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정선 작업실로 떠났다.

오랫만에 짬을 내 가을걷이와 겨울채비에 나선 것이다.

 

양평에서 횡성으로 들어가는 내리막 커브길에서 뭔가 장애물이 눈에 들어왔다.

급브레이크로 차를 세워 살펴 보았더니 호박이 든, 큰 자루였다.

누군가 화물차에 실고가다 떨어트린 모양인데, 충격에 박살난 호박도 있었지만 멀쩡한 호박도 있었다.

마침 새벽녘이라 차량통행이 뜸했기에, 끙끙대며 차에 싣고 가져왔다.

 

정선 작업실에 도착해 보니 가을걷이할 농작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많던 산초도 다 떨어져버리고, 씨락국 끌이려 텃밭에 심었던 열무도 성장을 멈추고 있었다.

지난 여름에는 도마도, 가지 등의 야채는 물론이고, 고추마져 병들어 망치지 않았던가....

 

올 해는 장돌뱅이 노릇에다 아내 전시준비로 자주 정선에 못 갔다.

가끔 짬이나면 들리기는 했지만 손길이 가지 않으니 아예 자라지를 않았다.

작물들에게도 눈길을 주며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내버려두고 거둘려는 심보가 잘 못 됐다.

 

겨울채비나 할 셈으로 마당에 선, 빈 사진틀을 철거하였으나 그마져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깊이 묻었는지, 얼마나 철사 줄로 꽁꽁 엮었는지, 하나 철거하는데 한 참 걸렸다.

일을 하며 아무 소득없는 이 일들을 왜 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봤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는 이웃 최종대씨가 준 배추와 굴러 들어 온 호박이 전부였다.

아마 호박도 농사 못 지은 사람에게 보내 준 착한 농부의 선물일거라 자위해 본다.

 

"호박주인 양반! 고마워요. 올 겨울에 호박죽 쑤어 맛있게 먹을께요,"

 

 

20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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