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문학관 건립 추진…소탈하고 순진무구한 모습 담은 사진집 나와 
 

     김대희 기자 / 2013-04-26 16:05:54 

천상병시인 (사진=연합뉴스) c2013 CNB뉴스

▲ CNB뉴스, CNBNEWS, 씨앤비뉴스
'천상의 시인’이라 불리는 천상병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다시금 그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인의 20주기를 맞았지만 지금까지 추모 문학관은커녕 변변한 유품 보관 장소도 없다. 오히려 의정부지역 예술인들이 문학관 건립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의정부지역에 기반을 둔 예술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유가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가 나왔다. 사진집 제목인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의 대표작인 '귀천’(歸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사동에서 주로 활동해온 사진가 조문호 씨는 시인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을 정리해 사진집을 펴냈다.

1980년 어느 봄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한 인사동 전통찻집 '귀천’에서 시인과 처음 만났다는 조 씨는 그때부터 10여 년 동안 시인 곁에서 시인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귀천’에서 동료 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의정부 장암동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 인사동 실비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 등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시인의 모습을 시와 함께 담았다. 여기에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 씨가 찍은 사진, 선생이 남긴 앨범 사진도 실려 있다.

조 씨는 오랜 시간 수많은 초상 사진을 찍어왔지만 시인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김대희 기자

 


[문학사냥 책사냥]

저승여비 4백만 원 재로 들고 간 시인

이소리 글꾼(lsr21@naver.com)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

 

‘소릉조-70년 추일’ 모두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이름 그대로 ‘천상’ 타고난 시인이었던 고 천상병(1930~1월 29일 일본~1993년 4월 28일) 시인.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라는 시를 남긴,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저승으로 은근슬쩍 들어간 걸 보면 저승 가는 데는 여비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다. 어쩌면 장례식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으로 저승 가는 여비를 보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는 4월 26일(금)은 ‘이 시대 마지막 기인’이라 불렸던 고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아 그가 살았던 의정부에서 ‘제10회 천상병 예술제’(19일~28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문학iN 4월 16일자 보도)가 열리는가 하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그를 기리는 문학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그뿐이 아니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천상병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을 펴냈는가 하면 의정부에서 살고 있는 문학예술인들이 지금까지 문학관 하나 없는 천상병 문학관을 번듯하게 세우기 위해 소매를 걷었다. 지금 저승에 있는 천상병 시인이 “가서 아름다웠더라”라고 말할 만 한 세상이다.

‘인사동 소풍, 천상’… 26일, 시와 노래의 밤+추모사진집 출판기념회

내 친구 천상병 시인은
저승 가는 여비를
4백만 원이나 가지고 갔다네
이승의 찬 기운 떨쳐 버리려
그것을 태워, 재로 갔다네
쭈그러진 얼굴로 헤실피 웃으며
내밀던 손
검은 손 착한 손
그 손에 쥐어 주던 쥐꼬리 같던
우리들의 우정
쌍과부집 독한 막소주로
허허로운 뱃속 바람과
이승의 공허 메우던 친구 -강민, ‘시인의 귀천’ 몇 토막


<rimgcaption>ⓒ 눈빛 </rimgcaption>

시인 천상병 선생 20주기가 되는 4월 26일(금)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실에서 ‘인사동 소풍, 천상’이라는 제목을 내건 시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이날 낮 4시부터 저녁 6시까지 2시간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는 천상병 시인과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가 남긴 시와 노래, 회고담 등으로 이어진다.

천상병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출판기념회는 Mu/Art에서 밤 9시까지 이어진다. 이번에 추모사진집을 낸 사진작가 조문호는 “선생님께서 귀천하신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영혼만은 인사동 어느 주막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며 “순수한 천재시인인 고인이 자신의 최고 모델이었다”고 되짚었다.

천상병 시인은 순수한 천재시인이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숱한 초상 사진을 찍어왔지만 천 선생님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천상병 시인 20주기를 맞아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를 펴냈다. 이번 사진집 제목이 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이 남긴 대표작 ‘귀천’(歸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번 추모사진집에는 ‘어머니 생각’, ‘아내’, ‘나의 가난함’ 등 천상병 시인이 지녔던 여러 가지 모습을 사진작품으로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지닌 숨김없이 솔직한 모습과 삶에서 다가오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시인이 지닌 참 모습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다.

1987년 인사동 칼국수집에서 열린 천상병 시인 생일잔치 사진도 눈에 띤다. 이 사진은 2단 케이크 앞에 앉은 시인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시인에게 가지 않겠다고 떼쓰며 우는 어린 처조카 딸이 지닌 모습도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만든다.

1980년 어느 봄날 시인 부인 목순옥 여사가 꾸리고 있었던 인사동 전통찻집 ‘귀천’에서 시인과 처음 만났다는 사진작가 조문호. 그는 그때부터 10여 년 동안 시인 곁에서 시인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귀천’에서 동료 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의정부 장암동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 인사동 실비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 등… 이 사진집에는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시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생 시와 함께 실었다.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김종구가 찍은 사진과 선생이 남긴 앨범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제1부 ‘귀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제2부 나의 노래는 하늘의 것, 제3부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제4부 천상병 앨범에서, 제5부 천상시인 천상병-배평모에 이어 실려 있는 작가 후기, 천상병 연보 등이 그것.

사진작가 조문호는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개인전으로 아시안게임 기록전(1986), 동아미술제 초대전(1987), 민주항쟁 기록사진전(1987), 전농동 588번지 기록사진전(1990), 불교상징전(1994), 전통문양 초대전(1995), 동강 백성들 기록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신명 설치사진전(2008), 산을 지우다 사진전(2008) 등을 열었다.

단체전으로는 낙동강 환경사진전(2001), 우리 사는 이 땅 환경전(2003), 한국다큐멘터리 사진의 조망(2004), 함께 사는 땅 환경전(2004), 광복 60년, 시대와 사람들(2005),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특별전(2005), 현대사진 60년전(2008), 흑백사진페스티벌(2008) 등에 참가한 바 있다.

개인 사진집으로 <두메산골 사람들> <불교상징>이 있으며, 포토 에세이집 <동강 백성들>을 펴냈다. 공저로는 <우포늪> <동강> <낙동강> <한국불교미술대전>(전 7권) 등이 있다. ‘동아미술제’에서 연작 ‘홍등가’로 대상 수상(1985), 아시안게임 기록사진공모전 대상(1986), 강원다큐멘터리 사진가(2002)고 뽑혔다. 그동안 <월간사진> 편집장, <한국사협> 회보 편집장, <삼성포토패밀리> 편집장,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강원도 정선에서 농민들 삶을 기록하며 인사동을 드나들고 있다. 한국사진굿당 대표.


<rimgcaption>ⓒ 조문호 </rimgcaption>

의정부에서 살고 있는 예술인들이 시인 천상병 문학관 세우기에 소매를 걷었다. 지난 3월 이 지역 예술가 박이창식(49)을 주춧돌로 열 명 남짓 뭉쳐 ‘천목 문화사랑방’을 만든 것이 그것이다. 천(天)과 목(木)은 각각 시인과 시인 아내였던 목순옥 여사 성에서 따온 글자다. 이 글자에는 ‘천상의 나무’라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작가, 비누 공예가, 젬베 연주가 등으로 짜인 이들은 천상병 시인 제자도 아니고, 천상병기념사업회 소속도 아니다. 이들은 천상병 시인이 생을 마친 의정부에 뿌리를 둔 예술인이라는 점만 유일한 공통점이다.

박이창은 “이 모임이 우연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라며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천상병예술제에 각자 참여하면서 문단과 지자체가 시인을 홀대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우선 의정부시민을 대상으로 천목 문화사랑방을 홍보하고 회원 수를 늘리는 게 1차 목표”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오는 10월 12일 시인이 지녔던 작품세계를 주제로 ‘소풍길 예술제’를 연다. 이때 문학관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이와 함께 천상병 세미나를 열어 모금활동도 벌인다.

박이창은 “시인의 육필원고와 미발표된 메모들은 언제라도 유실의 위험이 있다”며 “문학과 건립이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목 여사마저 이 세상을 떠나고, 시인이 살았던 집마저 경매로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유품들이 갈 곳이 없게 됐다는 것.

고 천상병 시인 유품은 천상병기념사업회 김병호(50) 부이사장이 꾸리고 있는 한 극단 소품 보관창고에 3년째 임시 보관하고 있다. 이 보관창고는 시인 부부가

살았던삶터를 벗어난 구리시 갈매동에 자리 잡고 있다 .

 

 


 




 

 

 

 

 

 

 

 

 


술을 좋아했던 천상병 시인은 사진작가에게 술 한 잔 권한 적 없는 깍쟁이였다.

1986년 2월 인사동의 주막 ‘실비집’에서. [사진 눈빛출판사]


그의 소풍이 끝난 지 벌써 20년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 그의 순진무구한 표정이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시인 천상병(1930~93)의 20주기를 기념한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에서다.

사진작가 조문호(66)씨와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고(故) 김종구씨의 카메라에 담긴 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의 모습 그대로다.

 따뜻한 시와 달리 천상병의 삶은 지난했다. 1952년 ‘갈매기’로 등단한 그는 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전기고문을 당하는 등 옥고를 치렀다.

71년 고문 후유증과 음주로 인한 영양실조로 쓰러진 뒤 행려병자로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행방 불명된 그를

기리는 유고시집 『새』도 출간됐다.

 그럼에도 그는 늘 행복했다. 사진집 속에는 막걸리 한 통이면 더 행복했던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가득하다.

2010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인사동의 찻집 ‘귀천’과 그가 즐겨 찾았던 주막 ‘실비집’

에서는 지금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수락산 자락 의정부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앉아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과 병실에 누워 책을 읽거나 잠든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조문호씨는 “(선생님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고 기억했다.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낸 그는 이제 가벼운 새 한 마리가 돼 이렇게 울고 있을 듯하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 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

(중략)…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새’ 중)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사진작가 조문호, 추모사진집 펴내

                                                                                          

28일로 천상병시인이  세상을 뜬 지 20주기를 맞는다. 시인은 모질었던 삶을 ‘소풍’이라 부르며

‘아름다웠다’고 노래했다. 1982년 7월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조문호 사진작가 제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1930∼1993)의 시 ‘귀천(歸天)’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28일은 천 시인이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지 20년 되는 날. 시인이 생전 ‘문디 가시나’라고 살갑게 불렀던 부인 목순옥 씨가 세상을 뜬 지도, 이들이 운영하던 서울인사동 찻집 ‘귀천’이 문을 닫은 지도 3년 가까이 돼 간다.

시인을 추억할 수 있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조문호 사진작가(66)가 생전 천 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모아 펴낸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 조 작가의 사진에 고 김종구 사진작가의 사진, 그리고 천 시인의 앨범 속 사진을 곁들였다. 흑백 사진 속에서 때론 무표정하게, 때론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시인이 반가우면서도 가슴 아리다.

조 작가는 1980년 봄에 처음 천 시인을 만났고, 10여 년 동안 그를 앵글에 담았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쓰러질 듯 기우뚱거리며 주막을 찾아, 한 잔만 마시고 맡기기를 하루에 몇 차례씩 반복했으나 내게 술 한 잔 권한 적이 없는 깍쟁이셨다. 그러나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1949년 잡지 ‘갈매기’를 통해 등단한 천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6개월여간 옥고를 치렀고, 고문 후유증과 과도한 음주,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는 사망으로 추정됐고, 그의 첫 시집인 ‘새’는 유고시집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에 ‘기인’이란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시인은 월간조선 1990년 5월호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 멋대로 버릇없이 살아온 탓으로 흔히들 나를 ‘기인, 기인’ 하는데 나는 도무지 내가 왜 기인인지조차 모른다. 다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나는 가난하고 슬퍼도 행복하다. 그 나의 행복의 결과가 시로 태어났다”고 말한 천 시인. 그를 기리는 제10회 천상병예술제가 28일까지 경기 의정부시 일원에서 열린다. 27일 오전 11시 의정부시립공원묘지에서 20주기 천상노제 ‘봄 소풍’, 오후 7시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가 열린다. 28일까지 의정부 예술의전당 전시장과 로비에서 특별미술전과 책읽기 행사 등이 이어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그는 순수한 천재시인이었다"..천상병 추모사진집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1987년 인사동 칼국숫집에서 시인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이단

케이크 앞에 앉은 시인은 카메라를 보며 천진난만하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시인에게 가지

않겠다고 떼쓰며 우는 어린 처조카 딸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1930-1993)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추모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출판사)가 나왔다.

사진집 제목인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의 대표작인 '귀천'(歸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사동에서 주로 활동해온 사진가 조문호 씨는 시인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을 정리해 사진집을 펴냈다.

1980년 어느 봄날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한 인사동 전통찻집 '귀천'에서 시인과 처음 만났다는 조 씨는 그때부터 10여 년 동안 시인 곁에서 시인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귀천'에서 동료 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의정부 장암동 자택에서 내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 인사동 실비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 등 소탈하고 순진무구한 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생의 시와 함께 수록했다.

전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 씨가 찍은 사진, 선생이 남긴 앨범 사진도 실려 있다.

"선생님께서 귀천하신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영혼만은 인사동 어느 주막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는 조 씨는 "순수한 천재시인"인 고인이 자신의 최고 모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숱한 초상 사진을 찍어왔지만 천 선생님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며 그리워했다.

132쪽. 2만원.
 

 

 


                                                   yunzhe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4/22 17:5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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