌 수 있다.

그 돈을 굴려 버는 과정에서 온갖 몰염치와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는 말은 사람의 능력보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에서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느라 불가능한 일 까지 끌어들여, 돈 때문에 세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돈이 없을 때도 돈에 대한 말을 많이 한다. ‘돈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돈 벌기가 힘들어 ‘돈 한 푼 쥐면 손에서 땀난다.’고도 한다.

 

그래서 ‘돈에 침 뱉을 놈 없다’지만,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특히, 돈을 벌어 모으기만 하고 쓰지 않는 구두쇠는 비난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해서,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고도 한다.

 

그처럼 돈은 버는 것 보다 쓰길 잘 쓰야 한다.

돈 때문에 친구는 물론, 등 붙이고 사는 가족까지 헤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기도 하고...

 

 돈이란 똥과 같아서 돈이 모이면 구린내가 진동을 하나 골고루 나누면 좋은 거름이 된다.

나 역시 돈이 있을 때는 걱정을 달고 살았으나, 돈이 없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

 종종 인용하는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는 속담도 돈보다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경구다.

돈에 대한 속담까지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돈이 요물은 요물인 모양이다.  

 

정초부터 재수 없는 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돈이 없어 빌려가며 가난한 예술가를 돕는 사람이 있어서다,

 

주말에 녹번동 가면 찾아오는 지인이 더러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정동지 동생 정주영씨가 다녀갔고, 일요일엔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왔다.

활철씨는 용돈 하라며 돈 봉투를 내놓아 정동지 팁이라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지난 20일은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해 바뀌기 전에 술이나 한잔 하자며 불광동 '대조시장'에서 만나자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추웠다.

동자동에서 시간 맞춰 갔으나, 조해인씨와 먼저 도착해 길에서 떨고 있었다.

 

'대조시장'에 온 것은 며칠 전 홍어무침을 샀는데, 맛이 있어 다시 사러 왔다는 것이다.

홍어무침을 배낭에 집어넣고 추위를 피해 인근 ‘남도술상’이란 주막에 들어갔다.

맛있는 집만 찾아다니는 그였지만, 추위에는 도리가 없었다.

 

연포탕을 안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김명성씨가 두 사람에게 용돈을 내놓았다.

병석에 누워있는 이청운화백을 비롯한 몇 몇 분에게도 보냈다는 것이다.

 

인사동에서 ‘아라아트’를 운영할 때는 종종 가난한 예술가들을 도왔으나,

지금은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빚더미에 앉은 처지가 아니던가?

가져 온 돈도 외국기업에서 지사장으로 근무하는 딸에게 빌린 돈이라고 한다.

제 코가 석자인데, 남 생각할 여지가 어디 있겠나?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받으면서도 "씰데없는 짓 그만하라"는 염장 지르는 소리를 했다.

 

다들 갈 길이 바빠 소주 두병만 까고 일어섰는데, 마침 돈 쓸 곳이 생겼다.

밥만 올리려던 차례상을 차리려고 '대조시장'에서 장을 본 것이다.

술김에 이것저것 안 살 것까지 사며 돈을 다 써 버렸다.

돈이 생기면 그냥 두지 못하는 버릇을 탓하지만,

차례음식도 귀신이 먹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먹을 것 아닌가?

 

아무튼, 김명성씨 덕분에 푸짐한 명절상을 차렸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 아무리 없어도 밥 굶는 사람은 없는데,

그득한 제사상 또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부스러기 일 뿐이다.

 

새해에는 더 이상 민폐 끼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돈이 인간성을 갉아 먹는다.

 

사진, 글 / 조문호

 

 




추석 명절에 대한 즐거움도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시들해진다.


어린 시절엔 꿈에도 그리던 명절이 아니었던가?

명절이 다가오면 모처럼 목욕도 하고, 엄마는 기와장 부순 재로 녹그릇 닦는다고 바빴다.
다들 옷에다 신발까지 새것으로 갈아주어, 완전 케이스 갈이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먹거리도 지천에 늘렸었다.





들리는 친척 집마다 좋아하는 제삿밥은 물론 푸짐한 음식을 내놓았다.
대암골 산소에 가도 과실이 늘려있었다.

감나무 과수원이었으니, 감은 말 할 것도 없고, 밤,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장난 삼아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 형 더러 감나무를 흔들라고 했더니, 진짜 홍시가 떨어졌다,

그런데 입이 아니라 눈에 떨어져, 눈탱이가 밤탱이 된 적도 있었다.
새 옷 버릴까바 얼굴을 풀밭에 비볐던 기억도, 이제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버렸네.





어른이 되어서는 명절만 다가오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없는 돈에 선물 보낼 곳도 많은데다, 돈 들어 갈 곳이 한 둘이 아니었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진을 빼버리는, 고향가는 길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늙어버린 말 년에는 그래도 은근이 기다려졌다. 좋아하는 제삿밥 생각에...
제삿밥은 탕국을 잘 끓여야 제맛이 나는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듯이 정영신씨도 곧 잘 끓인다.
전라도 여자지만, 경상도식 탕국을 제법 맛 낼줄 안다.  단지 박을 구할 수 없어 무우를 넣었지만...

그런데 동자동에 들어가고 부터는 그 좋아하는 제삿밥을 맛볼 수 없었다.






여지 것 명절 차례는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공동차례로 대신했는데,
소장이 바뀐 올 해부터, 추석날 지내야 할 제사를 삼일이나 앞당긴 21일에 치러 버렸다.

명절이라 직원들도 쉬어야 겠지만, 그렇다면 주민자치회에 제사를 맡겨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사진 찍기 위한 제사지,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주민을 위한 제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은 부득이 제사상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장가간 햇님이도 며느리 데리고 온다는데,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누님께서 제사상에 과일이라도 올리라며 보낸 십만 원이 있어,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녹번동 대조시장으로 장보러 갔다.






물가가 높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으나, 진짜 물가가 장난이 아니었다.

병어 한 마리에 2만원이라, 만 원짜리 생선으로 대체하고,
과일 한 알, 나물 한 줌, 전 조금, 구색만 갖추었는데도, 십만 원이 금세 날아가 버렸다.

제사만 아니면,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이 싸게 먹힐 것 같았다.






다들 귀찮아 그런지, 시장에서 산 음식으로 제사 지내는 사람이 부쩍 많아 진 것 같았다.

대목장이라 분잡 서러웠는데, 나물과 전 부쳐 파는 곳은 장사진을 쳤고,

떡집은 불난 호떡집처럼 소란스러웠다.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가 적힌 공사장 가림막도 인상적이었고,
한쪽에서는 상인들의 노래 장단이 신바람을 돋우었다.







언제나 대묵장의 북적임은, 사람 사는 맛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물건이 잘 팔려, 돈 세는 장꾼 모습까지 얄미우면서도 정겹더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졌다.






그래도 조상 덕에 제사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했다.
쪽방에서는 제사 밥은커녕, 라면이나 빵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십만 원짜리 제사상이라 초라하지만, 감지덕지다.
제사는 간단히 지내고, 음식은 햇님이 내외와 네 사람이 먹고 나니 깨끗하게 없어졌다.
좀 부족한 듯 했지만, 최고의 추석 상이었다.






이번 추석은 그래도 괜찮은 장사였다.

과일 사라며 보태 준 돈으로 제사까지 지냈으니 말이다.

평소 먹고 싶었던 제삿밥도 먹고, 아들 내외 밥까지 먹여 보냈으니, 괜찮은 장사 아닌가?

또 보름달은 얼마나 예쁜지, 햇님이가 질투할 지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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