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진 / 탄탄한 복근·아름다운 자태에 냉철한 시선 담아

▲ 윤두진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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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서울 인사동에 특이한 공간이 등장했다. 평소 전시를 관람하러 자주 들어갔던 갤러리 그림손은 이날 들어서자마자 전시장이 아닌 SF 영화 ‘스타워즈’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전과도 같은 느낌을 줬다. 이는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이 지닌 아우라 때문이었다. 사이보그로봇을 연상케 하는 작품의 이미지와 잘 다듬어진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고함과 신성함이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들은 윤두진 작가의 손에서 탄생됐다. 9번째 개인전 ‘껍질의 유혹’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입체 조각 작업으로 유명했던 그는 평면에 형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부조에도 도전해 2009년 일본에서 두 분야를 결합한 첫 전시를 선보였다. 이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멀쩡히 잘 해오던 조각 이외의 분야에 도전한 이유는 정체돼 있는 게 싫어서다. 작가로 계속 활동을 하면 자연스레 자신의 스타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윤두진 작가의 애정이 특히 들어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에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손이 특징인데, 평소 하던 작업에 새로운 스타일을 적용해봐야겠다는 시도 끝에 성공한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껍질의 유혹, plastic, oil color, 124x78.5cm, 2014. 사진 = 김금영 기자


“조각작업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항상 구조적인 측면을 신경 써야 했어요. 공간 크기도 고려해야 하고 이것저것 제한이 생기다보니 나중엔 작품이 다 점점 비슷해지더군요.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드로잉하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입체로 옮길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죠. 그래서 부조에 눈길을 돌렸어요. 흙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으로 부조작업을 하고 거기에 기존에 하던 조각을 결합했습니다”

2013년엔 대형 작업과 현재 하고 있는 작업에 색을 입히는 발색 과정에도 새롭게 도전했다. 발열과정에서 판이 휘는 등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뭐든 실패해봐야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처럼 작업방식은 많은 변화를 거쳐 왔지만 그의 작업이 말하고자 하는 점은 한결같이 뚝심을 지키고 있다. 작가는 ‘껍질’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은 ‘껍질의 유혹’인데 지성, 인간성, 마음가짐보다 누가 더 잘생기고 예쁜지 외형적인 모습, 즉 껍질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 윤두진 작가는 아름답고 완벽한 외형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작품에 투영해 보여준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주제의 일관성은 지키되 작업방식 정체되는 건 거부

작품들은 탄탄한 복근과 더불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이 영원히 유지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이뤄질 수 없는 욕망을 꼬집는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런 욕망에 유혹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업에 담게 된 계기가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몸, 완벽한 몸을 늘 바라고 집착하는 것 같아요. 일전에 한 배우의 인터뷰를 봤는데, 잘 생겨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니 모든 사람들이 다 잘해준다고 답하더군요. 어떤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더라도 외모가 좋으면 일단 먼저 호감을 가지게 되는 현 세태가 느껴졌어요. 저 또한 몇 년 전 아버지가 투병생활을 할 때 ‘아버지의 몸 중 이 부분만 건강한 것으로 바꾸면 좋을텐데’ 하고 더 좋은 외형을 바라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고요. 이 욕망을 작품으로 풀어보자 생각했습니다.”


 

▲ 서울 인사동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리고 있는 ‘껍질의 유혹’전에 전시된 윤두진 작가의 작품. 마치 SF영화에 나올 법한 작품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는 거의 한 달 이상이 걸린다. 흙 모델링 과정을 거쳐 석고를 물과 혼합해 성형 과정을 거치는 석고캐스팅을 한 뒤 플라스틱으로 성형을 하고, 흠집을 제거하며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샌딩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고된 작업에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늘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건 학생 시절 받은 가르침 때문이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미술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천재성이 아니라 바로 엉덩이가 무거운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매일 앉아서 작업을 하고,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이죠. 뭐든 빨리, 더 좋게 가는 길은 없다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전시하며 실험해온 것들을 토대로 앞으로도 좀 더 변화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인체 뿐 아니라 제 생각을 더 자유스럽게 작품에 담는데 전념하겠습니다.”

한편 윤두진 작가의 ‘껍질의 유혹’전은 갤러리 그림손에서 12월 1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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