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임태종씨가 '인사동 이야기' 사진과 ‘어머니의 땅’ 사진을 여러 점 사 주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한 점도 아니고 네 점이나 사겠다기에, 고마움에 앞서 마음의 짐이 되었다.

정해준 사진을 프린트하여 액자까지 만들어두었으나 전할 방법이 마땅찮아,

구정연휴가 시작되는 1월30일 강남 사무실에 갖다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날이 노는 날이지만 사무실 나갈 일이 있어 같이 차 한잔 하자고 했다.

 

그동안 임태종씨 사무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선릉 옆의 그 길은 오래전 삼성카메라에서 일할 때 자주 들렸던 눈 익은 곳이었다.

마중 나온 임태종씨 따라 간 사무실은 쾌적하고 아늑했다.

흡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무실엔 넓직한 테라스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선능이 한 눈에 쏙 들어왔다.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지만 책장 위에 돈통을 들고있는 목각인형도 눈길을 끌었다.

한때는 이곳에 친구들 불러 모아 바베큐 파티도 종종 열었으나, 일이 지긋지긋해 그만두었단다.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찮지만 이튿날 청소하는 직원들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사실, 초대받는 입장에서야 좋을지 모르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오래 전 정선 만지산에서 서낭당 축제를 열어보아 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돌이켜 생각하니, 없는 주머니 털어가며 누굴 위해 그토록 정성을 쏟아부었는지 모르겠다.

국 쏟고 뭐 데인다는 말처럼, 돈잃고 고생만 한 것이 아니라, 돌아서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축제의 의도와 상관없이, 왜 돈들여가며 쓸데없는 짓을 벌이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사사건건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그리고 정선 집을 흔적도 없이 태워 버린 옆집에서는 땅을 다시 측량했다며

남의 집터에 걸쳐 자기네 집만 지어 올렸다.

보상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는 것을 보니 어무래도 사람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이젠 이웃에 대한 정이 완전히 사라져, 법적 소송을 해서라도 기어히 손해배상을 받아 낼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으나, 임태종씨 덕에 선능 사무실 구경한 번 잘 했다.

전해 준 사진이 어떤 용도로 어디에 걸릴지는 모르지만,

영감을 일깨우는 작품적 기능에 앞서 복 짓는 부적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것으로 믿는다.

부디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길...

 

사진, 글 / 조문호

 

 

현실과 이상 사이. 다양한 건축의 요소를 온전히 담고자 매 작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건축가 김희준. 정해진 길을 벗어나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촌스러운' 건축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의 건축 이야기를 전한다.

혼자 작업을 하신 지 햇수로 17년이 되셨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던 설계 사무실을 2년 만에 그만 두었어요. 그때가 1998년이었습니다. 또래 동기들은 대부분 유학을 갔지만, 저는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더 이상 건축을 학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고 싶었죠. 마침 회사 다닐 때 알고 지낸 한 건축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언젠가 "희준 씨, 혹시 모르니까 연락처나 하나 줘요. 나중에 집 지을 건데 그때 연락할게요." 했던 분이었죠. 막상 집을 설계해달라는 전화를 받고는 제가 어리고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돈 주고 한다고 해도 부족할 판에 이런 기회가 어디 있어!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사무실도 없이 시작한 게 묵리주택이에요. 제 나이 서른이었죠

 

 

서른 살 젊은이가 처음 맡은 작업치고는 무게감 있는 주택이었지요.

저는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어느 모임에 가면 있는지 없는지도 티도 안 나는데, 그냥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디 자랑하고 그런 것도 잘 못해요. 심지어 요새 많이들 한다는 SNS도 안 해요. 사실 잠깐 동안 해봤는데 제 성격에 맞지 않더라고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러내는 것 보단 담고 있는 것이 베어 나오게 하려고 노력해요. 묵리 주택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인지 외부활동이 많지 않은 '은둔형 건축가'로 명성이 높으세요.

사람이 사회생활하면서 대개 일괄적인 감정선을 유지하는데, 저도 저만의 차분한 톤이 있지요. 에너지가 넘치는 몇몇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면 빨리 지쳐요. 대신 계속, 꾸준히 가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일을 안 해야 해요(웃음). 누가 뭐 한다더라 그런 얘기가 들려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흘려버립니다. 같은 의미에서 '혁신적인 건축'도 저와는 맞지 않아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저 저와 맞지 않는 거예요.

지난해 인사동에서 열린 '최소의 집' 전시에서 한 칸짜리 텅 빈 방(정•방, 靜•房) '일월암 객실'을 선보이셨는데요.

일월암 객실은 2009년에 설계하고 지어진 18㎡(5.4평) 정방형 건물에 화장실, 부엌이 모두 있는 '집이자 방'이에요. 방이라는 것이 꼭 크기와 기능에 따라 나누어진 공간이 아니라 주변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유기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도록 비워진 곳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과 크기가 '최소의 집'이라는 주제에 맞는다고 생각해 전시하게 된 것이죠.

전시장에서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예상외로 일반 사람인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놀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어디예요?" 와 "얼마예요?"더군요. 아무래도 집이라서 그런지 실제로 만져보고 싶고 들어가 보고 싶은가 봐요. 도면과 모형으로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듯합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려면 다른 방식의 전시가 기획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현재 그런 것을 논의 중에 있고요.

독립 이후 꾸준한 작업이 홈페이지에 차곡차곡 쌓여있는데요, 막상 완성 사진 찍은 건축물이 몇개 없어요.

크게 '작품 한다' 하며 일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작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건축가로서 매 프로젝트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은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어요. 근데 설계가 잘 나오더라도 결과물까지 보장할 수 있는 건 10개 중 3개도 될까 말까에요. 그래서 불행히도 건축 사진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가 몇 안 됩니다. 어쭙잖은 것을 전문가에게 담아 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 일월암 객실


 

나머지 7개의 프로젝트는 무슨 연유로 포기하게 되는 건가요?

처음 계획부터 설계, 시공, 마무리까지 건축 과정을 겪다 보면 약간의 디테일이 흐트러져도 전체적으로 처음 생각한 느낌을 담고 있는 결과물이 있고, 아예 흐름 자체가 무너져버려서 처음 계획한 것과 다르게 된 것도 있죠. 그럴 때는 내려놓습니다. 작업이 아닌 그냥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작업을 하나 꼽자면?

3년 전부터 해오던 작업이 하나 있어요. 자연 속에서 건축이 드러나지 않게끔 계획하는 건데 예배당, 주택, 힐링하우스, 카페 등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늘 생각해온 '관계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건축'이 될 수 있었는데, 처음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지금은 그저 작업 목록에 이름만 올린 상태에요. 이런 프로젝트가 참 아쉽죠.

소장님 작품을 살펴보면, '자연'과의 관계가 유독 돈독해 보여요.

담양 소쇄원을 떠올려보세요. 입구에서부터 나무, 오솔길, 계곡, 건물, 이 모든 요소가 모여 그저 '하나'가 되잖아요. 경복궁도 마찬가지예요. 백악산을 뒤로 하고 건물들이 있는 게 아니라, 건축이 하늘과 산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한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현장에 가면 무언지 모를 '느낌'은 받는단 말이에요. 그런 감응을 주는 건축을 만나면 기분이 좋죠. 아마 '자연'과 친밀하다는 느낌은 제가 촌놈이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자연의 흐름을 머리가 아니라 세포가 기억하는 것이죠.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촌놈의 '좋은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네 시골에 있는 '집'을 떠올리면 건물만 달랑 한 채 보이는 건 아니죠. 마당과 대문, 돌담, 확장해서 마을 전체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지잖아요. 장흥에서 나고 자라며 들판을 뛰어다니고, 담장을 넘어다녔어요. 매일 보는 게 바다, 들, 뒷산, 아랫집 지붕, 마을 공기, 바람 냄새, 햇볕 뭐 이런 것들이었죠. 제가 말하는 '촌놈'의 뜻은, 저의 세포의 돌기들이 이런 자연의 느낌을 감지한다는 거예요. 이건 설계할 때 제게 굉장히 중요한 감각이에요. 단순히 건물 개구부의 비례가 좋네, 빛이 들어오는 게 좋네, 이런 게 아니라 그걸 뛰어넘는 더 큰 '무언가'를 담아내는 건축을 추구하게끔 하는 근본인 것 같아요.

 

 

↑ 전수리 주택


"건축은 좋은 것이 아닌 좋은 곳이어야 하고, 형상이 아닌 형국이어야 합니다 설계자의 의도가 아닌 배려가 담긴 건축물이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좋은 건축으로 남지요"

 

 

 

건축에서 그 '무언가'는 어떤 방식으로 설계에 반영되나요?

예전에는 '사람 위주의 건축'이라면 굉장히 좋은 말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모든 건 건축의 일부지 건축 그 자체는 아니지요. 기능적인 부분도 건축의 일부이지 기능 자체가 건축은 아니에요. 때로 어떤 건물은 기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또 어떤 건물은 자연에 비중을 두지만, 그래도 그게 전부일 수는 없어요. 모두 건축의 큰 흐름 속에서 어우러지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마지막 세밀한 '질감'까지도 모두 고려한 결과물이 나왔을 때, 그게 바로 '무언가'가 담긴 건축일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한 소쇄원 같은 게 대표적인 예죠. 근데 아직 저도 못해봤어요(웃음).

소장님의 설계는 복잡하고 고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곳 삼청동 작업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축대에 비가 오면 진초록 이끼가 부드러운 양탄자같이 올라와요. 그걸 보기 위해서 'ㄱ'자 모양의 코너창을 냈어요. 골목길로 누가 오는지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창이기도 해요. 또, 저쪽 개울 쪽 창으로는 백악산 봉우리가 액자처럼 보이고요. 이런 작은 것들도 건축의 많은 요소와 한데 어우러져야 해요. 그렇게 프로젝트마다 '뭔가'가 걸리기를 원하고, 그 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 노력을 많이 기울여요. 그런데 버릇이 되놔서인지 자꾸만 단순하게 정리를 해요. 15년 넘게 설계를 하면서도 '찰칵'하며 맞아 떨어졌다 느낀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그래서 매번 설계가 쉽지 않지요.

 

 


 

지금까지 건축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저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은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고 공간을 '의도'하는 경향이 좀 강해요. 근데 사용자에게는 설계자의 의도가 의도로 보이지 않고 배려로 보여야 해요. 빛이나 동선, 그런 게 한두 개 정도 의도되어 들어간다면 기분 좋은 공간적 경험으로 받아들이지만, 건물 전체에 그런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해놓으면 이용자가 불편합니다. 건물을 쓰면서 건물 눈치, 건축가 눈치를 봐야 하거든요. 의도와 기술은 한 걸음 뒤로 숨어야 해요.

소장님이 추구하는 건축은 어떤 건가요?

분위기 있는 건물은 건물 자체가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주변과의 관계를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가끔 제 결과물에도 모양이 너무 세련되다 생각되는 디자인이 있어요. 그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형태나 공간이 너무 잘 만들어진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낍니다. 건축은 좋은 것이 아닌 좋은 곳이어야 하고, 형상이 아닌 형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수더분한 건축,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더라도 매력 있는 건축. 사용자가 건물 눈치 안보고 편하게 들고 나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은 거지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매번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겠어요.

좋은 배역이 주어졌을 때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결국은 건축가의 의지인 거죠.

언젠가 '진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것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고, 정말 그런 걸 만들고 싶어요. 세포가 가지고 있는 걸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근데 솔직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월간 전원속의 내집        | 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                


 

인사동 문화터를 계획하는 건축가


*인터내셔널 디자인그룹 아이앤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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