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맞은편 길가에 '템테이션'이라고 적힌 조그만 간판에
흑인 가수와 소녀가 정답게 춤추는 흑백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어두컴컴한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마치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소굴처럼
음산한 분위기에서 엉뚱하게도 이화중선의 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에 손님은 아무도 없고, 중늙은이 혼자 책을 읽다 돋보기 너머로 올려다 본다.

그가 바로 서양화가 황성건(60세)씨다.
청년시절 부터 그림과 음악에 미쳐 집시처럼 떠돌다가 십 팔년 전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 때 중학교에서 미술선생도 지냈고, 신촌에서 "장미빛 인생"이라는 카페를 운영한 적도 있고,
조경과 실내장식에도 손을 댓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화가다.
지금도 혼자서 손님받고, 음식내고, 계산하는 1인 3역을 하지만
손님이 없다보니 논어에 빠졌다가, 음악에 흥을대다, 결국은 그림을 그린다.

70년도 중반 그를 만나 십여 년을 동거동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산 에덴공원 "난향"벽에 밥 딜런 초상을 그리던 모습, 음악에 취해 조는듯 눈을 감은 모습,
여린 송아지 눈망울처럼 애잔한 눈빛으로 미녀들의 마음을 흔드는 모습들이 아직도 새록 새록하건만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나보다.
서리 내린 머리의 늙은 땡초 행색은 그래도 보아 줄만하나, 술까지 약해져 맥주 몇병에 횡설수설 하다니...
파라만장했던 청춘사업도 이제 물건너 가는것은 이닌지?

어쩌다 한번 들리면 그림 위에 덧칠을 해, 딴 세상을 만들어 사람 기를 죽인다
갈 때마다 다른 분위기의 새 그림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 머리에 박힌 그림들이 사라지는게 안타까워 사진이라도 찍어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오래전 부터 했다.

30여년동안 떠 돌아 다니며 그가 그린 벽화 수가 헤아릴 수 없을진데,
세상이 진화하여 사라진 벽화들을 복원해 낼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굴에서 유물이 발굴되듯 벽화들이 환생하는 그런 허망한 꿈도 가끔 꾸어본다.

황성건은 장사법도 휘안하다.
아무리 주인 마음이라고 손님을 손님같이 보지 않는다.
세상에! 손님이 안주를 시키면 "귀찮으니 그냥 술만 마시라!"는 주인이 어디 있을까?
매사 그런 식이니 학교 앞인데도, 학생들은 코빼기도 안보이고 가끔 선생들이나 앉아 병나발을 불고있다.

그렇지만 사람 하나는 괜찮다.
행여 울산에 가시는 걸음이 있으면, 못 이긴척 황성건의 유혹에 한번 넘어 가심이 어떨지..

유혹 전화번호 052- 247-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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