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0일은 졸음을 견디지 못해, 인사동으로 바람 쐬러 나가야 했다.




오늘까지 ‘부랑자’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데,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두 시간 밖에 못자며 여기 저기 흩어진

사진 이미지 찾느라 파김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전시장이나 들렸다 올 작정에 인사동 벽치기 골목으로 접어들었는데, 

‘유목민’ 문 앞에 단체손님 예약으로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궁금증을 자극해 들어가 보니, 영화 ‘기생충’ 제작팀들이 ‘유목민’을 접수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사진가 이유홍씨를 비롯하여 조성표, 안완규씨가 술자리를 마련해 잠깐 합석했는데,

그 날 국민들의 영웅이 된 봉준호감독을 비롯한 일행들이 청와대 다녀와서 주연을 갖는 자리라고 했다.



이유홍씨는 요즘 우울증에 시달려 몸무게가 육킬로나 빠졌다고 했다.

사진가 황규태선생과 점심식사를 한 후, 인사동으로 옮겨 술 한 잔하고 있었는데,

모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었다.



안쪽에는 봉준호감독을 비롯하여 송강호, 장혜진, 조녀정, 박소담, 박만철씨를 비롯한

20여명의 ‘기생충’ 출연진과 스탭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쪽팔리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어 가끔 화장실을 더나들 때 만났을 뿐이다.

그러나 축하연에서 나온 케익이나 얻어먹고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인섭씨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들어 와 예약 팀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다.


 

이유홍, 조성표, 박혜영씨와 옆 골목에 있는 ‘꽃, 밥에 피다’로 옮겼다.

이 집은 생긴 지가 오래지 않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으나,

지나치다 좆밥이라는 등 농담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유홍씨 단골집이란다.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생충’ 대본이라도 한 권 얻기 위해 다시 ‘유목민’에 갔는데,

사진가 이정환씨를 비롯하여 심보겸, 성유나, 이미리씨 등 여러 명을 골목에서 만났다.

반갑기는 했으나,그들도 ‘유목민’ 예약 팀 때문에 다른 술집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가보니 이미 대본을 다 나눈 뒤라 허탕치고 돌아왔으나, 더 이상 술은 마실 수가 없었다.

오늘까지 마무리해 넘겨야 할 원고 걱정에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술 마신 자체가 문제였다.

몰려오는 졸음에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 일한다는 게, 일어나보니 이미 아침이었다.



그날까지 원고를 모두 넘겨주어야 다음 날 책을 편집하고 가제본하여

마감일인 월요일까지 지원금을 신청한다고 했는데, 이미 날 샌 것 같았다.

복에 없는 지원금 신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더 꼼꼼하게 보충 작업하여 좋은 책 만들라는 계시로 생각하며 위안했다.



모든 것은 준비된 자가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발에 닭 알이라’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은 동자동 복귀하는 날이었다.
주말에 정영신씨 집에서 쉬고 아지트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 였다.
“행님 어딧습니꺼? 녹번동이마 시상식 중계 보면서 술 한 잔 하입시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출발한 것 같았다.

 

 



이 집은 밥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정오 무렵에 밥 먹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침, 정영신씨가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놓았다.
자식 자취방에 보내는 심정으로, 가는 놈 몸보신 시킬 속셈이었다.
마침, 전 날이 보름이라 오곡밥과 나물도 남아 있었다.
술은 이름도 거룩한 ‘불사주’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

 

 



전활철씨는 오전에는 시장보러 다녀 항상 등짐을 짊어지고 다닌다.
보따리를 뒤지더니, 송이버섯을 꺼냈다.
철 지난 송이라 향은 없으나, 명색이 송이버섯이 아니더냐.
그 정도의 술안주면 요리집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요즘 제주에서 벌어먹는 공윤희씨였다.
반갑게 어울려 함께 술을 마셨는데, 화제는 온통 ‘기생충’ 이야기 뿐이었다.
난, 상 받는 자체를 좋아했지만, ‘기생충’이란 영화 내용도 몰랐다.
대략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건드려 더 관심이 컸다.

 

 


그나자나, 이 집은 영화 보는 모니터는 있으나, 티브이를 볼 수 없도록 해 놓았다.
노트북으로 YTN 뉴스 틀어 놓고 마셨는데, 빈속에 들어가는 낮술이라 기분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기생충’ 상 받는 게 안 좋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전활철씨는 남다르다.
봉준호 감독 일행이 ‘유목민’ 단골이라 그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각본상에 이어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네 개 부문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모두 들떴다.
다들 기분 좋아 축배에 축배를 거듭한 것이다.

 

 



전활철씨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아쉽지만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뇌까리며...
뒤이어 조해인시인이 왔고, 한 참 후에는 사진가 김수길씨도 등장했다.
코구멍한 집구석에 인근에 사는 인사동 사람들은 다 등장한 것이다.

 

 



술 기운에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전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공윤희씨가 미국 사는 최정자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며 바꾸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반갑기는 했으나, 미국 같으면 그 때가 새벽3시 무렵이었다.
잠자는 노친네를 깨운 그 죄를 어쩌려고, 정말 대책 없는 술꾼들이다.

 

 



기분 좋게 취했으나, 조해인씨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 같았다.
신이 나서 십팔 번 노래까지 불렀는데, 문제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부득이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자리가 파하자 나 역시 녹초가 되어버렸다.

 

 

 

밥 먹으며 간단히 끝내려 했던 술자리가 결국 하루 종일 땡땡이 친 셈이다.
자고 일어나니 몸속의 기생충이 들고 일어났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불사주'는 관절에 특효인 약술로 조금씩 마시면 아주 편하게 취하는 좋은 술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술도 지나치면 독일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 술을 피해 다니니, 술이 나를 찾아다니는 격이었다.

 

 



하루종일 땡쳤으니, 국 쏟고 뭐 데인 격이지만 누굴 원망하랴!
술이 원수냐? 상이 원수냐? 친구가 원수더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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