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여천-무량화(事人如天-無量花), 2014, 600x270cm, Oil on Canvas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민중미술 계열 작가 박진화 화백(57)이 모처럼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강화발, 분단의 몸-박진화展'이다. '박진화'란 작가와 '강화도'란 장소, '분단'이란의 현실. 세 가지 키워드가 한데 섞여 있다. 드로잉을 포함해 총 80여점의 작품들이 비치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청년시절 작품들도 몇 점 함께 만나볼 수 있다. 20여년 동안의 강화도 시기를 중심으로 박 화백의 30년 화력(畵歷)을 마주하게 된다.

박 화백의 작업실은 강화읍 대산리, 민통선 내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전남 장흥 출생인 박 화백에게 강화는 바다를 끼고 농사를 짓는 고향 마을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또한 북녘과 가까워 청년시절부터 천착해 온 주제인 '남북 분단의 아픔'을 구체화할 수 있겠다는 작업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동안 강화에서 그림을 그렸다. 작가의 화폭에는 시대와 민족에 대한 성찰, 치유와 화해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작가의 그림에는 수많은 군상만큼이나 많은 색들이 등장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을 주조로 빚어내는 화음이 이채롭다. 중재, 화해, 치유의 개념으로서의 노란색, 이념적인 오명을 벗고 국민의 색으로 거듭난 붉은색, 민주와 평화의 상징인 푸른색 등이 작가의 의도를 표출한다.

또한 외부현상과 현실을 바라 본 예민하고 직설적인 시선은 강화도에서 점차 내부로 향했고 세상의 본원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고 글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고 강화 곳곳을 답사하기 시작했다. 눈과 몸이 다시 열렸다. 속 깊이 뜨거운 울림으로 자리 잡아 나갔다."



개화-땅-빨강,파랑,노랑, 2012, 130x194cm(each), Oil on Cavas



그 너머 2, 1988, 260x162cm, Oil on Cavas

이렇게 강화에서의 삶과 예술은 작가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줬다. 또한 이는 그림으로 드러나게 됐다. 청년시절 왜곡되게 변형된 인물들, 어둡고 무거운 색조로 암울한 현실을 담아낸 기록화를 그렸다면, 강화에서의 그림은 갈등과 대립, 분단의 현실을 성찰과 치유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작가 자신에게도 강화도는 1100번 이상 마니산을 오르게 하고, 작업실과 집과의 10리길을 눈비를 마다않고 걸어 다니면서 심신의 체력을 키우게 했다.

작가는 강화에서도 인물 중심의 그림을 그린다. "환갑이 넘으면 자연풍경을 그리겠다"고 웃으며 말하는 박 화백은 오랫동안 꾸준히 드로잉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2년 겨우내 140여점 이상의 렘브란트의 성화드로잉을 복기(復棋)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이 이어졌다. 전시 기획자는 "그의 그림과 관심은 사람에서 비롯됐고, 사람을 통해 이어지고 있고 여전히 사람을 향하고 있다"며 "최근 어르신들의 초상을 많이 그려낸 것도 그들과 마주보며 자신과 더불어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이 국내지역미술에 대한 미술관 차원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마련한 '로컬리뷰'전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미술은 물론, 사회, 정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려는 기획전이다. 이번 박진화 개인전에는 작가와의 대화와 '강화 그림 여행'과 같은 어린이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02-737-765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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