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의 화해

허진展 / HURJIN / 許塡 / painting 

 

2020_1223 ▶ 2020_1228

 

허진_동학혁명운동이야기5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46×11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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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홈페이지_hurjin.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_광화문 아트포럼후원,

협찬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메세나협회_한국문화예술위원회_크리엔조이_동덕아트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포스트휴먼 시대에 콘텐츠는 어디에 있는가 ● 포스트 휴먼의 시대에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허진의 모색은 회고적으로 보인다. 회화의 기원부터 동시대적 삶까지 두루 살피려는 자세는 아주 성실하다. 그 배경에는 전통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상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동아시아 전통회화미학이 견지해온 태도를 그는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들이닥친 디지털 문명에 대한 고려는 전통회화가 아직 들어서지 못했다. 그 어중간한 사이 어딘가에서 그는 회화미학을 고민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혹은 그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 시작되었는가? 이러한 물음이 의문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미술의 역사와 윤리에 대한 회의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전통적인 회화미학을 통하여 삶에 대한 감각적 호소를 촉발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과연 어느 정도 성공적일까? 여기서 한 명의 예술가는 단순히 제작자 혹은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오, 불완전한 모나드! ● 그런데 허진은 '익명'을 그렸다. 인간이 익명이라는 것이다. 대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은 서로 뒤엉켜 있다. 수묵과 채색이 한 화면에 어우러져 조형성을 획득한다. 자연은 존재이면서 미학적으로는 산수이고 윤리적으로는 이상이다. 여기에서 어긋나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들에 의한 은유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 그 사물을 선택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작품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식이 필수적이다. 작가의 텍스트가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그것은 언제든지 개폐가 가능하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성립시키는 사적 소유에 반대하는 듯이 보이는 텍스트의 제스처조차 빨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조형적으로 수묵과 채색이 조화된 세계는 현실적 삶의 부조화를 극복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갈망한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여기서 파악된 현실의 갈등 요소들이 여전히 유효한가, 혹은 클리셰는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적이다. 개념은 본질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감성의 윤리에로 이행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개념은 현상에서 얼어붙거나 허물어져 내리기도 한다. 물론 오해와 오류가 모두 무용한 것은 아니다. 스며들거나 녹지 못한, 망각될 수 없는 것들이 '그저 그런' 흔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익명의 상태를 인간의 조건으로 바라보면서도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 허진의 회화세계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이 '유목'이었다. 한때 철학적 개념으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이제는 거의 철지난 용어가 여전히 삶의 태도이자 미학적 명제로 그에게 작동한다. 야생적 삶에 대한 동경과 조형적 안정성은 작가의 모순적 펀더멘틀이다. 그의 사회적 산물로서 미술작품은 다시 삶과 사회에 대한 처세의 텍스트로 작동한다. 텍스트는 원래 직물을 뜻하다가 한 필의 천이 씨실과 날실의 교착으로 짜인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요소가 착종된 것을 함의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은 선행 텍스트와 동시대의 텍스트를 인용한 직물이고 여러 계열과 통합이 가로지르는 교착이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의 텍스트를 통한 상호작용은 그 자신이 이미 여러 텍스트가 뒤섞인 존재인 소비자가 참여함으로써 의미들이 지속적으로 밀려나며 창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분명 회화가 한 시대를 이해하는 창문 혹은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감동을(그리고 동시에 아련한 연민도) 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허진의 회화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기도 한다.

 

허진_유목동물+인간-문명 2020-1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62×130cm_2020

 

허진_유목동물+인간-문명 2020-10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30.5×97cm_2020

 

회화의 근원과 현실의 융합이 이상적으로 접속되기를 시도하는 것이 허진의 회화미학이다. 상정된 원리와 현재의 거리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미메시스이다. "미메시스란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하고, 의사소통하는 생명체의 행동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문명화 과정 속에서 미메시스적 행동방식이 정신적으로 유지되어 온 장소는 예술이다. 예술은 정신화된, 즉 합리성에 의해 변용되고 객관화된 미메시스이다."(알브레히트 벨머) 작가의 석사논문에 게재된 아주 초기작부터 최근까지의 회화를 보면서 떠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동굴벽화와 고분벽화인데 회화의 기원이면서 어떤 기억을 의미한다. 최초의 그림들은 주거 환경의 미화나 자신의 신체를 치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측불허인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자하는 염원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허진의 회화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인데 이는 동굴벽화에 나타나는 기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2010년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었다. "질주하는 동물의 모습에서 측면의 시점에서 그려진 형상에 정면에서 본 것을 재현해 놓았다. 그것은 인상적인 것을 기억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기억화이다. 주술과 기념! 그러나 허진의 기억은 이와 좀 다르다. 그의 텍스트가 지닌 특수한 매개성 때문이다. 구술적이기보다는 문자적이라는 의미이다. 문화적 기억으로서 그의 그림은 감각적이고 지각적인 형상 기억에 대해서 추상화하는 개념 기억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출발점인 동아시아 전통미학에서 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 혹은 변치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을 그리려는 회화미학을 그는 견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 그는 여기에 시대의 패러다임 혹은 트렌드를 외피로 입는다. 허진의 회화는 현실에 대한 형상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조형적으로는 집단적 형상기억, 즉 상징과 실존적 기억이 뒤섞인다. 어디선가 본 이미지들이 화면에 나열처럼 배치된다는 점은 제의적이다. 무엇인가를 기린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화면은 인간이 표현하는 역사적이고 심리학적인 저장 창고임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허진은 역사/기억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상징형식을 성찰한다. 기억의 내용은 감정에 대해 어떤 권력이 작동한 방식에 대한 콘텐츠인 것이다. 감정과 문화적인 표현(행위)은 서로 응답한다. 이렇게 그의 회화는 형상기억의 기록을 단순히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적인 실재적인 삶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요청한다는 의미에서 역사/문화적일뿐만 아니라 실존적이다.

 

허진_유목동물+인간-문명2016-25(동학혁명운동이야기1)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30×162cm_2016

 

집단적/역사적/문화적 기억으로서 상징성을 실존적으로 검토한 허진의 회화는 조형성이라는 회화의 근거와 이상에 대한 욕망으로 버무려진다. 그럼에도 그는 미메시스의 일관성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다시 카오스에 빠지고 유목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그에게 있어서 초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화면의 대비와 대조 그리고 '애매성'(이 지점은 언젠가 새롭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은 실존주의적 사유와 정치적(경영과는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작가의 회화적 반복은 "모든 차이들의 비형식 존재"(질 들뢰즈)이다. 이를 통해 허진의 화면은 각 개체들의 미메시스가 허물어지는 형상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다르더라도(혹은 달라 보일지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형상화하려는 의지는 어떤 간절한 화해적 요청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1989년 형상성을 언급하면서 "현실에 대한 여러 각도의 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자신의 회화미학으로 삼았다. 추상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탈-미메시스의 미학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응과 진화 사이에서(이 논의 또한 진화하는) 그는 생태적인 것을 선택한다. "야성은 거칠고 반문명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생태적 요소를 지니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서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와 내용을 중시하는 형식주의라는 모순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작업이 우리 시대의 포스트휴먼을 미학적으로 어떻게 감당할지 더욱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 김병수PS) 얼마 전 그는 내게 자신이 예술가 맞느냐고 물었다. 좋은 물음이라고 답했다.

 

허진_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18-2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62×130cm×2_2018

 

인간과 자연의 화해, 작가 허진의 초대전 ● 허진 작가의 개인전이 『인간과 자연의 화해』이라는 주제로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12월 23일(수) 부터 12월 28일(월) 까지 진행된다. ● 이번 전시에서 허진은 작가의 다층적 기억을 인문학적 입장에서 재해석하면서 회화적으로 평면에 풀어내면서 다. 즉 그 전시 주제는 인간의 기억은 불확실성을 띠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기억의 축적이 곧 역사이며 또한 역사가 개인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점에서 착안했다. ● 특히 유목동물+인간-문명시리즈는 과학문명숭배에서 비롯된 폐해를 치유하고자 하는 환경 친화적 생태론을 기반으로 하여 형상화한 연작들이다. 유목동물을 자유롭고 복잡하게 배치하는, 여러 이미지의 나열은 자연과의 상생과 조화를 강조하는 작가의 소망과 열정을 보여준다.

 

허진_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20-1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62×130cm×2_2020

 

작가 소개 및 작품 대요(大要) ● 허진은 조선말기 예원의 종장인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장손입니다. 말년에 전남 진도에 자리잡은 소치선생의 운림산방의 화맥을 5대째 이으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현대 한국화를 창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묵시"시리즈, "다중인간"시리즈, "현대인 이야기", "익명인간"시리즈, "유목동물"시리즈 등을 발표하면서 이를 관통하는 화두인 "인간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하여왔습니다. ● 작가는 수묵화의 전통적 특징인 함축미를 벗어난 서사적 미적구조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형상적 유희세계를 채색화적 성격이 강한 표현방식에 의해 표현고자 한다. 이는 전통이라는 중압적 중층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세이며 모더니즘에 대한 다중적 콤플렉스를 승화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합하는 순환적 자연생태관을 지키고자 하는 친환경론을 주제로 삼은 작품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허진_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2020-3_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채색_145×112cm×2_2020

 

유목동물인간문명시리즈 ● 유목동물인간문명시리즈는 역동적 야생동물의 묘사를 통해 자본문명에 젖은 기계적 삶에 예속된 현대의 삶을 탈피하여 자연 본성에 가까운 자유로운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작가는 인간조건의 근원을 위협하는 문명의 파괴적인 양상을 주목하고 문명과 인간탐구의 영역에서 동물을 부가(자연)하였다. 문명과 부유하는 인간 연작 위에 실루엣의 점묘로 대담하게 처리한 동물이미지는 문명의 온갖 단서와 익명인간이 오버랩 되면서 파편화되고 비순환적인 현실을 강렬한 색채로 부각시킨다. 문명의 월권과 그 파괴적 양상은 조화상실의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함께 인간형상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고 있으며 주체적 관계상실을 동물과 문명의 제반 이기를 부각 시킴으로써 표현했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시리즈 ●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시리즈는 유전자 조작 및 가공, 유전자 재조합기술, 생명복제, 세포융합 등의 유전공학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이 자연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을 교란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로 다른 동물을 합체하여 탄생된 기이한 이종융합동물을 묘사하여 이러한 생물학적 오염과 생태적 재앙을 부각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사회를 지향하고자 했다. ●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게 공존할 공동체를 상징할 수 대상을 섬으로 표현하였다. 섬은 어린 시절에 각인되었던 다도해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나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아틀란티스 같은 유토피아로 상상하였다. 즉 말하자면 인성을 망각된 윤리의식에 젖은 과학문명에 경고하고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다도해의 풍경을 묘사하여 지혜로운 공동체적 삶들로 이루어진 마음속의 유토피아를 창조하고자 한다.

 

동학혁명운동이야기 시리즈 ● 작년 2019년은 또한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이 두 사건을 촉발시킨 연원이 있는 사건인 동학농민혁명과 연관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2016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기획했던 동학전은 과거 동학군이 기세를 올렸던 전북에서 예술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정신을 이끌어내는 전시로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거기에 참여했던 허진은 그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 여러점을 오랜만에 서울에 선보이기 위해 이번 수상전에 출품한다. ● 유목동물인간문명시리즈는 과학문명숭배에서 비롯된 폐해를 치유하고자 하는 환경 친화적 생태론을 기반으로 하여 형상화한 연작들이다. 자유로운 유목동물을 자유롭고 복잡다단하게 배치하는 이미지의 나열은 자연과의 상생과 과 조화를 강조하는 작가의 소망과 열정을 드러난다. 그 위에 부유하는 흑백 인간 군상들과 문명 소산물인 사물들은 부속테마로 등장시키면서 기술 중심 문명의 허구성과 익명화된 인간의 피폐성이 부각되게 한다. 혼란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이미지 화면은 인간과 사물의 근원을 추구하는 일관성을 담은 전체적 통합라는 메시지를 담은 합창적 이미지를 가미하어 조화롭고 안정적 분위기를 흐르게 한다. 동학혁명과 연관된 사실적 이미지들을 유목동물 연작 이미지에 무작위로 오버랩 시키면서 혁명적 분위기를 담은 시대적 단층을 드러낸다. 유목적 근대성과 정착적 고루성을 중첩시켜 부조리한 역사에 대한 풍자성을 은유하고자 한다. 자연 파괴적 제국역사관과 외세 저항적 민중역사관이 혼재하는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 보다 더 나은 대동세상적 미래관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고자 한다. ● 동학혁명운동을 형상화하여 원대한 이념을 담은 회화적 이미지를 창안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여러 가지 조형적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이미지를 골라 조형적 어법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방법이 무난한 것 같다. 동학혁명을 회화적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시대적 외침과 혁명적 열기를 담아낼 수 있는 중요이미지는 동학교주 2대 해월 최시형이 감옥에 수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해월의 눈빛은 시대적 고뇌와 현실의 부조리를 담은 슬픔을 보여주어 정말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민화산수 이미지를 배경화면 이미지로 차용하고 동학에 관련된 텍스트용어들을 행서체로 삽입하여 그 시대적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였다 민중에 대한 신뢰와 대동 사회를 지향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담은 동학이념을 표현하고자하는 작가의 휴머니즘은 해월 전신상의 내면 묘사와 민중적 민화산수의 재해석한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그 작업 의미는 동학난을 봉기하게 하는 통사적 시각과 환경적 요인을 아울리는 역사인식을 재해석하여 화면에 조형적으로 복기하는 데에 있다. 특히 현실에 대한 나약함을 감추고 싶고 시대적 상황을 어두웠던 70-80년대 세대가 동학연작을 통해 시대적 모순을 내재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연적으로 치유하여 보다 나은 삶에 향한 긍적적 미래의식을 새롭게 가졌으면 한다. 이번 전시에서 허진 작가는 화업 32주년이 되는 올해를 기념하고 한국화 분야에서의 주제의식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작가 스스로의 작업 성과를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시대적 상황에 발맞춰 현대적 한국화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한 미래 청사진으로서의 작업을 관객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이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유불선사상을 바탕으로 한 한국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고 21세기에 맞이하는 한국화에 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과 참신한 형식을 부단히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상의 전형을 이 곳에서 만나 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혁신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예술생태계의 복원을 꿈꾸며 침체된 한국화의 진흥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허진 작가의 고뇌 어린 예술정신을 엿볼 수 있다. ● 현재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31차례의 개인전과 550여회의 그룹•기획 전시에 참여했다. 한국화의 선도적 역할을 한 남농의 장손으로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Vol.20201223c | 허진展 / HURJIN / 許塡 / painting

소치家 허문 화백 4代 5인의 그림 모아 ‘운림산방’전 열어

 

운림산방’의 4대 임전 허문 화백은 “운림산방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애쓰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했다. 그림은 ‘구름과 안개의 화가’ 임전의 2011년 작 강무(江霧).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전남 진도에는 4대에 걸쳐 한국화가 5인을 키워낸 화실이 있다. 국가지정 명승 제80호 운림산방(雲林山房)이다. 조선후기 남종화의 거두인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8∼1893)에서 시작해 2대인 미산 허형(米山 許灐·1861∼1938), 3대인 남농 허건(南農 許楗·1908∼1987)과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 4대 임전 허문(林田 許文·73)이 대를 이어 일궈온 화맥을 담은 곳이다.

소치 가문의 4대 5인의 그림을 한데 모은 ‘운림산방 4대전’이 8∼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4대인 임전의 회고전 ‘붓질오십년’을 겸해 열리는 전시다. 운림산방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 위한 홍보전이기도 하다.

“소치의 고손자이자 제 조카인 4명도 한국화를 하고 있으니 5대 9인입니다. 얘들은 아직 그림이 어려 이번 전시에선 제외했어요. 5대째 화맥을 이어가는 집안은 허소치 일가밖에 없을 것이오.”

 

 

25세에 요절한 3대 임인 허림이 별세한 해에 그린 ‘유월 무렵’. 물감을 아끼려고 흙으로 점을 찍어

그린 뒤 물감을 입혀 ‘토점화’ 또는 ‘색점화’라고 불린다. 운림산방 제공


7일 만난 허 화백의 사투리엔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배어 있었다. ‘그림이 어려’ 제외된 4명 중엔 남농의 손자인 허진 전남대 미대 교수(52)도 있다. 허 화백은 2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가문의 이야기를 2시간 동안 ‘간략하게’ 들려줬는데, 소치가의 당당한 예맥은 가난이라는 땅에 그림 재주가 씨처럼 뿌려져 자라난 것이었다.

남도의 외딴섬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자란 소치는 ‘스스로 일깨운 그림 재주’로 “압록강 이동엔 소치만 한 그림이 없다”는 찬사를 받으며 남종화의 거봉이 됐다. 붓에 먹을 조금만 찍는 ‘갈필법(渴筆法)’의 원조로 이 화법은 소치 가문을 남도 화단의 중심에 올려놓게 된다.

 

2대 미산은 운림산방에서 농사일로 어렵게 가세를 꾸려가며 24세의 늦은 나이에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화맥의 뿌리를 목포로 옮겨 내렸다. 집안에선 소치와 남농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한다.

3대 남농 역시 한겨울 냉방에서 지내다 동상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잘라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갈필산수로 독특한 화풍을 일궈내 임전의 표현에 따르면 ‘화가 재벌’이 됐다.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4대 임전도 어린 시절엔 “그림 그리면 밥 굶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백부(남농) 댁에서 8남매와 함께 자랐소. 어깨너머로 익힌 것을 눈대중으로 조잡한 그림들을 그려 숨겨 놓았는데 그걸 백부께 들켰지요. ‘썩을 놈, 그림 그리지 말랑께는’ 하시며 전부 찢어버리셨어요.”

하지만 25세에 요절한 동생 임인에게서 물려받은 조카의 재주를 몰라볼 남농이 아니었다. 남농은 “기왕에 붓을 들었으니 선대들의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임전을 홍익대 미대에 보냈고, 임전은 갈필법으로 ‘운무(雲霧)산수’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 백부의 뒷바라지에 보답했다. 구름과 안개의 움직임을 수묵 담채로 잡아낸 동적인 한국화다. 그림의 주인공이 운무이니 붓이 지나간 자리보다 여백이 넓다. 그는 “여백이 그리기 가장 어렵다. 여백이 그림이 돼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예전엔 가난한 사람들이 그림을 했지만 요즘은 부자들이 그림을 하잖아요. 붓을 맘대로 쓰고 먹맛을 제대로 내려면 10년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걸 귀하게 자란 사람들은 안 하지요. 이런 한국화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거요.”


동아알보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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