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겨울내내 장터 사진촬영으로 비워 두었던 정선의 '사진굿당'은 전형적인 폐가의 모습이었습니다.
편지통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우편물이 가득 차있고, 집기들은 바람에 날려 여기 저기 흩어졌고,
사진설치물들은 헤어져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4월6일 새벽녘 정선으로 출발하여 현장에 도착해서 본 '사진굿당'의 풍경입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마을 축제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찝차 캐리어 위에 싣고 간 대형 테이블을 내리기 위해 차 위로 올라 간 순간 갑가기 현기증을 일으켜 떨어졌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려 병원에 갔더니 타박상에 불과한데 허리 통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날 밤에는 인사동에서 카메라를 챙겨 집으로가다 카메라가방을 전철에 두고 내리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대화역 종점에서 찿아오긴 하였지만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더군요.

 몸도 성치 않은데다 장시간의 운전 때문에 정신을 잃었겠지만 저에게는 신의 저주로 비쳐졌습니다.
"그래 조문호는 그 순간 떨어져 죽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삶을 살자."
카메라를 잃었다 다시 찾은 것도 열심히 작업하지 않으면 그 것도 가져가겠다는 암시로 느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픈 허리도 사진을 찍는 동안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간신히 몸을 추스려 축제장으로 갔더니 서울에서 하양수, 김도이씨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문 숙, 한진희씨까지 도착하여 산적한 일들을 도와주었지요.
청소하고, 아궁이에 군불때고, 반찬할 마물캐고, 가마솥에 물 끌이는 일들을 도와주어 큰 힘이 되었지요.

저녁에는 사진굿당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이웃 최종대씨댁을 방문하여 반주로 머루주를 마셨는데,
그 자리에서 창수엄마와 문 숙씨가 마음이 통해 친구 결연식을 가졌답니다.

 

20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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