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볼 만한 전시가 여럿 열려, 내친 걸음에 모두 돌아보았다.

정영신씨와 인사동 간 지난 5일은 날씨가 추워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었는데,

전시장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리는 이재삼씨의 달빛 녹취록이었다.

목탄으로 드러낸 자연의 형태는 단순한 풍경을 너머, 깊은 어둠속에 잠긴 침식된 풍경을 보여주었다.



홍매화를 비롯한 소나무, 대나무, 물안개, 폭포 등의 대작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달빛이란 제목을 붙인 거목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고요한 적막감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장엄한 분위기가 처음엔 긴장감을 주었으나, 이내 마음이 편해지며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마치 깊은 산중의 새벽 법당에 홀로 선 것처럼...



수행하는 스님 방에 작품을 걸었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 무엇을 꿈틀거리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달빛 소리 같기도 했다.



가슴에서 밀려오는 감흥은 보는 이의 신체 오감을 자극했다.

신종 코로나에 주눅들지말고, 신비로운 달빛에 한 번 취해봄이 어떨까?


아래를 클릭하면 네오록에 소개된  이재삼씨의 글과 작품을 볼 수 있다.

http://blog.daum.net/mun6144/5459



 

두 번째는 갤러리 미술세계’ 5층에서 열리는 고 이존수의 재조명전 선험적 이미지, 그 너머를 보러갔다.

전시장에서 화가 정복수씨를 만나 전시장 순방에 함께 했다.


 

이존수씨는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불운의 화가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학벌도 배경도 없는 변방의 작가였다.

부산에서 활동한 70년대 만난 오랜 지기지만 80년대 초반 인사동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는 대학로와 인사동을 오가며 많은 벗들을 사겼으나, 특히 중광스님과 친하게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이존수씨가 중광스님의 그림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상경할 때는 그도 개털신세라 사는 게 어려웠다.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빨래집게 전시로 조명받아 유명세를 탔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유명 화랑의 전속화가가 되었는데, 없는 사람이 돈이 생기면 이렇게 변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유명화랑과의 전속계약을 노예계약이라며 법정투쟁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 동기야 어쨌든 간에 작가의 생명줄을 쥔 화랑 측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였다. 


 

한 동안 그를 잊었는데,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것도 죽은지가 한 참 되었지만, 아무도 그의 사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기구한 운명에 억장이 무너졌으나 흐르는 세월에 잊고 살았는데,

갑작스런 전시소식에 죽은 사람 살아 온 것처럼 반가웠다.


 

그는 파격적인 작품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개의 작품들은 줄거리 없는 설화성을 띄고 있다.

마치 전설이나 동화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 조각들을 형상화시켜 놓았다.

그건 작가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같았다.

그 형상들은 전설로 떠도는 설화가 아니라 오늘의 신화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이었다


 

 

전시장에는 세로 1,4미터에 가로 26미터에 이르는 대작이 걸려 있었다.

평생도라 이름붙인 작품에는 삼라만상 희노애락과 우주의 신묘를 다 담아 놓았다.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이존수의 선험적인 신기어린 세계에 한 번 푹 빠져보시길...


 

 

그 전시장에서 한층 내려와 유혜정씨의 그림읽기 내친걸음전에 들렸다.

이 전시는 평창동 아트스페스 퀼리아에서 끝난 지 사흘 만에 다시 열려 내친걸음이라 했으나,

뜻은 내친(內親) 걸음이다.



마침 작가가 자리에 있어 차 한 잔 얻어 마셨는데,

마치 은밀한 여인의 방에 들어온 듯, 눈 높이을 깔아야 했다.

작품들이 도발적이라, 훔쳐보듯 살펴보았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성에 대한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냈는데,  작가의 그림일기 같았.


 

작가는 이 작업을 하게 된 동기가 무의식적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그렸는데, 성에 과민 반응하는 세태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을 쉬쉬하며 웃음거리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춘화라고 하대했던 옛날이야 그렇다치고, 지금이 어느 때인가?

세상에 성애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게 어디 있나.


 

이 그림들은 남성의 입장에서는 이성으로 볼 수 있으나,

작가는 여성의 본질적인 삶과 존재를 그렸다.

그 본질은 여자라기보다 그녀가 아우르며 풍기는 밝음이다.



아무튼, 유혜정씨의 그림은 매혹적이다.

때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찌꺼기까지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적나나하게 드러냈으나 작품들이 음란하기보다 맑다.  

그 해맑은 여인의 꿈길을 한 번 걸어보심은 어떨까요?


 

네 번째 들린 곳은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류연복씨의 온 몸은 길이다전이다.


 

이 전시가 열리는 나무아트는 민중미술의 본산이다.

그림마당 민에 이어 93년도에 문을 열었는데,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운영한다.

'나무화랑'처럼 좋은 전시가 자주 열리는 곳이 인사동에 별로 없다.

오층 꼭대기에 있는 조그만 전시장이지만, 보석같은 알짜배기다. 


 

정복수, 정영신씨와 전시장으로 올라가니, 전시작가 류연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화가 이흥덕, 송 창, 김재홍, 장경호, 성기준, 김이하씨 등 많은 분이 와 있었다.

반가워도 전염병에 주눅들어, 싫어 할까바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전시작들을 돌아보니, 진천 전시 빠진 작품과 신작도 있었다.


 

류연복씨의 목판화는 국토에 대한 애정과 자연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베어있다.

때로는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칼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서정적이다.

국토를 온 몸으로 껴안은 내면에는 민중의 한이 서려있다.


 

작품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많은 사람들이 류연복씨를 좋아하는 이유다.

비실비실 웃으며 바람처럼 살지만, 항상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다.


 

목판화와 함께 한 세월이 어언 35년인데, 한결 같은 뚝심의 화가다.

우리 현대목판화사에서 족적을 분명하게 남긴 문제 작가다.

그의 목판화는 우리민족의 정신과 국토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아래를 클릭하면 네오록에 올린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과 전시작을 볼 수 있다.

http://blog.daum.net/mun6144/5475



한 걸음에 장엄함과 선험적이고 매혹적이며, 민족적 한의 정서까지 골고루 느낄 수 있으니,

일타 쌍피가 아니라 일타 사피가 아니겠는가?

주말부터 날씨도 풀린다니, 인사동에 전시보러 가자.



이재삼 달빛 녹취록‘ / 3월 3일까지 / 갤러리 그림손

이존수 ''선험적 이미지, 그 너머' / 2월 13일까지 / 갤러리 미술세계 5층

유혜정, '그림읽기, 내친걸음' / 2월13일까지 / 갤러리 미술세계 4층

류연복 '온몸은 길이다. / 2월 24일까지 / 나무화랑

 

사진, 글 / 조문호













 

 

 

 




이존수의 재조명전 선험적 이미지, 그 너머가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 5층에서

오는 213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서 화가 정복수씨와 사진가 정영신씨를 만났다.


 

이존수씨는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불운의 화가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학벌도 배경도 없는 변방의 작가였다

 

부산에서 활동한 70년대 만난 오랜 지기지만80년대 초반 인사동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는 대학로와 인사동을 오가며 많은 벗들을 사겼으나, 특히 중광스님과 친하게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이존수씨가 중광스님의 그림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상경할 때는 그도 개털신세라 사는 게 어려웠다.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빨래집게 전시로 조명받아 유명세를 탔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유명 화랑의 전속화가가 되었는데,

없는 사람이 돈이 생기면 이렇게 변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유명화랑과의 전속계약을 노예계약이라며 법정투쟁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 동기야 어쨌든 간에 작가의 생명줄을 쥔 화랑 측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였다.


 

한 동안 그를 잊었는데,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것도 죽은지가 한 참 되었지만, 아무도 그의 사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기구한 운명에 억장이 무너졌으나 흐르는 세월에 잊고 살았는데,

갑작스런 전시소식에 죽은 사람 살아 온 것처럼 반가웠다.


 

그는 파격적인 작품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개의 작품들은 줄거리 없는 설화성을 띄고 있다.

마치 전설이나 동화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 조각들을 형상화시켜 놓았다.


그건 작가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같았다.

그 형상들은 전설로 떠도는 설화가 아니라

오늘의 신화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이었다.


 

전시장에는 세로 1,4미터에 가로 26미터에 이르는 대작이 걸려 있었다.

평생도라 이름붙인 작품에는 삼라만상 희노애락과 우주의 신묘를 다 담아 놓았다.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이존수의 선험적인 신기어린 세계는

갤러리 미술세계에서 오는 213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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