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미연 '하느님의 시간…' 展]

현대적으로 해석한 聖畵 100여점, 15일까지 인사아트센터서 열려
"은혜 보답 위해 그림으로 봉헌"


예수의 탄생과 복음 선포, 수난, 그리고 부활과 승천, 성령 강림을 묵상(默想)하는 묵주기도. 성당이나 기도처 등에는 이 과정을 조각 혹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어 묵상을 돕는다. 10일 오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층, 묵주기도 그림이 걸려 있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르다. '최후의 만찬' 배경은 토함산 석굴암이고, 예수와 성모 마리아는 에밀레종의 비천(飛天) 문양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뿐 아니라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 칼을 든 바오로 등은 석굴암 나한상(羅漢像)을 닮았다.

창조주가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는 모습의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앞에 선 작가 정미연씨. 그는 “인간은 늘 겸손과 자존감이라는 두 장의 카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이들 작품을 선보인 정미연(59)씨는 10일 "저는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정씨는 중앙미술대전 대상(1979) 수상 작가인 한국화가 박대성(69)씨의 부인. 대구 출신으로 효성여대 회화과를 장학생으로 다녔지만 1979년 결혼 후엔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다시 붓을 잡은 건 마흔 가까이 되어서였다. 첫 전시는 1995년 서울 세검정성당 기공 기념전. "선생님(박대성씨) 손에 끌려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결혼하면서 천주교에 입교했어요. 그렇지만 이후로 참 많은 은혜를 받아 저절로 성경 말씀과 신앙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첫 전시 때부터 그랬다. 전시를 앞두고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했다. 병자성사까지 받은 상황에서 눈물 기도를 바쳤다. "어머니만 살려주시면 첫 전시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다…." 기적적으로 어머니는 일어나셨다. 이후로 그의 작가 이력은 신앙으로 가득 찼다. 충주 연수동성당 14처, 예수 수난 2인전(평화화랑), 여주 사도의 모후집(바오로딸수도회) 성당 십자가 및 성모상과 14처, 묵상 그림집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유경촌 주교 글), 묵주기도책(신달자 시인 글), 형과 색으로 드리는 기도전(평화화랑), '그리스 수도원 화첩 기행'….

이번 전시 주제는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이 주제는 지난 2012년 훌쩍 떠났던 실크로드, 인도 여행에서 얻었다. "사방 360도 전체가 지평선인 타클라마칸 사막, 사람과 먼지·가난이 뒤얽힌 인도를 여행하면서 머리로만 알던 것들을 가슴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에 카드 두 장을 품게 됐습니다. '나는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과 '세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랑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겸손과 자존감 혹은 자기애(自己愛) 같은 것이지요." 이후 힘들 때는 '자존감'이란 카드를, 오만해졌다 싶을 때는 '겸손'이란 카드를 번갈아 꺼내며 살게 됐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 모두는 창조주가 돌리는 커다란 시간의 바퀴 속에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런 겸손함 가운데 남편이 살고 있는 경북 경주에 산재한 우리 불교 유적들도 그림에 들어오게 됐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성바오로출판사 한(韓)실바노 신부는 "'그리스 수도원 화첩기행' 등 정 작가님과 함께 출판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작들은 천주교를 불교와 접목해 구도자적인 면을 담아냈다"며 "영적(靈的)으로 더욱 심오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전시는 15일까지. (02)736-1020

조선일보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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